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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Nov 03. 2024

삶은 색색의 조각보

외돌개에서 돔배낭길 따라 걷다 보면 정원 멋스러운 카페와 만난다.

제주 올레길 7코스가 지나는 길목이기도 하다.

가장 맛 좋은 한 잔의  커피를 뽑을 수 있는 원두 알맹이 수효가 60알이라나.

딱 그만큼의 원두를 갈아야만 향 최고로 근사한 커피 맛을 낼 수 있단다.

암호 같은 상호를 단 카페는 해안 벼랑길 옆 언덕에 자리잡은 터라 오션뷰 훌륭하다.

물고기 꼬리와 흡사한 작은 섬을 거느린 문섬이 가파른 단애 사이 홀로 돌올한 외돌개를 그윽이 건너다본다.

전망 한번 끝내주는 이 장소에서는 노을빛 또한 일품이다.



풍광 근사한데다가 드넓은 정원에는 아기자기한 조각상이 보기좋게 배치돼 있다.

쥐라기 공원을 연상시키는 소규모 밀림에는 공룡이 울부짖고 수련과 부들 무성한 연못가엔 하마가 서있다.

동생을 업은 누나도 있고 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도 있다.

팔등신 여신상, 만화영화에 나옴직한 동물 캐릭터 표정이며 몸짓 재미졌다.

스산해진 가을이라서인지 분수도 폭포수도 끊겼고 여름만큼 기화요초 곱게 피어있진 않았지만 여전스런 분위기.

들릴 듯 말 듯 뜨락에 나지막하게 깔려있는 음악은 몽환적으로 따르고.

차향 머금은 채 담소 나누거나 혹은  정원 거니노라면 여기서 한두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미틈달 어느 오후.

제주도에서 태어나 여기서 대학 나와 줄곧 직장 다니다 은퇴한 지인이 괜찮은 찻집으로 안내하겠다며 차를 몰았다.

뒷길로 들어와 처음엔 몰랐는데 바로 그 카페였다.

매번 걸어서 카페 앞을 지나쳤으므로 뒤편에 차도가 있는 줄 알 턱 없었고.

프런트에 들러 그녀는 커피, 난 자몽 스무디를 주문했다.

날씨가 온화해 테라스에 차려진 다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한 시간여 서귀포의 가을을 즐겼다.

독신인 그녀라 또 다른 노년의 일상과 삶과 문학을 논하면서.

형부가 서귀포의 유명 시인인 H 씨라는 가정사도 그렇게 듣게 되었다.

자신이 결혼이란 제도를 혐오하게 된 원인 제공자가 그였다는 얘기에서 그녀 언니의 불행한 일생이 엿보였다.

한 사람의 삶을 어떤 한 단면만으로는 일괄 재단할 순 없긴 하나...


점차 해풍 서늘해져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유독, 외진 창가에 숨듯이 걸려있는 색색 고운 조각보가 눈길 끌었다.

그간 칠십여 성상을 살아오면서 실제 여러 유형의 인간 군상을 만나봤다.

조각마다 다른 색깔을 띤 조각보이듯 각자 다른 색채와 형태의 삶을 살고들 있다는 걸 알긴 했지만... 씁쓸했다.

제각각 소설 같은 인생사를 산 그들은 운명이었을까 선택이었을까, 그 모두는.

여러 생각들로 모처럼 사념 깊어져 우린 말없이 고즈넉한 시간을 보냈다.

에 정답은 없더라는 결론에 이르러서.

범종 맥놀이 퍼지듯 노을빛 은은히 스며들 즈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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