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이의 대명사 격인 호박. 흔히 비쩍 마른 여자를 멸치에 빗대듯, 펑퍼짐하니 퉁퉁한 여자를 호박에 비유하곤 한다. 해서, 호박과 자신이 대비되는 경우 모욕감마저 갖게 된다. 볼품없다는 뜻과 동격인 호박 같다는 말은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나아가 호박이라는 단어와 누군가를 한데 묶는다면 은연중 조롱의 뜻이 담겨 있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호박은 실제로 멋없이 덩치가 크기만 할뿐더러 두리뭉실한 게 굳이 매력을 찾자면 수더분함 정도랄까.
이른 봄. 밭 가장자리나 언덕배기 빈터에 씨 대여섯 알 묻어 두면 저 혼자 부스럭부스럭 싹 틔우는 호박. 그렇게 움 돋워 너른 잎에 무성한 줄기를 호기롭게 뻗쳐 나간다. 샛노란 꽃이 등불 켜듯 환하게 피었다 지면 도토리만 하던 꼬투리가 하루 다르게 몸피 키워 나가는 호박. 윤기 잘잘 흐르는 애호박은 전으로, 찜으로, 볶음 나물로 식탁에 오른다. 뿐 아니라 입맛 쳐지는 한여름 저녁 호박잎 쌈은 된장과 함께 토속적인 정취로 구미를 돋운다.
입동 무렵, 무서리 내리면 데친 듯 후줄근해지는 호박덩굴 여기저기 누런 호박 덩이만 둥실하게 남는다. 잘 익은 청둥호박은 찹쌀가루에 강낭콩 듬성듬성 구수한 호박죽이 된다. 풍년가 구성지게 흐르는 타작마당엔 푸짐스러운 호박고지 떡을 만들어 대접하게 해 준다. 눈 깊은 삼동. 찌개거리인 호박지는 중부 이북지방의 별미로 달큰한 맛이 색다르다.
한방이나 민간요법에서 호박 중탕은 산모의 부기를 다스려 주는 명약으로 꼽힌다. 대추와 꿀을 넣어 은근히 달인 호박은 정혈작용을 돕고 신장에도 이롭다고 하였다. 요즘 들어 자연 건강식으로 호박이 각광을 받다 보니 그전엔 지천이다 못해 천덕꾸러기이던 호박도 이젠 중국에서 수입해 쓰는 판이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겨울철 소 먹잇감으로 뭉텅뭉텅 썰리거나 헛간 한 귀퉁이에서 하릴없이 얼어 주저앉기 일쑤였던 호박. 청둥호박의 위상 변화에 격세지감마저 느낀다.
약간은 로맨틱한 분위기의 제목과 걸맞지 않게 웬 호박 타령? 까닭이 있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는 핼러윈데이라는 서양 축제날의 주제가 바로 호박. 태평양 너머 남의 나라 풍습이지만 꽤 재미지고 신기하다.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아이들이 기다리는 이 축제는 어둠과 함께 열린다고 한다. 각자 특색 있는 탈로 변장하거나 핼러윈 코스튬으로 치장한다는 그날. 기괴하고 무서운 유령 차림을 하고는 해지기를 기다렸다 온 동네방네 집집마다 돌면서 캔디를 얻는다고 한다. 시월초부터 각 가정에서는 큼직한 등황색 호박을 사다가 사람 얼굴 형태를 본떠 눈이며 코와 입을 조각해 등을 만든단다. 그다음 등불 밝혀 현관에 두고는 꼬마 손님들을 맞는 날이란다.
핼러윈데이를 맞아 뾰족 모자에 마귀할멈이나 강시 탈을 쓰거나 슈퍼맨으로 변장을 하고서 신나게 폭죽을 터뜨리면서 떼 지어 몰려다니는 악동들. 그렇게 현관 앞에 모여든 아이들을 위해 과자를 준비해 두는 서양인의 축제에서 내 유년시절의 한 풍속도가 되살아난다. 삼동 추위도 잊은 채 밤늦도록 쥐불놀이하다가 출출해질 즈음. 검댕이 묻은 얼굴로 마을을 돌면 집집마다 오곡밥을 마련해 펼쳐놓았던 정월 대보름날의 그 아득한 풍경화....
우리가 처음으로 미국 나들이를 나선 때는 마침 시월 하순. 우연히 핼러윈데이와 맞물린 시점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로 이동하는 도중, 도로변 따라 양옆으로 끝 모르게 펼쳐진 농장 지대의 규모 큰 파머스 마켓에 들렀다. 외국 여행을 하는 즐거움의 첫째는 낯선 풍물, 색다른 볼거리와의 기분 좋은 해후에 있다. 며칠째의 강행군에 지친 우릴 반기는 의외의 정경에 관광객 모두의 눈빛엔 돌연 생기가 차올랐다. 동시에 저마다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돌아간 듯 신나는 표정이 되어 마켓으로 내달렸다.
