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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나는 학리 포구
부산권 어항
by
무량화
Jan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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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달 어느 오후.
해풍 차갑지 않기에 일광에서 학리마을 부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를 타고는 가봤지만 걸어서는 처음이다.
어촌마을답게 온데 비릿한 내음이 배어있었다.
양쪽 방파제 끝에 붉고 흰 등대가 서있어서 멀리서 건너다보면 꽤 운치 있던 바닷가였다.
막상 와서 꼼꼼스레 살펴보니 어느 해안 마을이나 그렇듯 해조류 떠밀려와 너저분한 포구엔 낡은 동력선이 기름 흘리며 서있었다.
날씨가 웬만해서인지 해안가나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제법 됐다.
부둣가 가건물 늘어선 골목길 따라 천천히 돌다 보니 처음 보는 낯선 정경이 곳곳에서 기다렸다.
길바닥에 냉동꽁치를 부려놓고 아낙들 둘러앉아 적당한 크기로 썰어둔 무더기가 수북수북했다.
겹겹이 쌓인 생선상자며, 빙 둘러 낚싯바늘이 달려있는 플라스틱 바구니며 그 모두가 호기심 일구기에 충분했다.
비닐 너풀거리는 가림막 안에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어구 정비하느라 바쁜 노인에게 궁금한 걸 물어봤다.
어떻게 고기를 잡는 건지, 무슨 생선이 잡히는지, 언제 출항하는지 등등.
그물이 아닌 주낙 어업(연승어업) 방식으로 장어와 납세미, 열기를 주로 잡는다 하였다.
예전 요셉은 한겨울이면 바다 낚싯배를 타고 현해탄 중간쯤까지 나가 열기를 쿨러 가득 잡아왔다.
낚아온 열기는 집에 와서도 아직 살아있어 횟감으로 장만한 요셉은 "심해에서 잡은 귀한 거라카이. 함 묵어봐라" 그랬다.
당시는 회를 전혀 안 먹었지만 요샌 기회가 닿지 않아 못 먹는 회, 횟집 수족관의 열기를 보면 슬그머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열기에 대해 아는척하자 노인은 신이 나서 목소리가 한 옥타브 더 높아졌다.
청어나 꽁치 미끼 매단 낚시 바구니를 어장에 죽 뿌려놓고 밤새 기다렸다가 새벽에 거두어들여 귀항하는데 요샌 줄곧 만선이라고.
이 방법으로 잡은 고기는 그물로 잡은 고기보다 신선도가 높아 가격이 좋다는 말도 후렴으로 따라왔다.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기에 부업하러 올까요? 했더니 초보는 어림도 없다며 설레설레 손사래질.
주낙줄이 엉키지 않게 잘 정돈하는 것도 기술이고, 손목 아프도록 밑밥 미끼 써는 일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배가 들어오면 펄펄 뛰는 생선 목에 걸린 낚싯줄 끊어내는 일도 아무나 못한다는 것. 세사 수월하게 돈 버는 게 어디 있으랴.
어부와 해녀들이 사는 이 갯마을은 주로 연안어업(沿岸漁業, coastal fishery)에 종사하며 살아들 간다.
호안에서 가까운 어장에 나가 작은 동력 어선으로 고기를 잡는 방식이 연안어업이다.
독감이 극성부리는지, 나라꼴이 엉망인지, 지구촌 예서제서 말세타령하는지 그딴 거 전혀 개의치 않고 바다만 바라보고 사는 어민들.
단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죽을 맛이라는 넋두리 늘어놓으면서도 손길만은 재빠르게 하던 일을 이어갔다.
모처럼 본 그 담박함이 그 씩씩함이 그 의연함이 그 강건함이, 안절부절 갈팡질팡하는 세상과 대비돼 경이롭고도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시린 손 한 번씩 주물러가며 쉼 없이 일하는 그들 자세 통해, 되지도 않은 세상사 어설프게 걱정하며 괜히 의기소침에 빠졌던 자신을 되추슬렀다.
포구를 감싸 안듯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촌은 비교적 반듯한 규모 갖췄고 마을 맨 윗길 우람한 당산나무 오연하기에 올라가 보았다.
고샅길로 들어서자 마을을 지키는 신목인 노거수 홰나무는 해풍에 시달려 구부정한 자태라서 더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목 의연스런 언덕 인근에 떠도는 향내음은 자태 음전한 해신당에서 흘러나오는가, 아니면 기분이 그럴싸해서인가.
올해는 탄핵 소추 여파로 나라가 어수선해 동해안별신굿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안내문이 마른 대나무 가지에 걸린 채 찢겨 나풀댔다.
어쩌다 요상한 세월을 만나 비록 풍어제는 못 올렸지만 어민들의 안전과 마을의 평안을 지켜 줍시사 비손이라도 하고 싶었다.
풍어굿인 별신굿은 토속종교의식이라기보다 근자엔 마을단위 문화축제로 자리매김돼 주민 모두가 한바탕 흥겹게 논다고 했다.
북장단에 꽹과리, 징 어우러져 쾌자 자락 날리며 '막아라, 막아라, 온갖 살을 막아라~'휘휘 감겨드는 무가巫歌도 들을만하다는데.
올핸 굿 구경이고 뭐고 몽땅 다 글렀지만 명년 봄 신바람 나는 풍어제 잔치 굿을 기약하며 비린내 떠도는 학리마을을 뒤로했다.
허야듸야 허야듸야~바다의 심술을 막아주고/ 말없이 마을을 지켜온~우리 귀여분 찬원이 노래 진또배기 흥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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