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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27. 2024

안개에 점령당한 고근산오름

고근산은 서귀포 신시가지에 있는 오름이다.

서귀포에서 삼매봉 하나 넘어오니 신시가지는 온통 희뿌였다.


몽유병자처럼 흐느적대며 안개가 거리를 배회하고 다녔다.

고근산 중턱에도 자욱한 안개가 뭉텅이로 밀려다녔다.

꼭대기 정상은 치달리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앞뒤 옆으로 온통 안개천지라 건너다 보이는 고층 아파트들이 낯설었다.

마치 요새 세간사처럼 부옇게 흐린 시야, 답답하고 깝깝한 데다 모든 게 불확실하기만 하다.


주말이지만 흐린 날씨라 황선생은 가까운  솔오름에 가자고 했다.


도반인 그녀는 영실 윗세오름을 자주 가는데 이번엔 대신 옆동네 고근산이 어떠냐고 했더니 즉각 오케이~.


주차를 시키고 우리는 고근산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포장도로 지나 숲에 이르기도 전, 먼저 발길 동여매는 자연의 소소한 경에  빠져들었다.

조롱조롱 거미줄에 맺힌 이슬.


강아지풀 고개 숙이도록 무거이 적시는 몽롱한 안개.

투명한 옥구슬 알알이 꿰어 고은님 오시면 선물하려 기다리는데 나 기꺼이 님되어 본들 어떠리.

멀리까지 갈 필요가 무에 있으랴. 지척에서 자연은 색다른 모습으로 이리도 반겨주는데.

초입에서 맞아주는 구절초 꽃도 안개에 젖어 세수한 듯 말간 얼굴이었다.

풀잎마다 이슬이 맺혀있었다.

밤새 비가 내린 것처럼 숲은 푹신 물을 먹어 축축했다.

숲에 들자 나무에서 툭 툭 물방울이 떨어졌다.

물기 스민 삼나무 줄기 색깔은 짙은 고동색이었다.

안개 입자는 자디잘아도 수분 머금어 숲 전체가 눅눅했다.

시월 들어 부쩍 수척해진 숲은 그래도 한껏 청량하고 신선했다.

대체로 완만한 산이지만 산책길이 여러 갈래로 나있어서 경사로 대신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야자 매트가 깔린 길은 편안하나 눅진하게 젖은 나무 계단은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산정에 이르러 전망대에 올랐어도 지척 구분이 안될 만큼 온통 뿌연 채 시계 제로.

시야가 막히니 숨이 갑갑해지는 거 같았다.

마치 공기가 희박한 고산지대처럼.

한라산이 마주 보이고 서귀포 앞바다가 푸르게 드러나던 장소인데 아무것도 짚이지 않았다.

분화구 역시 안개에 가려 미궁처럼 아득히 여겨졌다.

소나무 우듬지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갈 길 잃었는지 우두망찰 앉아 있었다.

우짖는 소리도 까먹은 듯 조용했다.

분화구를 끼고 한 바퀴 돌아서 내려올 즈음, 안개가 약간 벗겨졌다.

범섬이 보이고 문섬, 섶섬, 제지기오름, 지귀도까지도 드러났다.

그도 잠깐, 다시 안갯속으로 모든 풍경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처음엔 거처를 신시가지에 정하려 했는데 부동산에서 말렸던 일이 생각켜진다

여긴 서귀포보다 습도도 높고 안개가 많이 낀다고 했다.

섬의 특성상 습도라면 각오해야겠지만 기실 서귀포 원도심도 여름철 꿉꿉한 습기는 장난 아니다.

그런데 이쪽은 더 심하다면 어느 정도일까?

제습기는 필수이며 덥지 않아도 에어컨을 켜야 하는 지역이다.

영화 애수였나, 가스등이었나.

그리도 서정적이던 안개가 낭만으로 느껴지지 않는 얄궂은 서귀포다.

안개비 굵은 빗발로 변할 때까지 꽤 한참을 그럼에도 우리는 개에 흠뻑 취해 고군산 자락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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