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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9. 2024

무량스님께


학창 시절 안면도로 걸스카우트 하계수련을 갔습니다.

썰물 진 바닷가에서 근사하게 모래성을 쌓아 올렸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들기에 골몰하다 보니 어느새 밀물이 가깝게 다가왔더군요.

슬금슬금 밀려온 물결이 한번 철썩~하자마자 공들여 쌓은 모래성이 단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파도가 모래성을 완전히 망가뜨리기 전에 차라리 내 발로 마구 뭉개버리고 돌아섰습니다.

그땐 무슨 심통이 발동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풋풋한 20대 초에 직접 구워 만든 분청 도자기 한 쌍이 있었습니다.

청소를 하다가 조심성 없이 팔꿈치로 잘못 건드려 떨어뜨렸습니다.

그렇게 어처구니없게도 아차 순간에 십수 년 곁에 둔 도자기를 깨버리고 말았지요.

일단 조각을 주워 모아 접착제로 붙여 보았으나 흉 자욱이 너무 도드라졌습니다.

깨어진 도자기는 이미 생명을 잃은 상태임에도 그간의 정분이 깊었기에 쉬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때도 가시지 않는 아쉬움으로 두고두고 애석해했더랬습니다.​



지난봄 동부 뉴저지에서 서부 캘리포니아로 대륙을 횡단하여 거처를 옮기게 됐습니다.

이삿짐을 챙기려니 해묵은 살림도 아니건만 구석구석에서 뭐가 그리도 숱하게 나오던지 기가 찰 지경이었습니다.

공간 공포증이라도 있는 듯 벽마다 채워둔 가재도구며 온갖 기명들에다 책까지 언제 그리 불어났는지 아연하더군요.

지하와 1,2층이 있는 너른 집에서 살던 뉴저지에서와는 달리 이번엔 규모를 확 줄여 조촐하니 아담한 집을 장만하였습니다.

따라서 살림을 거지반 추려내고 반쯤만 싣고 와야 하니 꼭 필요한 짐만을 분류시켜 정리하는데도 며칠이 걸렸지요.

쌀까 말까, 들었다 놨다, 포기하기 너무 아까운 마음에 한참씩 만지작거리느라 일이 더 더뎌졌던 겁니다.

내 손으로 직접 골라서 아껴 보듬어온 물건들이라 하나하나마다에 서린 추억들이 미련으로 남아서였지요.



이처럼 매사 애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옹졸하니 못난 나임을 먼저 고백합니다.

궁극적으로 나이 든 지금도 탐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삼독에 갇혀 살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방하착! 욕망과 집착을 놓아버리는 데서 삶의 행복은 시작된다고 합니다.

세상적인 것에 칭칭 동여 매여서 살며 이상 같은 지향점인 방하착!


완전한 자기 버림이란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는 것이라지요.

그러나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버리고 비우기란, 끈끈히 달라붙는 집착을 떼어놓기란.....

여간한 수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히 흉내조차 버거운 일이라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얼추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오래 맘에 두었던 것, 아끼고 사랑했던 것, 깊이 애착했던 것, 긴 세월 함께 했던 것들로부터 초연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초연은커녕 쉽사리 떨쳐버리지를 못하고 하냥 매달리고 끄달려가며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쿨함, 과는 거리가 한참 뜬 사람인 거지요.

    

석가모니는 왕자로서의 보장된 행복을 뒤로하고 호사스러운 왕궁을 표연히 떠났습니다.

고뇌 없는 결단일 리도, 순간적인 감정이나 충동에 의한 선택일 리도 없는 세기적인 출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뒤늦게 얻은 금쪽같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야훼의 기막힌 명령을 묵묵히 받잡습니다.

사흗날을 걸어 모리아 산정에 이르는 여정 동안 걸음걸음 단장의 피눈물이 배어났을 겁니다만 갈등 없이 순명하려 합니다.

갈릴리에서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르심에 시몬은 아무런 번민이나 망설임 없이 즉각 응답합니다.

고기잡이에 한치의 미련도 두지 않은 채 주저 없이 가족을 떠나고 생업에서 손을 떼는 일이 결코 쉬울 리 없는데 말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숱한 고민 끝에 확실한 약속의 증거를 받고서야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예레미야도 부르심 앞에서 주저하다가 또렷한 환상을 체험한 후에야 어렵사리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연 맺은 것들로부터 훌쩍 떠나버리기란 결코 쉬운 게 아니고, 안정된 생활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보통 의지 갖고는 힘듭니다.

