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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9. 2024

과부하에 걸리다, 매사 과유불급

미주신경 실조증


어느새 한참 전에 생긴 일이 됐는데요.

아들과 동아대 쪽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기에 시간 맞춰 지하철을 탔답니다.

좌석이 빈 경로석에 느긋하게 앉아 창밖을 바라다보았지요, 마침 그곳은 지하공간이 아닌 지상 구간이었거든요.

동래역에서 교대역으로 향하는 중에 갑자기 메스꺼워지며 잠깐 아랫배를 뒤트는 묘한 통증이 오더라구요.

동시에 얼굴에서 진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땀을 흘리지 않던 체질이라 희한하다 생각하며 손등으로 턱 근처의 땀을 닦았지요.

그리곤 정신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땀을 닦은 기억까지는 나니까요.

누군가가 가슴을 누르는 바람에 눈을 뜨고 보니 지하철 바닥이더군요.

정신을 차려 구두를 찾아 신은 다음 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어나 앉았지만 얼떨떨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차내의 뭇시선이 제게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지요.

평생 한번도 졸도라는 걸 해본 적이 없기에 황당하고 어이없기도 해, 어리둥절한 채로 저를 일으켜 준 분에게 도대체 제 상태가 어떻던가요? 물어봤지요.

맞은편에 앉았던 분이 알려주더군요, 잠자코 가만히 앉아있더니 순식간에 앞으로 무너지듯 쓰러졌다고요.

경황이 없는 중에 주변 분들이 빨리 병원에 가봐야 한다며 가족에게 연락하라고 성화였습니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 장소에 못 갈 거 같다고 말했더니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던 옆엣 분이 전화기를 빼앗듯이 채가더군요.

그리곤 어머님이 지하철에서 기절하셨노라며 상황 설명을 하고는 급히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본래 차분한 성격대로 아들은 내게 어지럽진 않냐 하기에 괜찮다 하자 교대역에서 내려 곧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오라고 하더군요.

병원 응급실에 연락을 취해 놓을 테니 그쪽으로 곧장 오라기에 지하철에서 내려 병원으로 달렸지요.

쓰러진 후 3분이 골든타임.... 다행히 아주 가까이 병원이 있었기에 금방 당도해서 응급실 침대에 누운 내원 환자가 됐습니다.   




아들이 일하는 병원이라 대기하고 있던 응급실에서 바로 체크에 들어갔는데요.

간단히 증세 묻더니 일사천리로 혈압 재고 당뇨 측정하고 혈액 채취부터 하고는 왼팔에 링거주사가 꽂히더라구요.

이어서 심전도 검사를 받은 다음 휠체어 타고 가 엑스레이 찍고 CT 촬영에 MRI 촬영하느라 시끌 요란한 통속에도 들어갔지요.

충분히 걸어도 갈만한데 굳이 휠체어에 실려 다니며 온갖 검사를 받아야 하는, 완전 중환자 꼴이 되는 거도 잠시 잠깐만의 일이었습니다.

신경외과의인 아들이 당직의사와 함께 사진을 판독하고 분석하는 동안 내심 솔직히 쫄았지요.

평소 건강에 자신하며 살았지만요, 오만 방정맞은 생각이 교차하더라구요.

천억 개에 달하는 신경세포에, 지구 두 바퀴 반 길이나 되는 혈관에,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오장육부의 상태에 대해 누군들 감히 자만심 갖겠나요.

별의별 생각이 다 들 만도 한 것이, 졸도까지 한 데다 여러 검사가 따르니 혹시나 뇌혈관에 큰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겁이 덜컥 났구요.

얼마 후 뇌사진이며 여타 검사에 아무런 이상 징후가 없으니 뇌졸중 걱정할 일은 전혀 없다는 소견을 전해주더군요.

안도감이 들자 아들에게 따지듯이, 왜 앰뷸런스 아닌 택시를 타고 오라 했냐니까 안정된 목소리로 미루어 그만큼 위급 상태는 아니더라네요.

이후 듣게 된 '미주신경성 실신(Neurocardiogenic syncope 또는 Vasovagal Syncope)'이라는 난생 첨 들어보는 병명.

도대체 미주신경(迷走神經)이란 말은 그야말로 듣기도 첨, 문자 그대로 금시초문이었지요.

