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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27. 2024

면형의 집에는 250년 된 녹나무가 있다

그새 제주섬으로 내려온 지도 삼 년이 꽉 채워졌다.

그간 하늘만 맑으면 날마다 들떠서 겅중거리며 섬 온 데를 쏘다녔다.

오죽 나돌아 다녔으면 서귀포에 와서 작성한 포스팅이 백여 편이나 될까.

블로깅을 많이 하면 뭘 하나? 내실은커녕 건질 말 별로 없는 가벼운 쭉정이 글에 기록용 사진 나열식의 난전이나 펼쳤으니...

경조부박한 놀이일망정 그동안 지치지도 않고 거의 날마다 꾸준히는 해왔다.

해서, 명소 구경은 물론이고 올레길 걷고 오름 오르며 구석진 데까지 들쑤시고 다녀 이제는 웬만한 데는 주르륵 꿰다시피 한다.

몽고 침략 시부터 4·3까지의 역사 현장이며 다크투어에 적합한 곳은 물론 바다 오염이 유독 심한 지역이 어디인지 답사 통해 눈에 익혔다.

어느 바닷가 물빛이 제일 고운 지도, 어느 섬 풍광이 가장 멋진 지도 나름 훤하다.


십 년만 젊었다면 제주 관광 가이드조차 마다치 않으련만.ㅎ

심지어 어디에 가면 달래, 쑥 무성하고 방풍나물과 번행초 수북하게 기다리는지를 안다.

물때 맞춰 가면 어느 바닷가 어떤 장소에서 바지락을 캐고 톳과 미역을 건질 수 있는지도 안다.

보너스처럼 주어진 이곳에서의 축복 넘치는 나날들, 즐기며 노는 데 빠져 주일미사도 궐하기 일쑤였다.

한때 착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음에도, 냉담에 가까운 이른바 나일롱신자로 날이면 날마다 놀러 다니기 바빴던 자신.

천주교 성지 순례를 작정하고 했다기보다 여기저기 오가다, 하영 올레 걷다가, 또는 오후 잠시 산책 삼아 면형의 집이나 하논에 들렀다가 느꼈던 무람함.

그것은 나태해진 믿음에서 오는 본질적 자성에 따른 겸연쩍음이다.



7층에 이사 온 한 자매님이 면형의 집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다.


쾌히 그러마고 하고는 앞장을 섰다.


중앙로를 따라 한라산 방향으로 곧장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 작은 골목길 잠깐 걸으면 면형의 집에 이른다.


면형(麵形)은 한자로 밀가루 면에 형상 형자를 쓴다.


이는 성체성사 시 사용되는 밀떡이 성체로 바뀐 후에도 그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겉모양을 이르는 말이라고.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수도원이기도 한 면형의 집은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피정센터이다.


예수께서는 공생활 중간중간 외딴곳으로 떠나 홀로 머물며 기도하셨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는 '피세정령(避世靜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고요한 침묵 속에 홀로 머물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묵상하고 기도하는 영신 수련의 여정인 피정.


피정센터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조용히 집에 머물며 하루 만일지언정 오롯하니 자신 스스로를 점검해 보면 좋으련만.


리따 자매님 덕에 장궤틀에 무릎 꿇고 모처럼 내면으로 침잠해 깊숙이 들어가 보는 이런 숙려의 시간을 갖기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그간 가벼운 일상잡기나 끄적대며 글 다운 글과도 멀어졌다.


저녁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제주 풍경을 크로키하듯 그려대느라, 채 정리 안된 설익은 기록과 사진들 마구 펼쳐놓기 일쑤였다.


언제나 철이 들고 부끄러움 알게 될는지....


녹나무를 그래서 주제로 삼았다.


면형의 집에 들어서면 맨 먼저 높이 16.5m가량되는 우람한 녹나무가 기다린다.

서귀포시 지정 보호수로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250년생 노거수다.

신목 반열에 오름직한 녹나무 압도하는 위용에 옷깃 여민 다음 주위를 찬찬히 둘러본다.

녹나무에 가려진 겨자색 본관과 연회색 수도원 성당이 옆으로 드러난다.

청명한 날 정원 중앙에 서면 우뚝 솟은 한라산 웅자가 마주 보인다.

면형의 집 입구 앞마당에는 새하얀 김대건 신부님 조각상이 조촐하게 서있다.

