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목어(比目魚)는 외눈박이

by 무량화

리포니아 미션 몇 곳을 둘러보기 위해 소노마를 다녀왔을 적이다.

소노마 미션 옆의 세바스차니 와이너리를 들렀느냐고 한 친구가 물었다.

와이너리는 거들떠볼 새도 없는 빡빡한 일정이었노라고 답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와이너리의 본고장에 가서 와인에게 이만저만한 결례가 아니었노라 한다.


소노마에 갔으면 하다못해 새끼줄에 두 병씩 묶어 파는 싼 와인이라도 사 왔어야지,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처음부터 테마를 정하고 떠난 여행, 미션 역사산책이 목적이었기에 실제로 그 외의 것은 챙길 여력이 없었다.

소노마 인근에는 와이너리나 역사 유적지만이 아니라 멋진 경관과 그 밖의 흥미로운 볼거리 천지였으나 다 생략한 터였다.

골프광이라면 그 유명한 페블비치를 그냥 스쳐지날 수 없겠지.


사진에 홀린 사람이라면 빅서의 석양도 놓칠 수 없겠지.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17마일 멋진 해안길을 따라 뜀박질하겠지만 한눈팔 새 없이 미션만을 향해 달렸다.


성정이 묘해, 죽자 사자 미친 듯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었다가 정신없이 인터넷에 빠져들기도 하는 편협한 외골수다.

어느 한 시기는 물릴 때까지 영화만 들춰대거나 눈이 시물거릴 때까지 책만 파고들기도 한다.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다른 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말하자면 고지식하고 완고한 외눈박이다.


균형있게 사방을 고루 살피지 못하는 한쪽눈이라 뭔가에 한번 꽂히면 거기 완전 매몰, 한동안 그 일에만 집중한다.

그렇다 보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융통성 없는 사람, 좋게는 고지식하고 단순우직한 사람이다.




어느 날 문득 영어가 안 되는 이유이자, 해도 해도 늘지 않는 영어에 대한 변명거리가 잡혔다.

강직할 정도로 편벽된 기질 탓이다.


평소의 생각 혹은 의견을 변경하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지키려는 이 완강함 때문이다.

자신의 언어 체계를 쉬이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고집이 세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기억의 고집이랄까.


원래 쓰던 말을 버리기가 겸연쩍기도 한 거지만, 내 안에서 본디 것을 지키려는 외곬기질이 솟대같이 들고일어나서다.

엄마 고집도 보통은 넘지, 신용할만한 딸내미 말이니 진짜 그런가 보다 여겨진다.

그게 아니고서야 언어능력이 형편없이 뒤지거나, 머리가 그 정도로 아둔한 꼴통까지는 아닌 편인데 어이해서?

영어는 들을 때뿐 실제 적용하려면 왠지 자신 없어지며 주저도 되거니와, 딴에는 단디 머리에 입력시킨 단어들인데 돌아서면 금방 잊어먹어서다.

자연스럽게 술술 나오는 한국말과 달리 의식적으로 긴장부터 해야 하는 영어라, 은연중 회피하고 외면하려는 경향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충청도 처자가 경상도 사람을 만나 결혼, 삼십 년 가까이 대구와 부산에서 살았다.

그만큼 긴 세월을 살았음에도 전혀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으니 참 특별나다고 사람들이 그랬다.

뭐든 쉬이 물들고 흡수될 말랑말랑 연한 나이였지만 억양 다른 경상도 사투리가 내 안에 스며들 여지란 없었던 모양.

굳이 사투리 사용을 마다해서가 아니라, 희한하게 사투리를 쓰려면 남의 옷 걸친 듯 어색하니 그 말투가 입에 녹아들질 않았다.

해서 아이들 어릴 적, 늘 같이 지내는 엄마 영향인지 아이들도 한결같이 표준말을 썼다.

얼굴도 하얀 아이가 서울말을 쓰니까 초등학교 담임은 우리가 서울에서 갓 이사 온 줄 알았노라 했다.



이민길에 나서기 전 이리저리 견주고 따지며 현지답사도 해보고 나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기간을 갖는다.

그동안 치과치료도 마치고 회화학원도 들락거리다 보니 어영부영 이태가 지나갔다.

