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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Nov 27. 2024

끝물 아스펜과 산정 눈보라

비숍엔 두 계절이 교차되고 있었네.

LA에서는 아직 단풍 들지 않은 푸른 잎도 보였는데, 비숍의 만추 비경을 연출하는 Aspen은 순노랑 이파리 거의 떨구고 이미 나목 되어 서있데.

 사우스 레익 감싸 안은 바위산 기슭마다 잔뜩 쌓인 눈밭에선 허옇게 눈보라 일었으며, 
골짜기 타고 내려온 눈바람은 강바람과 합세해 냉랭하기 짝이 없는 데다 세차게도 휘몰아쳤다네.

사브리나 호수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지.

산행은 고사하고 인근 강둑에 서볼 엄두도 낼 수 없을만치 바람은 거셌고 기온은 차디찼다네.

누구나 한번은 매운 눈바람 속에 서보아야 하리.

그렇게 매인 데 없이 홀연 길 떠나보아야 하리.

자신으로부터도 훌훌히 떠나보아야 하리.

그렇게 빈 마음으로 나서면 아무 흔적 남김없이 스러져갈 구름이 동행해 주리니.

그때 우리는 들으리라.

산정 눈보라에 저 숲 나뭇잎 속절없이 지는 까닭을.

에스펜델 마을 초입 폭포가 있는 집.

기갈 센 강풍에 폭포줄기 부서지며 드넓게 휘날리는 물보라로 택은 눈사태 같은 얼음가루 덮어써 수정궁 될까.

  군락 이룬 아스펜 숲길과 벼랑의 폭포 절경을 개인 혼자서 사유지로 독점하고 있으니 산행인들의 눈총을 받을 만도 하더군.

산자락 아스펜 말짱 다 지고 인가 있는 길가 쪽에 드문드문, 눈부실만큼 고운 아스펜 은혜로이 특전 베풀듯이 더러 기다리고 있었네.  ​


초겨울볕 소복 고인 양지 품섶에서 우릴 맞아준 끝물 아스펜.    

풍경소리만큼이나 투명한 금빛 불꽃 피워 올리며 뒤늦은 방문객의 아쉬움 달래줬다네.

이제 단풍빛 사위고 낙엽 져 날리면 그땐 빈숲에 주체 못 할 바람소리뿐이리니.

 짙푸른 동천 눈부심은 자칫 파열할 듯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이 계절의 律.

보다 정연히 다스리기 위해 하늘은 저리 창창하고 바람은 돌아앉아 칼날 시리게 가나보이.

범연히 가을빛 깃들었다 지는 잎새들.

그것은 자연의 질서에 맞갖은 겸손한 순명.

허나 가장 진한 몸부림으로 치열히 항거하는 역설적인 모반 같은 것.

안으로 뜨겁게 연소하는 또는 급랭의 영하로 결빙하는

내재율의 갈등이 빚는 처연한 신음 같은 것.

어쩌면 마지막 순간을 황홀하게 장식하려는 못내 안타까운 안간힘 같은 것이리.

허나 그날, 겨울 숲 낭만을 음미해 볼 겨를도 없이 온사방에서 사정없이 떠다미는 눈바람에 밀려 서둘러 하산을 하고 말았지.

하긴 그 덕에 귀갓길 교통편은 여유로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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