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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02. 2024

바다 밭을 경작하는 여인들

호오이! 애연한 숨비소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국가 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된 것은?

바로 우리나라 해녀다.

바닷속에 산소 공급 장치 없이 들어가 해조류와 패류 채취를 생업으로 삼는 해녀를 잠녀(潛女) 또는 잠수(潛嫂)라고도 한다.

자신의 호흡에 의존하여 자맥질로 해삼, 소라, 전복, 미역, 톳, 우뭇가사리 또는 문어나  가오리 등을 채취하는 어업 종사자가 곧 해녀다.


해녀들은 각종 해조류와 어패류 등의 수산물을 채취하지만 한때는 우뭇가사리 위주로 작업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일제 때다.

우뭇가사리는 젤라틴처럼 굳는 성질이 있어 콩국에 넣거나 요깡을 만드는 외에 주목적은 실험실에서 미생물 배양에 사용되는 고체 배지로 쓰이기에 일어로는 天草(テングサ)라 불리며 유난히 일인들이 귀히 여기는 해조류다.

삼국사기에도 언급될 만큼 역사가 긴 한국 해녀라 일제강점기의 해녀들은 주로 우뭇가사리 채취에 동원되었는데 수입이 좋다 보니 해방 후에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기대를 따라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해파랑길을 한 시간 정도 천천히 걸어가면 오륙도에 이른다.

건너편으로 해운대 시가지가 마주 보이는 남구 용호동 관내이다.

마침 물질을 마치고 나오는 해녀들이 잠수복을 벗은 다음 각자의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기에 그중 한 집으로 향했다

갓 건져낸 싱싱한 전복 해삼 멍게 소라로 만든 회가 주메뉴이나 성게알을 넣은 고소한 전복죽을 주문했더니 1만 원이다.

옆자리의 청년들은 갖가지 해물모둠 앞에 놓고 소주잔을 기울인다.

쟁반같이 큰 접시에 회가 푸짐해 보이는데 가격은 5만 원, 곁다리로 딸린 물미역도 넉넉하다.   

상추와 깻잎은 한 소쿠리나 되는 게 쥔장 인심이 후하다.

부산이라는 관광도시를 끼고 있어 해산물 수요가 높아 시세는 좋으나 자원 고갈로 수입은 전보다 못해 바닷가에서 해녀들이 직접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했다.

쥔장에게 실실 말을 걸어보았더니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꼬박꼬박 친절하게 대꾸해 준다.  

물질하는 해녀 중 젊은 층은 50대이고 연장자는 70~80세로 평균연령 대가 아주 높은데 뒤를 이을 해녀가 없는 실정이란다.

어려서부터 바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즐겨 헤엄치기를 하고 무자맥질을 익히면 16세 무렵쯤 독립된 해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시대적 추세에 따라 자식에게 고된 일 시키려는 부모도 없을뿐더러 해녀가 되겠다고 나서는 젊은이 또한 없다고 한다.

열 길 물속을 넘나들며 일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잠수병이며 이명이나 저체온증 등, 요즘 사람들이 기피하는 힘들고 위험한 직업인 때문이다.

이에 나잠인의 후생 복지에 초점을 두고 정부 차원에서 잠수병 치료와 복지시설 등 부대사업을 적극 펴나가는 한편 해녀학교를 별도로 운영하기도 한다고.

그럼에도 고령화 현상에 따른 해녀 감소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바다 밭을 경작하는 해녀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무형문화재 보호 측면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나와야 되겠지만 글쎄?


우리나라의 해녀는 대부분 제주도에 집중 분포돼 있다.

그러나 해안선 길이가 306.2㎞나 되는 부산광역시라 영도구와 다대포를 비롯해 기장군 일광, 연화리, 학리 등지에서 560여 명의 해녀가 현재 활동 중이라 한다.


물질 작업을 하려는 사람들은 일단 어장에 대한 입어권을 가진 마을 어촌계에 가입하고 해녀회 회원이 되어야만 해녀 활동을 할 수 있다.


