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록의 숲에 살아있는 역사

by 무량화

역사기록관/광개토대왕비/불씨를 보존했던 전통을 되살린 현관 앞 햇빛 채화기인 천년의 눈동자



월드컵 대로에서 차가 정체되는 바람에 우연히 '부산에도 조선왕조실록이 있습니다'란 안내광고판을 접했다.

그렇게 찾게 된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은
1984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기록물 보존시설이자 관리기관으로 건립되었다.

국가의 중요 기록물을 수집하여 관리하고 전문 서고에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목적이 첫째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 사고본(국보 제151-2호)은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특별실에서 보존 관리되고 있다 하였다.

그 외 기록물은 기관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열람, 견학할 수 있도록 한 여러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다.

둘째는 우리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문화 전시관을 운영하는 것이다.

소중한 정보 자원인 기록물을 일반인과 학생들이 열람할 수 있게 해, 기록 문화의 중요성을 깨우치기 위한 체험의 시간을 마련해 준다.

세계 기록 문화유산을 통해 문화의 발전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한편, 대한민국의 시대별 주요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전시해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후손들에게 바르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역사기록관.

견학 프로그램으로는 청소년 조선왕조실록 교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름 기록 문화 학교, 기록 문화 시민 강좌 등이 정례적으로 열렸다.


조선왕조실록/충무공의 난중일기(1592~1598)


기록은 우리 선조들이 남겨놓은 가장 훌륭한 유산 중의 하나다.

국가기록원 소장 기록물을 찬찬히 훑어보노라면 한국 현대사가 일목요연하게 줄을 선다.

반구대 암각화에서부터 광개토대왕 비문, 삼국사기와 조선왕조실록, 일제강점기와 독립투사의 항쟁사 뿐인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우국충정 친필, 윤보선 대통령의 부정축재처리법 공지문과 박정희 대통령 친필의 새마을운동 계획서, 전두환 노태우 시대의 전 국민을 울게 한 이산가족 찾기 문구도 눈길을 끌었다.

남과 북이 처음 만나며 이후락 이름이 등장하고 남북화해안에 정원식이 사인하고 이어서 김대중 노무현이 이끈 남북공동성명도 한자리에서 재조명해 볼 수 있었다.

그 시대를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아픈 역사의 순간들을 되돌아보노라니 뜨거운 감회 절로 복받쳤다.

최빈국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육이오전쟁의 폐허에서 맨주먹으로 어렵사리 오늘의 번영을 일구어 낸 우리들.

1953년 국민소득 76달러에서 3만 달러를 훌쩍 넘겨 5백 배 성장한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졌다 하면 공치사라 하겠지만.

보릿고개를 살아온 모진 가난의 세월이 새삼 눈물겹다 하면 꼴통 청승 떤다 핀잔 듣기 십상이겠지만.


갑골문자와 상형문자(기원전 1200년 즈음)


최초의 기록 도구는 거북의 등껍질과 동물 뼈나 대나무와 돌 등 자연 재료에서 택했다.

기원전 4000년 경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면서 파피루스지와 비단에 붓으로 기록을 남겼다.

중국에서 개량된 종이는 3세기경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5세기 초 일본으로 제지 기술이 건너갔다.

10세기에 이르러 유럽으로 종이가 전파되었으며 17세기 들어서야 미국에 제지술이 전파되었다.

종이를 사용하면서 연필- 잉크- 볼펜이 필기도구로 개발되었고 기계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하며 카메라나 컴퓨터 키보드가 현대의 기록 도구로 자리 잡았다.



세계기록유산은 훈민정음(1997년), 조선왕조실록(1997년), 직지심체요절(2001년), 승정원일기(2001년),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년), 조선왕조의궤(2007년), 동의보감(2009년), 일성록(2011년), 난중일기(2013년),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년), 한국의 유교책판(2015),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2015), 조선 왕실 어보와 어책(2017), 국채보상운동 기록물(2017), 조선통신사 기록물) 등 총 16건.



각 대통령의 친필이나 사인을 보면서 필체는 성격과 인품을 반영하는 것임을 거푸 확인했다.



부산광역시 연제구 경기장로 28, 역사기록관은 사직동 아시아드 주경기장 바로 뒤편에 위치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