어떤 모임자리에서 ㅇㅇ란 작자가 대통령 되면 당장 이 나라를 떠난다 했던 말이 씨가 되어 2001년 벽두에 우리는 미국으로 왔다.

심리학 용어인 Matching Principle처럼 대부분은 정치성향이나 문화취향, 가치관이 유사한 사람들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특별한 인과관계도 없으면서 이념이 다른 사람이라면 무턱대고 경원시,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어도 꼴딱서니조차 보기 싫다.

이데올로기 문제로 눈밖에 난 사람은 여간해선 곱게 보아질 수 없는데 이는 어쩌면 포용력 없는 독단적 기질에서 연유함이리라.

그렇듯 나는 반공세대답게 누가 뭐라 떠들건 눈도 깜짝하지 않는 철벽 보수다.

고착된 성향은 더러 아집과 독선의 성에 갇히게도 만든다.


하지만 본질이 그러하니 생긴 대로, 내식대로 살아가기로 한다.

다른 사람, 심지어 남편이나 아들이 내 판단이 틀렸다고 말해도 생각이나 사고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자기 확신이 섰다면 한번 옳은 건 소신껏 끝까지 옳다는 주장을 밀고 나간다.


굽히거나 우회하거나 양보 타협도 먹혀들지 않는다.

첫 판단이 아니올시다, 였다면 중간에 좋은 면을 봐도 우호적이 되긴 어렵다.

일종의 도그마에 빠졌다 할까, 간단히 웃어넘길 문제가 아닌 딴은 고착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나는 모파상에 관한 이 유머가 맘에 든다.

모파상이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에펠탑 건립을 극구반대했다.


그러나 에펠탑은 세워졌고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 모파상은 늘 에펠탑에서 식사를 했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말했다. 파리에서 에펠탑이 안 보이는 유일한 곳이니까.




아닌 건 곧 죽어도 아니며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


비록 그 성깔 탓에 손해나 불이익을 당할지라도 말이다.

시아버지의 부당한 편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어 만리장성 같은 글을 써서 부친 사건은 30대 초 벌어졌다.

정작 아들(남편)은 매사 부아가 목까지 차올라도 말없이 순응했으나 나는 그런 모습조차 못마땅했다.

지금 생각하면 못나고 부족한 막내 자식에 기울 수밖에 없는 어버이의 아픈 정이 키운 편애라 이해되지만.

결과적으로 괘씸죄에 걸려 유산상속 몫이 터무니없어졌으나, 그때 참을 걸 그랬다란 후회보다 우리 속은 후련하고 가벼웠던 게 사실이다.

처신을 위해, 처세를 위해 눈치껏 겉과 속이 다른 말로 교언영색을 꾸미지 못하는 성격이 어디로 갈까.

대상이 누구 건 정당하게 할 말 못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시사만평에 불편스런 오피니언을 거리낌 없이 피력해 왔다.

하물며 누가 봐도 이미 판세가 기울어, 지는 해 같은 현 정권이지만 대안 없는 판국이니 일단은 성을 끝까지 지키면서 버티라 성원 보내는데 주저치 않는다.

물론 최종 승패는 하늘 외엔 그 누구도 아직은 모른다.

암튼 만일 삼일운동 당시 살았다면 태극기 높이 휘날리며 앞장서면 섰지, 비겁하게 문틈으로 내다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터다.




동쪽 바다에 사는 비목어(比目魚)는 눈이 한쪽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떨어지지 않고 늘 같이 붙어있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상상 속의 물고기다.


류시화시인이 이를 소재로 사랑의 시를 쓰기도 했다.

둘이 합쳐야만이 비로소 완전한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비목어(比目魚)는 중국 전설에 나온다.

외눈박이 비목어처럼 한쪽만 보게 되는 편향됨이 옳은 게 아닌 줄 안다.

좌우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조화를 이뤄 상생하여야 만이 보다 나은 세상을 구축할 수 있음도 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나 좁은 소견에 사로잡힌 고집에서 벗어나야 함도 안다.

올해는 양쪽 눈을 되찾아, 치우침 없이 사물을 바르게 보고 넓고 깊게 느끼는 수련을 해볼까 한다.

외골수로 빠지는 고지식함도 점차 줄여볼 참이다.


다음 여행지에서는 무리한 욕심 대신 다양한 풍경들을 눈에 담아 올 생각이다. 2017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