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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27. 2024

쇠소깍 물빛 깊어지는 철

가을 깊숙이로 진입하는 월이다.

높아진 하늘에 흰구름, 날마다 목화송이 같이 푸짐스럽게 부풀어 오른다.

한낮 햇살 따가워도 절기는 못 속인다.

소슬해진 저녁이면 자욱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바람결은 이에 화답하듯 더할 나위없이 청량하다.


화염 이끌고 제지기오름 옆에서 솟아오르는 태양.


서귀포 앞바다 눈 시리게 청푸르다.

하루 푹 쉬려던 계획이 수정된다.

날씨에 대한 예우상 가까운 쇠소깍이라도 잠시 들르기로 한다.

쇠소깍 들머리 교각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한라산 백록담구름 거느렸고 맹살공원 저 아래는 물길 푸르다.

잘생긴 암반들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 그 어느 때보다 기운차다.

여태껏 본 중에 오늘만큼 효돈천 수량 풍부했던 적이 없었다.

확실히 올여름은 비도 잦았을뿐더러 걸핏하면 국지성 호우를 쏟아붓더니만 개천 물이 눈에 띄게 불어났다.

콸콸 여울져 흐르는 물소리에다 가끔씩 작은 폭포 냅다 곤두박질치며 지르는 환호성 통쾌하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기암괴석 규모 커진다.

깎아지른 절벽도 장엄스럽다.

청록빛 비밀스런 소(沼), 쇠소깍에 이르렀다.

줄 배 형식의 테우와 보트를 타는 물놀이객 구명조끼가 꽃잎같이 붉다.


암록빛이었다가 청록빛 여울지는 쇠소깍이다.

하효동 쇠소깍 해신당이 있던 자리를 지난다.

양가에 절벽 병풍 두르고 노송 그늘 짙게 드리워져 빛깔 이리도 깊지 싶다.


물질하는 해녀들이 용왕신께 안위를 빌던 자리여서이리라.

문득 떠오르는 그림.

청이가 치마폭으로 눈 가리고 뛰어든 인당수 이리 청청할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뛰어내린 남강 이리 짙푸를까.

저 아래 여유만만 뱃놀이 즐기는 객들, 모쪼록 일상의 회포 여기에 다 풀어놓고 떠나소서.

그대들이 흩뿌린 온갖 만감 저 바다에 섞여 투명하게 정화되도록.

한라산 골짜기 쓰다듬으며 흘러온 물길 곧이어 바다와 만난다.

쇠소깍 민물은 그렇게 청푸른색 해류와 섞이리니.


바다 저만치 송판 쪽 같은 지귀도가 떠있다.

여전스레 쉼없이 밀려오는 파도.

검은모래 해변 가득 마구 부려놓는 허연 파도에 섞여 흔적 사라져 가는 쇠소깍 .

이쯤이면 두 손 들 밖에.

쇠소깍은 깨끗이 항복한다.


바다에겐 판판이 지고 만다.




태평양에 잇닿아 있는 무한 청청 제주 바다.

수평선 너머 일본은 활처럼 굽어진 방파제 되어 태평양 거센 파도로부터 불철주야 한반도를 보위하고 있다.

태풍 몰아쳐도 일단 일본을 통과하는 동안 세력 약해져, 법환포구 할퀴어대는 파도 그나마 누그러든다.

밉상 지기는 이웃나라 일본도 그럴 땐 전위부대 역할 톡톡히 수행해 주니 덜 밉다.

검은모래 해변에는 떠나는 여름 전송하며 각자 떠나온 여정 반추하는 여러 뒷모습들.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작품이 아니라도 어딜 가나 만나게 된다.

따가운 햇살이 귀가를 서두르게 한다.

웬만하면 쇠소깍부터 걸어 보목 제지기오름 올라 솔바람 쐬다 오련만, 땡볕에 밀려 집으로 직행,


거처에서 내려다보니 저만치 섬처럼 뜬 제지기오름 유독 짙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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