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위 떨치던 한파가 약간 누그러진 아침. 월드컵 대로 쪽에 볼일이 있어 외출한 김에 부산종합운동장을 찬찬히 구경했다. 원래 사직야구장이 있었으나 운동에 별 흥미가 없었던지라, 부산 살 적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다. 그 자리에 세워졌다는 스타디움의 웅자를 처음 본 것은 이민 여섯 해 만에 귀국했던 한밤중이었다. 아들 일터는 바로 그 이웃에 있었다. 근무처를 보여주고자 공항에서 오는 길에 들렀는데, 창가에 서니 근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항도답게 한껏 바람 안은 범선 폭 같기도 하고 파도와 갈매기 형상도 연상되는 하얀 건물. 그 안에서는 때마침 휘황한 조명 아래 야구 경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기에 군중들의 함성이 병원까지 들렸다.
활기 넘치던 그런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은 지금은 한겨울. 시즌 지난 운동장은 휑한 채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줄 모르고 긴 침묵에 빠져있었다. 스타디움 주변은 아침 운동을 나온 인근 주민들이 천천히 산책을 하거나 헛둘헛둘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의 어느 부부는 서로 의지해가며 걸음마 연습을 하는 중. 성화대 옆에서 남편이 손을 놓고 멀찍이 물러섰다. 뇌혈관 문제로 한쪽 팔다리가 영 부자연스러운 아내를 그보다 좀 덜한 남편이 짜증 섞인 소리로 코치를 했다. 운동장소도 마땅치 않은 이런 계절일수록 스스로 알아서 나름껏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터. 눈부신 창천 아래 고층 아파트 군 날렵한 맵시 뽐내고 차량 꼬리를 물고 달려도, 어딘가 맥 빠진 듯 생기 잃은 도심은 무기력하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12월부터 뒤숭숭해진 시국은 아직도 안정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 물구나무선 듯 거꾸로라 어지러울 지경이니까.
2001년 9월에 개장한 Busan Asiad Main Stadium은 2002년 아시안 게임의 주 경기장으로 건설되었다. 부산종합운동장의 주 경기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천연잔디 필드와 우레탄 트랙이 갖춰져 있는 다목적 경기장이다.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보조경기장, 사직야구장, 사직실내체육관, 사직실내수영장, 체조체육관, 테니스장, 론볼 경기장, 궁도장 등 여러 스포츠 경기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인상적이었던 하얀 지붕은 반개방형 케이블 돔 구조로, 지붕을 떠받친 48개의 콘크리트 기둥은 사통팔달을 뜻하며 기둥 형태는 사람 인(人) 자를 나타낸다고. 경기장 출입구마다 벽을 없애 세계와 우주를 호흡하자는 의미를 담았다던가. 고개를 빼고 안을 들여다보니 색색이 경쾌한 경기장 실내 상층부 따라 2,000럭스로 설계되었다는 조명등이 묵직했다.
수영장/ 실내체육관/사직야구장(사진 : 부산시청 홈피)
한국전쟁 피난 수도 시절부터 서부권이 정치의 중심지였던 당시에 세워진 구덕운동장이 노후되자 새로운 운동장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에 따라 1979년 공사에 들어가 1985년 국제 규격의 현대식 실내 체육관과 야구장, 체조 체육관과 수영장을 아우르는 부산 사직운동장이 준공되었다. 둘레에 있는 실내체육관은 농구, 배구, 배드민턴 등 실내경기와 체육행사가 열리는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이 딸려있다. 그 외, 배와 파도를 형상화한 수영장이 이웃해 있고 바로 곁에 홈팀인 롯데 자이언츠가 위탁관리하는 사직야구장이 있다. 특히 이곳은 천연잔디 구장을 자랑한다고.
광장 조형물 작품명- 큰 호미/나와 함께 앉아요
부산은 옛 지명 가마뫼가 이르듯 높은 산 아래 가마솥 형상을 한 지역이다. 금정산맥과 황령산맥 사이로 길게 뻗은 특이 지형이라 만성적인 교통정체에 시달려왔다. 일찍이 지하철이 개통되고 근자 들어 터널과 교각 등 토목기술의 발달로 교통난이 해소되며 숨길이 좀 트이긴 했다. 항만도시 부산은 이제 가덕도 신공항만 열리면 비약적인 웅비를 하게 될 터이다.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 부산아시아드경기장. 뉴 밀레니엄의 비전을 담다, 란 슬로건을 내걸고 국제적 위상을 상징하는 스포츠 시설물을 시공한 현대건설의 이 야심 찬 건물은 한국건축문화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언젠가 한번 와봐야지, 벼르던 곳인데 계제 김에 오늘 구석구석 차지게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