 

도리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죽음 이외의 경우에 본인 스스로 자진해서 움켜쥔 주먹을 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움을, 부끄러운
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제 한계이자 대부분의 우리네 한계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목숨줄이 이어져 있는 동안은 혈육에 대한 애착과 43년에 걸친 부부의 연을 싹둑 끊기가 어렵습니다.

마지막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아마도 이승의 나를 부자유하게 얽어매는 것이 바로 이 인연의 족쇄일 것입니다.

또한 값질 것도 없고 보잘것도 없으나 내 것이라 이름 붙은 물질들 역시 간단히 포기하질 못할 게 뻔합니다.

어떤 일 혹은 사물에 대해 생각을 떨쳐 버리거나 잊지 못하고 매달린 채 사로잡혀 있는 마음 상태를 집착이라 합니다.

着을 놓아버려 텅 비워진 영혼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며 수행하는 아름다운 사람의 몫일 겁니다.

세상적인 것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은 참 자유인, 生을 초월하고 死마저도 초탈한 듯한 경지에 이른 사람.

그런 분을 우연찮게 축복처럼 만났습니다.



어언 창건 20주년을 맞은 테하차피 태고사에 다녀온 후 며칠을 내동 궁굴려봤습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속인의 요량으로는 도저히 답이 찾아지질 않았습니다.

모릅니다....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풀리지 않아 영 모르고 말 것 같습니다.

어떻게 모든 걸 다 놓을 수가 있는지요, 어찌하면 그럴 수가 있는지요, 무량 스님.

둥두렷 장엄히 솟은 한국 전통식 사찰 건축인 대웅전 관음전 종각 등 눈에 띄는 도량 그 물질적 가치만이 대단한 게 아닙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성심과 열정 쏟아부은 대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지요.

터 고르고 나무 다듬고 바위 깎아가며 지새운 3천6백50일 ×2라는 하많은 일월의 무게가 어디 가볍다고 할 수 있겠나요.

100년의 인생을 46억 년 지구 역사에 비춰보면 0.7초가 채 되지 않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라지요.

그렇긴 하나 찰나가 영원이요 일각이 여삼추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나아가 물 귀한 사막의 뜨거운 태양과 막무가내로 몰아치는 바람 더불어 테하차피 자연과 하나 되어 때로는 감동하고 보람 느낀 순간도 있었을 테지만요.

더러는 세간사 속인들과 부대끼며 겪은 애환 등 숱한 기억의 질량 그 모두를 뒤로하고 어이 표표히 떠날 수가 있었는지요.

자고 새면 잡념 없이 기쁘게 몰두한 건축 일이 곧 수행으로, 단지 과정에 의미를 두었다지만 말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물심양면으로 감내해야 할 수많은 부담이 따르는 대형 불사를 그것도 미국 땅에서 혼자 감당하기란 결코 녹록지 않았을 겁니다.

여러 우여곡절이야 있었지만 처음 원력대로 마침내 단청 선명한 대웅전에 관음전도 덩그러니 올리고 평화의 종 울려 퍼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 데도 걸림 없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무엇에도 미련 두지 않고 어딘가로 홀연히 떠납니다.

떠난다는 것은 단지 공간이나 시간의 이동이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으로, 삶의 자리에서 안일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라지요.

자신을 얽어맨 구태와 결별하는 것, 집착을 버리는 것,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들이 떠남의 본질이라지요.

허나 인간은 안주의 속성이 강하여 오랫동안 터 잡아 익숙해진 곳을 털고 떠나기란 쉽지 않은데 아무리 출가승일지라도 말이지요.

혼자 힘으로 오롯이 일궈낸 태고사를 그리 쉽고 간단하게 뒤로한다는 것이 수긍도 납득도 설명도 되질 않았습니다.

아니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저 같은 속인의 안목으로야 그 경계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고 말고요.

무소유의 미학을 누누이 설하지만 저마다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더 오래 갈무리고 싶은 게 인간의 끝 모를 욕망의 본질 아닌가요.

언필칭 종교인이란 그럴듯한 직함을 가진 사람들의 화려한 행차나 살찐 목덜미에서 환멸을 느낀 사람이 어디 저뿐일까요.

요즘 한국의 일부 개신교에서는 개탄스럽게도 신자들의 봉헌금으로 키운 교회를 부동산 팔듯 매매하기도 한다는 뉴스.

