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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28. 2024

정취 이국적인 올레길 7코스

애초부터 올레길은 맘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걸어볼 작정이었다.

순차적으로 차례차례 돌아야 할 룰 같은 것도 없겠지만 구태여 어떤 형식에 매일 필요도 없으렷다.

시작점부터 마침점까지 꼭꼭 찍어가며 모범답안지 반드시 만들지 않아도 된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물처럼 아무 데도 걸림없이,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편안하고 느긋하게.

등산하면서 산 정복하기, 올레길 걸으면서 완주하기, 이딴 식으로 스스로를 옭아맬 까닭이 없으렷다.

그렇다고 추천 코스나 이름난 곳부터 골라 걷겠다는 계산 같은 걸 한 건 아니다.




우연히 서귀포 해안의 절경지 거의 담긴 길이라는 올레 7코스를 걸었다.

출발은 올레시장이든 칠십리 시공원이든 천지연이든 새연교든 편할 대로~

이어서 삼매봉- 외돌개 -돔베낭길-망다리-법환포구-강정 바당올레-서건도 앞-강정천-월평포구-아왜낭목까지의 코스다.

총길이 17.7km로 쉬엄쉬엄 걸으면 네댓 시간 걸린다.

좌측으로는 쉼표처럼 선연히 찍힌 섬 거느린 바다, 우측은 수목 우거진 해안 언덕이라 정경 훌륭하다.

창문에서 늘 마주하는 섶섬 문섬, 조금 지나면 나지막한 새섬에 이어 범섬 차례로 나타나 곁을 따른다.

망부석이듯 외따로 솟은 외돌개 비경이 기다리는 벼랑 길섶에는 감탕나무 아왜나무 멀구슬나무 우거졌다.

까끄레기 투성이인 한삼덩굴이며 칡, 들찔레 억새꽃 망개덩굴 털머위 애기동백 볼래낭(보리수나무) 뒤엉켜 숲 터널 이뤘고.

오른쪽 풍치 좋은 자리마다 예쁜 카페나 새하얀 리조트 건물 자체가 액자 안 풍경을 만들어낸다.

더러는 사유지라 길이 끊겨 돌아가는 곳도 있으며 서유럽 성채같이 높다란 돌담 사잇길도 걷게 된다.

담쟁이 닮은 줄사철나무 현무암 돌담 휘감아 오르고 그늘엔 무성히 이끼풀도 자란다.

늘씬한 허리 곧추세운 채 이열 횡대로 늘어선 야자수는 아득히 먼 이역의 정서 진하게 풍긴다.

망다리와 공물 해변을 지날 즈음엔 제주답지 않은 몽돌해안도 만난다.

구멍 숭숭 뚫리고 거무튀튀한 용암석이 아닌 보통 돌밭이다.

동글동글 부드러운 호박돌 몽돌 깔린 바닷가는 파도 소리도 순하다.

말 그대로 놀멍쉬멍 사진 찍고 또 찍어대며 시간 셈하지 않고 걷다 보니 법환포구에 이를 즈음 노을이 내린다.

구름장 사이로 석양빛 내쏘며 신비로운 틴들현상을 보여주니 발걸음은 자연 더 더뎌졌다.

그래도 이게 웬 행운인가, 저녁 틴들현상과도 조우하다니.

땡큐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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