이천면 해녀들은 마을단위의 어촌계에 가입해 공동체를 이루어, 자치적으로 물질 시기를 조정하는 등 공동 채취 작업을 해나간다고 하였다.


그들만의 엄격한 규칙도 있다. 해산물 채취 시 산란기는 피하는데 소라의 금채기는 6월부터 9월까지, 전복은 10월부터 12월까지다.


현재 유통되는 전복은 거의가 양식, 자연산은 퍽 귀하다. 소라는 깊은 바다로 나가야 하므로 가격은 세지만 작업이 힘들어 여기선 주로 얕은 바다에서 성게와 해조류를 채집한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물질이라 노련한 선임이나 상군이 아닌 중, 하군의 경우 상대적으로 수입이 낮다. 또한 물질할 수 있는 잠수시간은 해녀의 폐활량에 따라 다르나 보통 1분에서 2분 내외란다. 게다가 물속 작업이라 상시 위험이 상존하는 데다 노동시간도 길고 일 자체도 고되다.  


기장군 이천면 '이천 해녀 복지 회관'에서  해녀 홍 영자 씨를 만나봤다. 그녀 말에 의하면 대도시 인근이라 해산물 수요가 높기 때문에 시세는 좋으나 해산물의 고갈로 수입은 전만 못하다고 했다.


홍 씨에 따르면 "스무 명가량인 이천 해녀 중 제일 젊은 사람이 54세이고 최연장자는 76세로 평균연령대가 꽤 높은 편"이라고.


그녀 역시도, 시대적 추세에 따라 힘들고 험한 물질을 하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며  뒤를 이을 해녀가 없는 실정이라며 아쉬워했다.


갈수록 고령화 현상에 따른 해녀 감소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단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20여 년 지난 뒤 더 이상 해녀를 만나볼 수 있을까 싶잖다. 더 늦기 전에 해녀 대책이 나와야 될 시점이 지금 아닌가 싶다.


건조한 사막지대인 캘리포니아를 뒤로 한 터라 부산에 와 거처를 정할 때 우선순위로 꼽은 게 있다. 산 좋고 바다 고 지하철 등 교통 편리한 곳을 찾다가 낙점한 지역이 일광이다.


이른 봄 어느 날이었다.


해맞이를 하고 천천히 해변을 빠져나오려는 그 순간.  해안에 물질 채비를 한 일단의 해녀들이 나타났다. 와우! 심봤다!


그녀들은 마른 억새 줄기를 불쏘시개 삼아 송판 쪽 얼기설기 올려 능숙하게 불을 피웠다. 그녀들이 지핀 화톳불 언저리에서 몸을 덥히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들 도구만을 별도로 사진에 담고 싶은 맘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위험한 바다에 나가 일하는 만치 터부시하는 것들이 많을듯해서다.


지난번 오륙도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나오는 장면과 맞닥뜨렸으나 노골적으로 사진 찍지 말라고도 했다. 하긴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는 현장을 직접 담으려 앵글 들이대면 어느 경우나 거부감부터 갖기 마련일 터.   


구름 뒤로 숨은 태양, 해풍은 부드러웠다. 그래도 예년에 비해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건만 파도 잔잔해 물질하기 좋다며 아침 여덟 시부터 입수한다고 했다.


얕은 바다에서 주로 소라, 전복, 해삼, 문어, 미역, 톳, 우뭇가사리, 모자반 등을 채취하는 그들. 요즘 주수확물은 성게와 홍합 톳 돌미역으로 망사리 그들먹하게 채워주던 바다 사정도 전만 못해 수입이 영 줄었다 한다.


부력을 이용하여 가슴에 안고 헤엄치는 오렌지색 테왁 밑에는 채취물을 담는 그물 자루인 망사리가 달렸다. 전엔 집 울타리에 심은 박이 지붕에서 둥두렷 여물면 속을 파내고 테왁을 만들었으나 스티로폼으로 대체된 지 오래란다. 테왁은 작업 장소까지 헤엄쳐 갈 때 쓰이며 물질 중에 물 밖으로 나와 숨을 고를 때 의지처가 돼준다.

