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로 올라가 사적 495호인 강원도 낙산사 일원을 둘러보았소이다.
낙산사는 영동 지방의 빼어난 절경을 뜻하는 관동팔경의 하나라오.
역사 또한 사뭇 유구해, 무려 신라 문무왕 때인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외다.
몽골 침입과 임진난에다 병자호란을 겪으며 번번 화마로 스러졌다가 중창된 파란 많은 사찰로
민족상쟁의 비극 육이오 전쟁통에 또다시 불타 새로 지었더라오.
그러나 낙산사는 지난 2005년 유홍준 문화재청장 당시 인근을 휩쓴 대형 산불로 소실된 바 있어 다시금 복원하였다 하오.
진달래 피는 그해 봄철 미국에서 낙산사 산불 뉴스를 들으며 몹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나외다.
그 바람에 아쉽게도 보물 제479호였던 낙산사 범종이 다 녹아내렸다면 불길이 얼마나 굉장했으리오.
비좁은 범종각에 불길이 순식간에 들어찼으며 뒤쪽 대나무숲은 화기가 빠지는 통로를 막아 용광로 가마가 됐다니.
이 종은 조선조 예종이 아버지 세조를 위해 조성한 동종으로 조선시대 종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혔더라오.
특유의 보살무늬와 범자 문양이 돋보이는 희귀 문화재였던 536살의 낙산사 범종.
하여 낙산사 화마의 가장 큰 손실은 동종이 형체 없이 녹아버린 일이라 하오.
전에 두어 차례 들른 곳이긴 하나 이번에 가서 상봉 사무치게 각별했던 건 역시 동종이었소.
종의 소신공양, 자연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을 떠올리게 하더이다.
고승이 남긴 사리는 동글동글하던데, 민망하게도 동종이 남긴 사리는 용암덩이처럼 퍼져 사뭇 쓰라리더이다.
또 하나 감회 남달랐던 장소는 팔각형 정자 의상대 주변이었소.
여고 때 수학여행 가서 찍은 흑백사진이 앨범에 남아있기에 낙산사 화재 때 의상대까지 화마가 옮겨 붙을까 봐 조바심을 낸 터였소이다.
의상대에서 건너다보는 홍련암, 홍련암에서 바라보는 의상대의 자태 또한 빼어나 오죽하면 두 곳을 묶어 명승 27호로 지정까지 했겠소이까.
겹겹이 밀려오는 동해, 쉼없이 파도 부딪쳐대는 절벽 위에 오연히 선 의상대는 1900년 초에 지어졌다고 하더이다.
반면 낭떠러지에 제비집처럼 앉아있는 홍련암은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가 세운 암자로
천삼백여 년 넘도록 거센 해풍 의연히 맞서왔으니 장하기 그지없다오.
절벽에 핀 붉은 연꽃 한송이 같은 홍련암은 남해 보리암, 강화도 보문암과 함께 전국 3대 관음(觀音) 성지로, 불자들 사이엔 정성 다해 기도하면 소원 이뤄진다는 신비한 기도처이기도 하외다.
새로이 복원된 낙산사는 매끈한 청기와지붕에 단청 너무 산뜻해, 우리가 바라는 고찰의 정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었다오.
보물 499호였던 원통보전 앞의 칠층석탑 역시 화마로부터 큰 손상을 입었다 하오.
현재의 화강암 새 칠층석탑에서는 세월의 향기 스러지고 왠지 석재를 가공하는 기계음만 느껴지더이다.
낙산 꼭대기 사바중생 자애로이 보살피시는 해수관음상 감로병 바라보며, 구복신앙이면 어떠리이까, 오롯한 소원 하나 바치고는 인증샷만 찍고 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