우리를 즐겁게 한 주인공은 호박이었다. 새봄의 햇살 알갱이가 순금 빛 민들레 꽃으로 풀밭에 내려와 깔깔대듯, 미국의 늦가을 풍요가 흐르는 들판에는 질펀한 볕살이 황금빛 호박 되어 까르륵 웃고 있었다. 미욱해 보이는, 그래서 순박하고 어진 느낌을 주는 우리네 호박과는 다르게 생김새가 야물딱지고 때깔도 썩 윤기로운 호박들의 경연장이 거기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처음 본, 호박 잔치를 위해 꾸민 무대야말로 우리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네모 반듯하게 묶인 건초더미를 바탕 삼아 다채로이 펼친 농가의 가을마당 재연은 아주 사실적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마차, 녹슨 쇠스랑도 세트로 적절한 소품. 구색 맞추려는 듯 뒤뚱거리는 살찐 거위와 칠면조도 몇 마리 노닌다. 마당가 잎 떨군 교수목에는 밀짚 인형이 목 매달린 채 대롱거리며 늘어져 있다. 역시 거친 서부답다. 한편에는 저승사자 차림의 해골 뼈다귀가 양날 도끼를 치켜든 채다. 도둑고양이에 허수아비 모형도 한몫 거든다. 짚단 위에 앉아 쉬고 있는 실물대 크기의 마음씨 좋아 뵈는 농부 아저씨도 역시 밀짚 인형이다.
핼러윈 호박을 위한 갖가지 소품 배경물들이 그럴싸하니 재밌게 조화를 이루어 낯선 풍경을 처음 접하는 우릴 한껏 들뜨게 만들어 흥분한 채 셔터를 연거푸 누르게 한다. 농장 측에서야 손님들의 시선을 끌려는 판촉활동의 일환인 장삿속 데커레이션일 터이다. 하지만 그저 일상의 일부인 양 자연스럽고도 멋스럽게 연출시키려면 나름의 솜씨와 안목이 필요할 법하다. 형식적이고 도식화된 한국민속촌보다는 생활의 체취가 진솔하게 묻어나는 이렇듯 틀을 깬 관광상품이 알짜 볼거리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눈요깃감 외에도 호박 품종이 그리 다양한데 깜짝 놀랐다. 표면이 아주 매끄러운 것, 오톨도톨 특이한 몸체에 서양배 형태도 있다. 달덩이같이 미끈한 호박이 있는가 하면 어느 건 길둥글고 너부죽하니 모양새도 특이하다. 그중에도 주종을 이룬 등황색 커다란 호박이 여기저기 보기 좋게 진열된 농원 마당. 북통만큼 큰 호박, 한 손에 감쌀 만한 아기 호박, 숫제 호두 알 정도로 작고 예쁜 호박에 색깔 역시 이채롭다. 흰 호박, 노란 호박, 연두색 호박, 진녹색에 얼룩무늬 호박들이 소쿠리에 가득 담겨 수북하다. 호박이라기보다 앙증맞고 귀여운 노리갯감 같은 깜찍스러운 호박들에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순간 오래전 어떤 기억이 떠올라 싱긋 웃었다. 오, 그랬었구나… 이제야 비로소 그날의 떨떠름한 감정이 지워지면서 고개 끄덕일 수 있었다.
딸아이가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 한창 재롱이 늘어 갈 즈음이었다. 아들 아래로 칠 년 터울을 갖고 태어난 딸내미가 아기였을 적, 황당했던 기억으로 남겨진 삽화 하나. 우리 집에 미국인 손님이 들른 적이 있는데 그가 아기를 보며 '소우 큐~'에다 ‘베리 프리티~'를 연발하더니 이어서 두세 번 펌킨 어쩌구 하는 게 아닌가. 펌킨은 호박이다. 분명 아기에게 시선을 주며 사뭇 예쁘다는 제스처를 지어 보이는데 기가 차게도 자꾸만 호박이라니. 서양 인형처럼 동그란 눈에 점으로 찍은 듯이 작은 입을 지닌 어여쁜 베이비는 아니지만, 한참만에 새 가족을 맞은 우리에게야 이를 데 없이 사랑스럽고 귀한 아기다.
떨떠름해하는 나에게 미국인과 동행했던 친구가 변명하듯 얼른 문화 차이라며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미국 사회에서는 귀여운 아기의 애칭쯤이 펌킨이라는 것. 나아가 어른을 가리키면서 펌킨이라 할 경우, 이는 주요 인물이나 거물을 이르는 슬랭어라 한다. (진짜 맞나?) 아무리 의식이며 가치기준이 다르기로서니 별 볼일 없는 못난이의 상징물인 호박을 두고 천지차이 나는 생각을 하겠나 싶어 믿기지 않은 채로 어정쩡 웃어넘겼더랬는데. 하지만 실제로 현지에 와서 호박을 보니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었다. 호박이건만 정말로 'so cute'에 ‘very pretty’였다.
그 시각, 한국이 한밤중만 아니라면 당장 딸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여기서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참한 호박을 보았노라고. 더불어 시월 마지막 밤의 축제 정경을 들려주고 싶어 달리는 차 안에서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 <1993>
대학생 아들에 딸내미는 하이틴 시절이던 당시, 친구들과 처음으로 미서부 구경을 왔던 93년 얘기다.
꿈에라도 미국으로의 이주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나, 그때 광활한 자연과 변화무쌍한 경관을 보여준 서부에 내심 혹했던가.
그 후 몇 년 뒤 우리는 결혼한 아들만 한국에 남기고 세 식구가 미국행 비행기를 탔으며 다시 나 혼자 한국으로 리턴했다.
며칠 후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집에 다니러 간다.
아들의 간곡한 청이 있어서이다.
나이도 있으니 언제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르는데 아빠를 설득해 한국에서 여생을 같이해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