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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Nov 30. 2024

애기동백 만나러 위미리로

벼르고 별러 고창 선운사로 동백을 보러 갔었다.

오래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다.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를 통해 동백꽃 생태를 눈치챘는데 실제로 동백꽃을 확인한 건 여수 오동도에서였다.

시처럼 진짜 그랬다.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붉게 피어나는 동백꽃 / 통째로 툭 떨어지는 동백꽃이/ 시가 되어 제 가슴속에 툭 떨어집니다."

정말 동백꽃은 통째로 툭 떨어졌다.

목련꽃처럼 무너지듯 꽃잎 하르르 쏟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송이째로 툭 툭 떨어지는 동백꽃의 낙화는 사뭇 처연스럽다 못해 비장스러웠다.  

차나뭇과 상록 활엽수인 동백은 한반도 남쪽지방에서 자생하며 두텁고 윤기로운 잎과 매무새 단아한 꽃을 자랑한다.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따뜻한 지역에서 피어나는 동백은 더러 폭설로 하얀 눈 모자 덮어쓸 적도 있다.

동백은 눈에 싸여 동해를 입은 꽃도 송이째로 툭, 명이 다한 꽃도 송이째로 툭, 토종동백이나 카멜리아도 미련없이 툭! 져버린다.


반면 애기동백은 꽃잎 하늘하늘 날리며 낙화한다.


마치 춤추듯 자유롭게.


혼탁한 세상사 겁내지 않는 듯 화들짝 핀 애기동백은 순진무구하기 그지없다.

완전히 속내 오픈하지만 그렇다고 자유분방하다기보다는 죄성에 물들지 않아 거리낌 없는 촌애기씨 같다.

요즘 시절에야 그런 심성을 깊은 산촌 어디에 선들 찾을 수 있으랴만.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읽다가 아리송해졌다.

노랑 동백꽃이라니?

동백꽃은 붉기가 선혈처럼 낭자하거나 눈처럼 희디희다던데 노랑꽃도 있나, 했더니 그 동백꽃은 '생강나무'의 강원도 방언이었다.


서귀포로 이주한 첫해였다.

친구와 길을 걷던 중 동백꽃 한창이라며 가리킨 곳에 연연한 분홍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아, 산다화네! 반가움에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단어에 생경스럽다는 표정 살짝 스치며 친구는, 여기선 애기동백이라 한다고 했다.

집에 와 확인해 보니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산다화(山茶花) 역시 한겨울 윤기 나는 이파리 새새로 붉은 꽃 환하게 피어난다.

원래 산다화란 이름은 일본에서 전해진 이름이고 국내에선 꽃이 작다고 애기동백, 서리동백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애기동백은 꽃이 귀한 한겨울에 만개한 꽃도 장관이지만 꽃잎이 발치에 떨어져 흥건히 쌓이면 그 정경 역시 예술이다.

그처럼 애기동백은, 꽃송이째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꽃이파리 낱낱이 떨어져 호르르 휘날린다

오늘은 모처럼 하늘 푸르기에 정오 지나 애기동백꽃 한창인 위미리로 향했다.

벌써 동백수목원 인근에는 차들이 갓길까지 주차돼 있었다.

관광객 붐비는 수목원 대신, 조용한 동백군락지로 가서 꽃에 취하고 새소리에 취한 채 도원경 거닐다 왔다.

아직 꽃잎 떨어지긴 이르니, 아무래도 며칠 뒤 한번 더 위미리에 가서 애기동백이 흩뿌리는 산화가(散花歌)를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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