그녀들이 쓰는 도구로는 성게 문어 등을 딸 때 쓰는 호미 비슷한 호맹이, 빗창은 전복을 떼어낼 때 사용하는 길쭉한 쇠붙이다. 작살은 고기를 잡을 때 쓴다.


모자반 톳 미역 등 해조류를 채취할 때는 낫 모양의 정게호미를 이용한다. 조개 종류를 캐는 쇠꼬챙이 갈퀴인 갈고리도 지니고 간다.


 보통은 물찌라고 하는 조수간만의 차가 적은 조금 시기일 때 작업에 임한다는 그들. 음력 8일이나 23일 무렵이 조금으로 수위가 낮은 데다 조류 흐름도 약할 때라 한다.

고무옷은 추운 겨울에도 물질할 수 있는 내한력과 내수압 능력 등을 갖췄다. 그 옷이 나와 긴 시간 일할 수 있어 작업능률을 올려줘 경제성도 높여졌다.


반면 고무옷의 부작용도 만만찮다. 피부질환과 허리통증 잠수병 등 고질을 안긴 탓에 진통약을 달고 산다 푸념들을 했다. 70년대에 보급된 고무옷을 착용하면서부터 부력 때문에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7~8㎏ 나가는 납추를 벨트처럼 차다 보니 생긴 허리병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해녀복인 고무옷은 30만 원이나 하는 고가품이라고 귀띔한다. 그밖에 귀마개를 하고 솜을 둔 버선에 목장갑을 착용한다. 바다에 들어가면 물안경을 끼고 물갈퀴라는 오리발을 신고 작업에 임한다. 물질 나서려 채비 갖추는데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입수하는 순간부터 해녀들은 삶의 최전선에 마주 선다.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 제주에서 시작된 해녀 인생,


제주 여인의 상징같이 굳어진 강인함과 근면성은 해녀에서 비롯됐다. 여성 경제활동의 주축을 이룬 제주의 해녀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직업 중의 하나다.


 어려서부터 물과 친구 되어 놀다가 자연스레 무자맥질을 익혀 열댓 살이면 자동으로 해녀가 되었다. 물질 통해 차츰 가계를 보태다가 길이 나서 아예 가정경제 책임지는 주역으로 변해갔다.


너른 바다 앞을 재어 / 한길 두길 들어 가니 / 저승 길이 오락 가락 / 타고 다니는 칠성판아 /이고 사는 명정포야 / 못할 일이 요 일이네 / 모진 광풍 불지 마라... 애절항 해녀노래 가사의 일부다.

팔순도 훨씬 넘은 듯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의 납추를 손질해 주는 청년이 눈에 띄었다. 연철이라는 납추는 납덩이 무게가 있어 안 그래도 굽은 허리를 더 굽게 만들었다.


 보아하니 아들은 아니고 손자인 듯, 해녀 장비를 들고 따라와 일일이 챙겨주며 할머니 등에 애틋한 시선을 얹는다. 노구 이끌고 물질한다니 집에선 틀림없이 식구대로 말릴 테지만 할머니는 평생 친구나 진배없는 바다로 오늘도 나왔다.


이는 물질(物質)에 대한 노욕이 아니라 습관처럼 인이 박힌 물질을 그의 생에서 도저히 떼놓을 수 없어서 이리라. 거동 불편할 정도로 몸이 정 말을 안 듣는다면 몰라도 이 할머니의 물질은 눈 감는 날까지 이어질 것 같다.

어깨에 걸치거나 머리에 얹고 바다로 나아가는 테왁과 망사리를 이 할머니는 끌고 간다. 그 무게마저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하긴 고무옷과 허리에 찬 납덩이만도 감당 버거운 무게일 게다. 물에만 들어가면 몸피 둔한 고령의 할머니는 그러나 날렵한 인어아가씨로 변한.


해녀들의 작업이 끝날 시각 즈음이면 손자는 또 마중을 나오리라. 일단은 집에 돌아간다 해도 그동안 결코 폰이나 들여다보며 게을러 빠지게 빈둥빈둥 놀지는 않을 청년 같아 보인다.


