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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Nov 27. 2024
사방에 눈
비숍에서 락크릭 레익으로 다음날은 사브리나 레익으로, 눈을 밟으며 피톤치드 향에 싸여 트래킹을
했
다.
아직 해가 오르지 않은 이른 시각, 강바람 눈바람
몹시 차가웠으나 그 냉기마저
축복이었
다.
십일
월이면 시에라 네바다 산자락에 금빛 수채화를 몽환적으로
그려내는
아스펜.
살랑거리던 고운 잎 지고 이번엔 군락지마다 하얀 나신의 추상화가 우릴 환대해 주었고 우린 환호로 답했다.
매끈한 목피에 또렷하게 드러나는 옹이가 검은 눈동자처럼 이채롭기도 하거니와 저마다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도 싶었다.
아스펜 숲 여기저기 사방 천지에 눈, 아무도 숨을 데가 없고 어떤 것도 숨길 수가 없겠다.
그 앞에 모든 건 公明正大!
오래전, 유명인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던 몰래카메라에 이어 역시 이경규가 진행하는 양심 카메라가 등장했었다.
자정 넘은 시각, 정지선을 옳게 지키는 사람에게 냉장고를 선물하기 위해 숨어서 선행자를 기다리고 있는 제작진.
하루는 머리를 심하게 흔드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모는 소형 트럭이 정지선 앞에서 딱 멈춰 섰다.
흥분한 이경규와 제작진 스태프들이 달려가서 그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깊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어찌 정지선을 정확하게 지켰냐며 마이크를 들이대자 그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때 그의 얼굴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크나큰 감동의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며 다들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한 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쇼>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TV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된다는 충격을 넘어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였다.
오늘날 급속도로
발전해 온
SNS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고, 자신의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들
한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나 활동들을 입맛대로 기분대로 취향대로 언제든 만나볼 수 있다.
나부터도 아무렇지 않게 오늘 만든 음식을 올리고 즐거웠던 여행 사진을 띄우고 시시콜콜 잡다한 일상사를
펼친
다.
지금 우리가 트루먼과 닮은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어느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또한 내 안의 관음증을 부정할 수도 없을 터다.
피터 위어가 들려준 메시지였던 미디어 경고는 이제 유난스럽지 않은 일반적
현상
이 되었으며 별생각 없이 서로가 찍고 찍힌다.
SNS와 인터넷 등 수많은 매스미디어와 정부기관의 도청에 의해 도처에서 트루먼쇼가 실제로 벌어지
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
다.
‘국가보안서신(NSL: National Security Letter)’ 이란 게 미국가 시스템 안에 있다고 한다.
요즘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NSL은 안보상의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포털사이트, 서버 대여 기업이나 메일 서비스
업체 등으로 하여금 요구받은 자료 일체를 넘기도록 강제하는 공적 문서를 칭한다.
NSL은 압수수색 영장과 비슷하면서도 ‘공표 금지(gag order)’란 예외적인 조항이 포함돼 있어 아주 특별하다.
공표 금지란 NSL을 받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누설해선 안 되도록 규정한 의무조항인 것이다.
일반인은 물론 변호사에게도 밝혀서는 안 되며 소송과 같은 법적인 이의 제기조차 금지돼 있다고 한다.
이런 무소불위의 NSL은 당초 금융범죄를 척결하기 위해 1978년 제정돼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돼 왔었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국가 안보를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
나를 비롯 누구라도 거의 가지고 있다시피 하는 대중적이고도 신뢰도가 높은 구글 G메일이다.
구글의 G메일이 개인 정보 노출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1억 명 이상의 가입자를 거느린 메신저 서비스 업체 카카오톡의 경영진이 미국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안보라는 명목 아래 엄청난 양의 개인 e메일과 자료가 아무런 제재 없이, 본인도 모르는 가운데 수사 당국에 넘어간다고 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국가 안보라는 대명제 앞에 무력하기 그지없다.
CCTV를 해킹해 개인 상점부터 군사시설까지 전 세계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는 내용의 영화가 있다.
공상과학영화 같은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공공연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은밀한 CCTV를 모아 놓은 국적 불명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한민국으로 분류된 폴더에 들어가면 서울 강남의 한 거리가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행인들의 인상착의까지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란다.
건물 주인이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설치한 CCTV를 누군가 해킹해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놓은 것이다.
세계 곳곳의 CCTV를 모아놓은 한 스마트폰 앱으로 일본의 골프장, 러시아의 호텔 로비, 교회의 설교 단상도 지켜볼 수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현재 대부분의 CCTV가 인터넷 네트워크 망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CCTV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사이트만 뚫으면 영상을 훔쳐보는 건 해커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맨해튼 주민의 4%는 평일 저녁 7시 30분 전에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6%만이 자정 이후 전등을 끈다.
뉴욕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자세한 데이터를 알고 싶으면 스티븐 쿠닌 연구원에게 물어보면 된다.
브루클린의 한 건물 옥상에 숨겨진 그의 광각 적외선 카메라는 이스트리버 건너편에 있는 건물 수천 개의 창문을 관찰한다.
이 카메라는 빛을 800단계로 구분해 감지하며, 그의 소프트웨어는 이를 통해 뭐든 알아낼 수 있다.
그는 브루클린의 가로등과 건물 정면에 음향 센서도 설치했다. 집에서 여는 파티와 자동차 경적 소리의 음량을 측정하려는 것.
오바마 정부에서 과학 차관을 지냈으며 현재 뉴욕대 도시과학 진보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쿠닌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의 기업들과
뉴욕시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는 도시 빅데이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신규 연구기관의 수장이다.
미국 정부기관이 구글 페이스북 등 포털 및 SNS를 통해 개인의 정보를 다량 수집한 사실이 얼마 전 폭로되었다.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도처에 촘촘히 설치된 CCTV 눈이 쉴 새 없이 우리를 감시한다. 누구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모든 사람이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대통령을, 정부기관을, 사회단체를, 이웃인 너와 나를 24시간 지켜본다.
거대한 ‘시선’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네트워크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인 것만은 틀림없다.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의 행위·의도·성격의 도덕적 의미를
,
올바르고 착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관련지어 파악하는 도덕의식
그것을 양심이라 정의한다.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이기도 한 양심, 그것만 건재한다면 뭇시선이 두려울 리 없으련만..
양심은 밤이나 낮이나 항상 나를 지켜본다. 양심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을 양심이 먼저 안다. 모든 언행은 물론 생각까지도 감지해 알고 있다.
내 양심은 감시 카메라에 찍혀도 괜찮은지 각자 가슴에 손을 얹어볼 일이다.
잠시 소풍 나와 만난 이 공간, 질시하고 냉소하며 비아냥대기보다 이왕이면 서로를 배려하고 성원하고 사랑하면 좀 좋아?
황홀했던 아스펜 단풍이 한 생애 마치고 낙엽 되어 저처럼 강물에 흘러가듯 우리도 언젠가 다들 먼먼 여행 떠나게 된다.
마지막 순간 회한 남지 않도록 내가 노닐던 자리를 더 아름차게 가꾸고 싶다는 생각을 다지게 된
만추였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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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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