그것도 모자라 자녀에게 세습하는 사례가 흔한 세태인데 반해 태고사 건립 역사를 알아갈수록 양자 간 더 뚜렷하게 대비되더군요.

 

지난 일요일 딸에게 부탁을 넣어 스무 살 성년을 맞아 기념법회를 연다는 그 태고사를 찾았습니다.

프로그램을 훑으니 참석자들에게 평화의 종 타종 시간을 갖게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맘을 딱 굳혔더랬지요.

주일날이라 먼저 새벽 미사에 참례한 후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인 테하차피로 달려갈 때까지만 해도 단지 종소리가 듣고 싶었었지요.

현재 주지 소임을 맡은 분이 창건주인 무량 스님을 뜻깊은 20주년 기념식에 초대하고 싶어도 직접적인 연결점이 없었답니다.

대신 연통이 닿을만한 주변 지인에게 초청 의사 전달을 부탁해 놨으나 사전 연락이 없어 못 오시는구나 했다는데요.

뜻밖에도 시간이 거의 임박해서 조용히 경내로 들어서는 분이 사진으로 낯익은 무량 스님이셨습니다.

십 년여에 걸친 불사 원력으로 태고사를 손수 지은 창건주인 무량 스님을 그렇게 뵙게 되었습니다.

가사장삼 근엄하게 떨쳐 입고 법상 중앙에 정좌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다 잠시 들린 객승처럼 법회가 시작된 대웅전 왼편 문밖 댓돌에서 선정에 든 듯 고요하게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이날을 있게 한 정작 주인공이지만 시절 인연 따라 잠시 머문 한 점 바람마냥 드러나지 않는 낮은 모습의 초탈자처럼 그렇게요.

소박한 잿빛 운동화를 신고 물 바랜 승복 바지에 허름한 간편복 저고리 차림이었습니다.

더 이상 뺄 수 없을 만큼 깡마른 외모에서 매사 극도로 절제시킨 평소의 삶이 고스란히 보였습니다.

야윈 얼굴에 예리한 콧날, 파르란 눈빛이건만 마냥 온화한 느낌이 든다는 게 불가해했습니다.

목소리는 나직나직했으며 일상의 습관인 듯 필요한 답변 외엔 말수도 아주 적었습니다.

간만에, 모든 걸 죄다 내려놓은, 진실로 수행자 다운 수행자의 모습을 그렇게 만나보았습니다.

잔잔히 번지는 감동으로 그 하루 참 충만했습니다.

현재 내가 어떤 종교관을 가졌는가를 떠나 진심으로 고개 숙이고 싶은 신앙인을 만났으니까요.

존경스런 웃어른이나 국기 앞에 고개 숙임이 우상숭배가 아니라지요.

우상숭배는 물질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거나 부귀공명을 위해 무릎 꿇는 행위를 이른다 했습니다.

또는 금지옥엽 귀하게만 키우는 자식 바보가 오히려 이에 해당된다지요.

 

삼가 범접할 수 없는 맑은 기운에 압도, 경내에서는 스님 따라 절로 조신하니 고개를 낮추게 되더군요.

유명세를 치를만한 스님이지만 전체 분위기상 감히 카메라를 목전에다 들이대기 저어되었습니다.

함께 인증샷을 찍고 싶다는 주문이 쇄도할 만도 한데 참석자 아무도 무례를 범치 않았습니다.

한잔 차도 마다하였으나 대중들의 성화에 못 이겨 점심공양을 들고는 휘적휘적 오른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무량 스님.

여전히 '후 엠 아이' 화두를 참구하며 지구촌 어딘가에서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은자 되어 거의 식물성에 가깝게 사는 분.  

절을 짓는 불사 만행이 곧 수행의 길이었고 그에 따른 심신의 고통도 수행의 한 방편이더라고 담담히 회고하는 분.

지금 머무는 곳이 어디신지요, 묻는 불자에게 아이 같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 돈 노우'라고 답하던 분.

무릇, 운수행각하는 걸림 없는 자유인이니 세상 어디인들 거처 아닌 곳이 있겠으며 그러므로 정해진 곳은 따로 없겠지요.

탐진치를 비우는 길이 바로 열반에 이르는 길, 열반에 들어야 천국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날 무량 스님 얼굴에서 자연을 닮은 천국의 평화를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은 아무 데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청정 비구 무량 스님은 한그루 푸른 나無였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스님!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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