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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같은 선흘 곶자왈 이름만
동백동산

by 무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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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아직도 후미진 지역이 많은 편이다.

그럴 때마다 도반은 안전여행을 위해 신실한 남편을 앞장 세운다.

형제님도 기꺼이 보디가드 역을 맡아준다.

도반 부부와 차를 타고 구불구불 산록도로 돌고 돌았다.

하늘 아래 첫동네라는 교래리도 지나 한적하다 못해 분위기 괴이한 숲 속 주차장에 닿았다.

두 시간여 만에 도착한 선흘 곶자왈은 곶자왈 표식은 간데없고 동백동산 습지센터란 간판만 크게 부각됐다.

곶자왈 어딘가에 못 같은 습지가 분포돼 있는 듯했다.

이름만 내걸렸을 뿐 어디에도 화사한 동백은 한 송이 눈에 띄지 않았다.

사방에서 눅눅하고 음산한 기운 감돌아 진짜 우리 둘만 왔더라면 입구에서 뒤돌아서고 말았을 거 같았다.

그만큼 으스스했다.

청명한 날씨가 아니기도 했지만 마치 아마존 정글 탐험이라도 하듯 어깨 오싹거려졌다.

서로 뒤꼬여있는 나무 형태 기이했으며 조금치라도 햇빛 더 받을 요량으로 하늘로만 치솟아 오른 나무들은 키만 껑충 컸다.

그로테스크한 형태의 나무와 온갖 음지식물들이 마구 뒤엉킨 채 용암이 만들어낸 암괴 지대에 원시림을 이룬 곶자왈.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 하듯 제주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곶자왈이 도처에 산재해 있는 제주다.

곶자왈에 흔한 콩짜개난 같은 착생식물은 광합성을 위해 키 큰 나무에 붙어 더부살이를 하나 원 둥치에 피해는 주지 않는다.

겨우살이처럼 숙주나무로부터 물과 양분을 흡수해서 사는 녀석도 있는데 생태계의 핵심 자원이 된 예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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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에 무성한 칡넝쿨이 나무를 감아 조이며 숲을 휘덮고 있는 모습을 그간 흔히 봐왔다.

점잖게 감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둥치의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세력 키워나간다.

얌체같이 고약한 약탈자다.

칡만이 아니라 등덩굴도 수종(樹種)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접근해 둥치를 감아 숨통을 조인다.

만일 칡과 등나무가 한곳에 자리 잡고 같은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면 어찌 될까.

생태상 칡의 줄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 줄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고 한다.

이때 늦게 감고 올라가는 식물이 먼저 감고 올라가는 식물의 줄기를 누르게 된다.

따라서 먼저 감은 줄기는 밑에 눌려 서서히 고사하고 만다.

허나 뿌리까지 죽는 건 아니라서 죽은 줄기 위에 새순이 올라와 다시 나무를 감고 올라간다.

이제는 반대로 눌리게 된 줄기가 말라죽게 되니 자연계에는 영원한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을법하다.

일이 기묘하게 뒤얽혀 서로 불화하며 다툴 상황이 벌어지므로 칡 ‘갈’ 자와 등나무 ‘등’ 자를 합쳐 갈등이라 표기하였다.

갈등이란 곧 칡넝쿨과 등나무 덩굴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것과 같이 서로 상치되는 견해 등으로 충돌이 생기는 경우다.

그로 인해 알력·불화·상충하며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하지만 곶자왈 숲을 보면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닌듯싶다.

서로서로 의존하고 협력하며 상생하는 관계, 을이 없으면 갑도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세계가 자연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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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곶자왈은 어둠침침하고 기운 음산해 도립공원 같은 곶자왈조차 재차 방문은 사양했다.

특히 동백동산을 품은 선흘 곶자왈은 비경을 품은 데다 생태계의 보고라지만, 발밑에서 되울리는 괴이쩍은 소리에 질겁을 했다.

용암 언덕이 만들어지며 지표 아래 속이 빈 공동현상이 생긴 위에 이루어진 숲이라, 세계지질공원 대표 명소로 지정된 곳답다.