이곳은 제주 천주교 전래 초기부터 120여 년을 이어 오고 있는 천주교 사적지로 오랜 역사가 서린 유서 깊은 장소다.  

프랑스인 다케 신부가 1902년 이곳에 건립한 홍로 본당은 오랜 기간 산남지역 선교의 중심지 역할을 맡아 왔다.

또한 다케신부가 일본에 파견 나온 친구 사제로부터 온주밀감나무 열네 그루를 선물 받아 심은 곳이기도 하다.

본관 왼편 뜰에는 그때 일본에서 들여온 귤나무를 최초로 심었던 감귤 시원지 기념비도 세워졌다.

열네 그루의 귤나무 중 하나는 백 년 넘게 면형의 집 앞마당을 지켰는데 몇 년 전 고사했다.

고사목은 방부처리 후 비정형 나무조각 작품으로 재탄생해 <홍로의 맥>이라는 제목으로 성당 로비에 걸려 있다.

주님의 집 안내 표식 따라 성당에 들어서면 한라산을 모티브로 한 제대와 상투를 튼 한복 차림의 십자고상 독특하다.


신축 항쟁으로 폐허가 된 가까운 하논 본당 옛 터는 이후 화해와 상생의 상징처로 거듭났지만 당시 천주교는 크게 타격을 입었다.

이재수의 난으로 인한  천주교 탄압에 따라 와해 위기에 처한 제주 천주교 재건의 기틀을 마련한 데가 홍로 본당이다.

홍로 본당에서 출발하여 공소 시절을 거쳐 한국순교복자수도원, 면형의 집, 김기량 펠릭스베드로 수도원 등의 명칭이 따랐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대신학교가 제주도 피난처에서 신학교로 사용했으니 당시 사제들을 양성한 자리이기도 하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피정센터로 천주교 신자들과 비신자들을 위한 피정의 집이 연중 운영되고 있다.

회의실, 숙소와 식당, 휴게실 등 기본시설과 함께 넓은 잔디 정원에는 십자가의 길과  야외 교육장 등이 조경수 사이사이 자리했다,


특히 십자가의 길 14처 천천히 돌며 처처마다 말씀 묵상하노라면 저절로 경배의식이 뒤따르게 된다


이 포스팅을 하기 앞서 면형의 집 주보성인인 제주 최초의 영세자였던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제주도의 사도’라 일컫어지는 김기량, 현재 천주교 복자 김기량 순교 기념관과 현양비가 고향인 함덕에 세워졌으며 제주시 구남동 2길에는 김기량성당이 있다고.


제주시에 볼일이 있으면 언제이고 찾아 뵐 나의 다음 성지순례지이다.

함덕리 출신으로서 이 고장에서 처음으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수행한 제주지역의 첫 순교자인 그다.

탐라 섬에 공식적으로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기 앞서서, 그보다 사십여 년 전에 천주교에 입교하고 51세에 순교한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선주로서 무역업에 종사하던 42세 때 약재와 그릇들을 싣고 서귀진을 거쳐 모슬포로 항해하다가 거센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한 달 가까이 표류하던 중 해류에 밀려 중국의 광동 해역까지 흘러가다가 다행히 지나가던 영국 배에 발견되어 구조를 받는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그는 홍콩의 파리 외방전교회로 가게 돼 거기서 80여 일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때 조선인 신학생 이 바울리노에게 교리를 배워 1857년 루세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1858년 조천포를 통해 고향에 도착한 그는 제주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심으로 애썼다.

그리하여 이태 후인 1860년 경에는 집안 식구 외 20여 명을 입교시킬 수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한창일 때 그는 세례 받을 준비를 마친 예비신자들을 데리고 통영에 나갔다가 체포돼 관아로 이송되었다.

모진 문초 끝에 마침내 1867년 1월 교수형으로 순교하였으며 섭리에 따른 신앙의 씨앗을 제주에 심은 그는 2014년 복자로 시복됐다고.


아마도 수도원이라는 점과 일련의 역사적 사실들이 연관되어서 그러하리라.

면형의 집에 올 적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물한 개의 미션, 스페인에서 온 세라 신부가 만든 전도관 건물이 오버랩되곤 한 연유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한 사제들의 종교적 열망과 신념의 총체인 점에서 그 옛적 홍로 본당과 미션이 자연스레 겹쳐진.
 

* 주소 : 서귀포시 서홍동 204
* 전화 : 064-762-6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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