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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잘못 잡은 나무는 언젠가 베어지나니

by 무량화


부산에서 동래시장을 가다가 본 풍경이다.


문화재 건물 안에서 정정하게 솟은 거목 한 그루가 베어지고 있었다.


시장 바로 앞에 있는, 동래부사 송상현 공을 기리는 송공단 정원수를 제거하는 중이었다.


왜 저리도 잘 자란 위세 당당한 나무가 베어지는지 몹시 궁금했다.


송공단 안에서 작업을 지휘하는 이에게 물어봤다.


수종이 리기다소나무라서 벌써부터 쳐내기로 결정됐던 일이란다.


리기다란 이름을 듣자마자 탁! 감이 왔다.


아하, 일본 나무.


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상록교목인 리기다소나무는 학명이 rigida이니 일본과는 하등 상관없는 나무다.


미 동북부가 원산지로 일본 통해 들어온 외래종일 따름인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그 나무를 (일제?)로 취급했다.


참혹스러운 임진왜란 겪은 조선인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누구라도 왜색이건 일제건 자동반사적으로 치를 떨게 된다.


아직도 여전히 토착 왜구 운운하며 죽창가 불러대며 선동질하는 이 나라 정치 수준은 또 어떻고.


때는 1592년 선조 25년이던 해의 4월 일이다.


전 일본을 손아귀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는 힘이 넘쳐나는 무사들이 휘하에 즐비했다.


울끈불끈하며 남아도는 힘은 어디건 분출구를 찾게 마련이다.


선조가 앉아있는 조선 조정은 파당 싸움으로 기강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무능한 집단이었다.


소서행장이 칠백여 척의 왜선을 이끌고 임진년 4월 13일 부산진성에 쳐들어왔다.


부산 첨사 정발은 앞장서 결사항전을 했으나 하룻만에 성은 함락당한다.


그 여세를 몰아 동래성으로 진군한 2만 명의 왜군과 성을 지키던 동래부사 송상현 휘하의 2천 명 군관민은 옥쇄하고 만다.


송상현 공은 왜에 끝까지 항거했으나 결국 왜적의 칼에 쓰러졌다, 중과부적이었다.


그렇게 동래성이 떨어지자 거침없이 북상 길에 오른 왜군은 빠르게 한양으로 진격해 들어갔고 왕은 의주로 도망치고.....


왜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목숨 잃고만 송공의 사당에 하필이면 일본 이름 나무가 떡하니 솟아있다니 말이 될 법인가.


신성한 송공단 경내에서 당연히 도태시켜야 할 왜색, 하루빨리 쳐내라 탁상공론 일삼는 시의회에서 아우성쳤겠지.


애초에 송공단 재정비하며 정원과 후원에 조경수 골고루 심을 때 공무원들은 속성수라서 그 나무 허가해 줬을 테고.


헌데 베어내려도 송공단 둘러싼 기와 담장과 민가들이 바짝 붙은지라 제거하기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밑동 쓱싹 톱질해서 베어버리면 그만이나 주변 건물에 피해를 줘 그럴 수 없는 여건.


이 같은 난공사라는 문제점이 대두돼 그간 지지부진 상태에서 나무만 날로달로 더 쑥쑥 자라났고.


마침내 그 나무가 베어지는 날, 저처럼 중장비가 동원된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졌다.


이동식 크레인에 고소 작업대 설치되고 크레인 조종자와 작업대에 탑승한 전지작업자 싸인 맞춰가며 우선 곁가지 제거 작업부터.


무성한 가지가 잘리면 집게 크레인이 덥석 물어서 조심스레 끌어내리는 작업이 반복될 테고.


가지치기가 끝나야 원 둥치 뼈대만 남은 나무를 위에서부터 부분적으로 잘라내 결국은 몽땅 처리할 수가 있으렷다.


그 자리에 심어졌다는 자체부터가 그 나무에게는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었다,


하긴 철새도래지 한복판에 세운 무안 공항처럼 정략에 따른 모리배들이 결탁한 무지의 소치이겠지만.


다른 나무는 곧게 자라 건축재로 가구로 긴히 쓰임 받는데 어쩌다 저기 심어져 무단히 험한 꼴 겪게 된 나무.


나무도 자리를 잘못 잡으면 저 수난을 당하는구나, 한편 안쓰러웠다.


그러하듯 어떤 사물이건 제자리를 바르게 얻지 못하거나 찾지 못하면 이런 딱한 일을 당하고 만다.


사람도 마찬가지, 인연 잘못 맺어졌거나 정치적 음험한 계산에 따라 제 자리 아닌 곳에 착지했다면 언젠가는 결국 쳐내진다.


문득 저 때와 겹쳐지는 한 존재, 국정 분탕질 치며 나라 혼탁하게 만드는 미꾸라지들도 저 나무처럼 하루속히 내쳐지길.


https://youtu.be/e7K9Y4RL2YY?si=vpojBtfmThozAcl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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