바닥엔 양치식물과 이끼식물이 덮여있어서 민달팽이나 지네가 기어 다니지 싶었다.

피톤치드 대신 음습한 공기가 떠돌며 내게 깃든 양의 밝은 에너지를 빼앗아 갈 거 같아 몸이 움츠러들었다.

흙도 시커먼 데다 자잘한 도토리와 낙엽은 축축했고 검은 돌무더기 쌓인 성터와 도틀굴은 4 3의 처절한 흔적이라서인지 더 괴괴했다.

이날 찍은 사진을 보면 거의가 흔들렸는데 그도 그럴 것이 동행과 거리가 벌어지면 겁이 나 빨리 걸으면서 찍은 때문이다.

평소 때 숲에 들면 걸어가며 재잘재잘 담소를 나눴고 쉼터가 있으면 차와 간식을 먹곤 했는데 여기선 말없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귀를 열고 숲의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볼 여유 같은 건 전혀 생기지 않았다.

누구나 감정선은 비슷, 다들 묵묵히 웅크리고 걷는 걸 보니 나만 칙칙하게 눅진 기분인 건 아니었다.

다른 때는 전혀 그렇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괜히 자꾸만 요의가 생기기도 했다.

별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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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한 너르기에 전혀 모르거나 관심 밖이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람사르에 등록된 습지는 주남저수지나 우포늪 순천만 정도만 알았는데 전국에 24개소, 제주에만도 다섯 곳이나 있었다.

의외였다.

구멍이 많은 화산석인 용암대지라 비가 와도 물이 금세 땅속으로 스며든다는데 어느 지형에 물이 고여 습지를 이룬 걸까.

화산섬 제주에는 곶자왈 숲 지역에 형성된 산림형 습지가 대부분으로 소규모로 산재한 연못에 습지식물이 서식하고 있단다.

특히 동백동산은 2011년 람사르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됨은 물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

멸종 위기에 놓인 희귀 조류와 양서류 및 파충류를 비롯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제주고사리삼의 서식지다.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으로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함께 자생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룬 먹물깍 습지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먼물'과 끄트머리라는 뜻의 '깍'이 합쳐진 먹물깍 습지는 누렇게 시든 물풀만 빡빡하게 떠있었다.

하절기라면 괜찮을지 모르나 그 또한 스산스러운 풍경이라 얼른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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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0호로도 지정하여 보호받고 있는 이곳.

남쪽 출입구에서 들어가 어둑신한 숲을 한참 걷다 보니 탐방길이 끝나며 작은 부락이 나타났다.

동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 닭 우는소리도 들렸다.

어쩐지 숨길이 트이는 거 같았다.

그러나 웬걸~ 서쪽에 또 하나의 입구가 열려있었고 그 길을 통과해야만 차가 있는 원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5km만 더 걸으면 되므로 빠른 걸음으로 곶자왈 사잇길을 지나는 중이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번엔 더 괴이쩍은 지대가 나타났다.

마치 땅속이 비어있는 듯 발자국이 묘하게 되울리는 거였다.

안내문을 보니 용암 언덕, 내부에 있는 용암이 굳은 표면을 부푼 빵 모양으로 들어 올려 만든 지형인 투뮬러스(tumulus)였다.

마그마가 흐르며 용암 거죽이 식어 굳어지자 아직 식지 않은 하부 용암이 먼저 식은 위쪽 용암 껍질에 압력을 가해서 표면이 부풀어 오른 상태란다.

그 자리는 텅 빈 공간이겠고 빈 공간은 바로 동굴이겠다.

근처 땅 아래에는 만장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용암 동굴이 넓게 가지를 뻗어 나 있다.

그러므로 빈 공간에 족적이 공명해 되울리는 거였다.

즉 바로 발아래가 허당이라는 얘기였다.

갑자기 땅이 꺼지며 함몰될 리야 없지만 별 상상이 다 되기에 별로 유쾌한 체험은 아니었다.

와우아파트, 삼풍백화점, 이번에 광주 아파트공사장 붕괴사고까지 왜 두서없이 떠오르는지....

이윽고 출구 가까워지자 그 야릇한 느낌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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