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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당근은 제주 구좌 産

by 무량화


당근은 당근 제주산이 품질 최고!

그중에도 섬의 동쪽 구좌읍에서는 마을마다 당근 농사를 짓는다.

비옥한 화산토는 미네랄과 무기질이 풍부한 토양이라 어디나 밭작물이 잘 되는 모양이다.

부산 친구가 더덕만은 새카만 흙이 묻은 제주산을 찾는다고 했는데 그건 어디서 나는지 아직 모르겠으나 제주무가 유명한 줄은 벌써 알았다.

감귤 맛이 유독 좋은 서귀포야 귤 농장마다 최상질 귤로 전국을 석권하고 있으며 햇빛 좋은 남원읍은 아주 달콤한 귤로 서귀포와 자웅 겨루고 있다.

대정읍 너른 들녘에서는 무, 마늘, 고구마, 양파 외에 이모작을 하는 감자가 탐스럽게 자라 전원 풍경이 한폭의 그림이다.

용천수가 곳곳에서 솟는 조천읍은 농촌길 걷다 보면 양배추 브로콜리 콜라비 무성하다.

애월읍에 가니 집집마다 콩농사를 지었으며 성산읍부터 표선면 인근은 조경용으로 심었는지 아무튼 메밀밭 유채밭이 주종을 이뤘다.

안덕면에 가면 차 나무가 들판을 덮었고 이시돌목장 목초 싱그러이 잘 자라며 한경면은 여기저기 곶자왈 온갖 수목 밀림이듯 얼크러설크러 졌다.

가파도는 초록 물결 넘실거리는 청보리밭으로 유명하다는데 아직 구경은 못했지만 말만 들어도 그 때문에 봄이 더 기다려진다.

구좌읍은 밭이란 밭은 거진 다 당근, 이 지역 특화작물로 자리매김된 당근이라 도로변 벤치며 가로등 디자인도 당근이다.



지난가을 비자림을 가다가 성산포 지나서부터 온데 밭자리마다 당근 이파리 푸르게 너울대는 걸 보았다.

마침 대기가 맑기에 바람은 좀 불지만 월정 바닷가를 돌아 재차 비자림을 찾기로 했다.

세화리까지는 대충 길머리가 잡혀 알겠는데 그다음부터는 낯선 길,

도로는 이리저리 잘 닦여 있는데 인가가 없어 해변으로 들어서는 지름길을 찾으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마침 저만치 밭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보이기에 길을 물어볼 요량으로 무조건 그리로 갔다.

요즘 한창 수확철이라 손길 바쁜 당근밭으로 내려갔다.

당근을 뽑는 인부들은 본체만체 부지런히 자기 일만 하고 있었다.

트랙터를 모는 주인인듯한 사람이 이 지역에 사는 듯 상세히 길 안내를 해주며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당처물동굴도 방문해 보라고 했다.

당처물 동굴은 잡풀 우거진 곶자왈 가운데 자그마하게 부풀어 오른 둔덕 아래인 듯했으며 철망으로 겹겹이 둘러쳐져 있었다.

아직 공개된 동굴은 아니지만 설명문을 읽어보니 세계적으로 드문 용암 동굴로 석회질 종유석 동굴이라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것.

천연기념물 제384호로 지정된 이 동굴이 언젠가 개방되면 좋은 관광자원이 될 터, 가외로 차진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겸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밭에 들렀다.

그랬더니 쥔장이 박스에 포장된 거 외의 밭고랑에 남겨진 당근을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했다.

정말요? 하자 나머지는 전부 파치라요, 버리기 아까우니 담을 만치 담아 가세요, 해서 여남은 개를 챙겨 왔다.

멀쩡한 당근이지만 크기가 좀 작거나 곁뿌리가 달린 건 제외한다는데 넘치도록 담은 저 당근이 박스당 만여 원에 납품된다고.

인건비는 오르고 이거 저거 빼고 나면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며 푸념하는 쥔장.

자세히 보니 일하는 사람 거의가 동남아인, 아마도 그나마 전수 외국인 노동자를 쓰기 때문에 하루 일당 액수 줄일 수 있는 건지도.

아무튼 제주도에선 귤이고 감자고 마늘이고 양배추고 수확해 거두어들인 뒤 '파치'라 하여 상품이 못 되는 건 밭에다 그냥 버려둔다.

그러면 이삭줍기하듯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기 먹을 만큼씩 거둬간다고.

귤 농장을 지나다 보면 더러 한구석에 귤이 산처럼 쌓여 썩어가는 걸 보기도 한다.

이는 파치를 유통시키면 서귀포 귤의 명성을 해치는 결과라 해서 각 농장주마다 불문율처럼 이를 철저히 지킨다고.



얼마쯤 걷다 보니 진빌레 밭담길이란 안내판이 나왔다.

제주 전역의 밭담은 2014년 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그중 특히 진빌레 밭담길은 제주 밭담의 독특한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가을이면 여기서 밭담 축제도 열린다고.

제주에는 구멍 숭숭 난 화산석을 이용해 담을 두르는데 집 둘레에 쌓은 담은 집담, 밭 가장자리에 쌓은 담은 밭담이다.

묘소를 감싼 담은 산담이며 한 줄로 쌓은 일반적 형태의 담은 외담, 겹으로 쌓으면 접담이다.

이로써 토지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마소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역할도 한다.

잡굽담은 경사진 땅의 흙이 흘러내리는 걸 막고자 아랫부분에 작은 돌을 일정 부분 쌓은 다음 그 위로 큰 돌에 작은 돌들을 다시 쌓아 올린다.

잣담은 양편에 큰 돌을 두르고 그 가운데에 작은 돌들을 넣어 넓게 쌓은 밭담을 이른다고.

둘러친 밭담도 관광상품화 한 지역은 구좌읍 월정리, 월정리는 밭담 외에도 풍력발전기와 아기자기한 해변 카페로 요즘 핫하게 떠오른 마을이다.

월정리 인근을 포함하는 올레길 20코스와 지질 트레일, 천주교 피정의 길도 이에 겹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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