호오이~호오이~내도록 숨을 참았다가 물 밖으로 나와 몰아쉬는 휘파람 소리 닮아 어딘지 애잔한 숨비소리.


물질은 바다라는 험한 공간에서 목숨 걸고 하는 작업이다. 물 밖으로 올라올 때는 숨을 남겨두고 나와야 한다. 전복이 보이더라도 나올 시간을 넉넉히 두어야 하므로 욕심부려선 안된다.


이 불문율을 육십 성상 잘 지켜온 할머니. 오랜 기간 물질로 기량이 뛰어난 데다 암초와 해산물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알고 있는 베테랑 해녀 일시 분명한 할머니는 엉거주춤 숙인 채 바다로 들어간다.


그러다 금세 물속으로 자맥질해 숨는 할머니를 갯바위에 서서 염려스러운 시선으로 뒤좇는 손자.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하려는 할머니를 짜증스러워하지 않고 묵묵히 뜻 받잡아 수발들기가 쉽지 않기에 더욱 대견해 뵈는 정경이다.

연달아 주워섬기다 보니 이제 내 호흡이 가빠진다. 적당히 해두고 마무리 지어야겠다 싶었는데 저만치서 가냘프게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를 외면할 순 없다.


진작에 입수한 해녀 입에서 벌써 호오이~ 숨비 소리가 들려온다. 휘파람 소리를 닮았으나 푸른 바다가 배경이라서인지 휘파람보다 더 애틋하게 들리는 숨비소리다. 여리여리 해맑은 소리임에도 왠지 마음 싸해지다 못해 짠해진다. 그 소리는 어느 결에 가슴 뻐근하고도 먹먹하게 만들고 만다.   

해녀들이 떼 지어 헤엄쳐 나가 물질하는 경우를 갓물질이라 한다. 이처럼 해녀들은 여러 명이 공동작업에 나선다. 각자 작업이지만 공동체 성격이 짙어 분배도 상, 중, 하군 위치에 따라 나눈다. 작업 경험과 체험에서 얻어진 몸 기술에 따른 일종의 계층 사회가 해녀 사회다.


물질이 끝나면 다 같이 해녀회관으로 가서 묵직한 짐을 풀어놓는다. 저마다 물살과 싸우느라 허기져서 인지 더욱 허리가 구부정해진 해녀들. 미리 대비해 놓고 기다리는 맛깔진 점심밥으로 배 든든히 채워야 한다. 갓 잡은 횟거리도 한 접시 수북하게 나올 테고.   


몬트레이 해변에서 해달들이 노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해조류 위에 편히 누워 조개를 까먹거나 해초에 몸통을 휘휘 감고 유영하는 모습에서는 곤고한 삶이 아닌 천하태평 평화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수심 깊숙한 곳으로 잠수, 해산물 채취 작업을 하다가 물 위로 떠올라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는 호오이~숨비소리엔 서글픈 안도감이 담겼다. 살아남았구나 하는.


해녀들이 물속에서 1분 이상 물질한 뒤 수면으로 올라와 참은 숨을 내뱉는 그 소리는 하여 애연스럽다. 호오이~휘파람새 소리도 같고 슈우으~한숨소리처럼도 들린다. 흉부에 켜켜이 쌓인 한을 토해내는 탄식같이 느껴짐은 나만의 소회일까.

숨비소리 못잖게 보는 이를 애연하게 만드는  물구나무 선 자세다. 난이도가 높다는 시르시 아사나라 불리는 요가 자세 중 하나다. 많은 연습량을 필요로 하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거꾸로 서는 물구나무서기를 해녀들은 무시로 반복한다.


바다에서 하는 물구나무서기. 수영선수들이 펼치는 현란한 싱크로나이즈라면 모를까 보기에 무척 안쓰럽다. 아티스틱 스위밍은 예술의 경지라지만 생업을 위해 거꾸로 서서 바다밑을 훑으며 마치 발버둥질이라도 치는 것만 같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목도한 듯 치받는 아픔이 쩌르르 가슴에 빗금을 긋는다. 모든 노동의 가치는 숭고하고 아름답되 처연한 아픔을 수반하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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