이참에 알게 된 미주신경이란 10번째 부교감 신경인 뇌신경인데 이게 교감신경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균형 잃고 항상성이 깨지면 문제가 생긴데요.

즉 과로하거나 심한 스트레스 또는 긴장으로 인해 체내 자율 신경계의 활성도가 급격히 변화하여 혈압이 떨어지고 심박동 수가 느려지면요.

이때 뇌로 가는 혈류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부족하여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된다고 합니다.

종합적으로 검사결과 양호하고 단지, 일시적 의식 소실과 짧은 지속시간 및 자발적 회복으로 미루어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판정을 받은 거지요.

백수가 과로사한다지만 지나치게 신경 써야 할 일 자체가 없었으니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굳이 들자면 한국으로의 리턴, 그러나 스트레스받을 상황이라곤 있을 까닭이 없는 아주 단순 편안한 일상인데 왜? 무엇 때문에?

한방 클리닉 운영 중인 딸내미는 미주신경 문제는 예민한 성격(꼭 짚어서 승질머리, 별난 성깔) 때문이니 되도록 압박감이나 긴장상태를 만들지 말라네요.

한국에서 보다 미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긴데도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라는 선문답같이 알쏭달쏭한 조언도 하달하더라구요.

다음에 또 그런 전조증세를 느끼게 되면 장소 불문하고 일단 바닥에 앉아 머리를 깊이 숙여주던지 아니면 누으라네요.

누워서 다리를 꼬거나 위로 들어 올리며 천천히 심호흡을 하라고도 일러주데요.

운동장 조회시간에 픽 쓰러지는 학생, 또는 한참 촬영 중인데 연예인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 경우 종종 있잖아요.

대부분의 미주신경성 실신은, 장시간의 기립 자세나 과도한 긴장감 및 흥분 같은 감정적인 자극, 밀폐공간의 탁한 공기 등 환경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네요.

미주신경성실신 자체는 큰 병이 아니나 다만 쓰러지면서 발생하는 2차 손상이 더 큰 문제랍니다.

큰 병은 아니라지만 미주신경성 실신은 군 복무도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된답니다.

아무튼 전에 느꼈던 특유의 전구 증세가 나타나면 즉시 바닥에 앉거나 누워, 넘어지며 부상을 입게 되는 점에 대비하라네요.

제 경우로 봐도 확실한 데요, 당시 왼발에 이상이 생겨 한 달 반 동안 불편하게 지냈답니다.


쓰러진 당일에는 뇌혈관 문제인가 싶어 그에 골똘하느라 응급실에서도 발이 아픈 줄을 몰랐어요.

식당에 걸어 들어가서 아무렇지 않게 저녁도 잘 먹고 난 그 이튿날 아침부터 찌릿한 통증으로 왼발을 디딜 수가 없는 거였습니다.

통각점인 복숭아뼈 부분을 엑스레이로 찍어보니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쳐 복숭아뼈에 약한 골절상을 입어 깁스해야 한대서 약식으로 조치를 취했는데요.  

부목을 대고 정식 깁스를 하면 보행에 지장이 있을 터라 보호대로 6주째 발을 칭칭 감싼 채 모셨답니다.

마산에 사는 소싯적 친구에게 근황을 전했더니 그 친구의 의사 남편분이 그러더래요.

나이 생각해야지 그리 부지런 떨며 돌아다니다가 (설쳐대다란 말을 순화했겠지요.ㅎ) 과부하에 걸린 거라고요.

매사 과유불급, 그 말이 맞다 싶어 무릎을 탁 치고는 요즘 조신하게 제법 근신 모드로 지낸답니다.

그래요, 하루하루 별고 없이 지내는 자체가 기적이고 신비이니 감사 또 감사.​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예방수칙 잘 지키기와 조기검진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의 권능과 자비 외에 달리 무엇에 기댈까 싶네요.  

나이 들며 제일 겁나는 병이 치매, 중풍, 뇌졸중이라고 합니다만.

그러나 백세시대 무병장수의 비결인 건강 키워드는 자율신경, 면역체계, 영양소라고 하더라구요.

쓰러지고 난 이후, 장수시대의 노후를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이 세 가지를 고루 잘 보살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하게 됐습니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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