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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추려내려고?

by 무량화


오스트레일리아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대륙이다. 따라서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나무다. 그곳에서만 자생한다는 뱅크셔나무(Banksia tree). 비교적 거칠고 험준한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지역 고유의 토종 관목이다. 1770년 조셉 뱅크스 (Joseph Banks) 일행이 호주에 상륙해서 처음 관찰해 기록을 남겼다. 보통 불규칙한 줄기와 가지가 낮게 퍼졌거나 지면에서 줄기를 똑바로 세운 관목도 있다고 한다. 평원의 삼림지대 숲에 서식하며 화관이 매우 화려해서 눈길 사로잡기에 지금은 정원수로 인기를 끈다는 나무다. 거기다 향까지 매우 좋아 꿀 생산을 위해 양봉가들이 가꾸기도 한다는 유용한 식물이다.




처음으로 알기로는 나희덕 시인의 '뱅크셔나무처럼'시였는데 특이한 나무이름을 그때 비로소 들어보았다. 어떻게 생겼을까, 내동 궁금했다. 사막의 사라쌍수로 청화 스님을 읊은 적이 있어서 어쩐지 캘리포니아 어딘가에 있겠지 싶어 검색해 봤다. 추측은 빗나갔다. 워낙 단단한 껍질에 싸여있어 자연 발아를 하지 못한다는 씨앗을 단 나무. 산불의 화기에 그을려야만 씨방이 터져 싹을 틔운다고 알려진 호주 토착식물이었다. 생명을 퍼뜨릴 방법이라고는 한바탕 불길에 담금질되고 난 후에만 제 씨앗을 털어낼 수 있는 뱅크셔 나무. 더구나 이 품종들은 5억 년 전에도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잎새 화석이 있는 걸로 미루어, 대규모 지구의 기후 변화에서도 살아남았다고. 왜일까? 무언가를 추려내려는 걸까? 근자 이런저런 위기설이 난무한다. 세기말적 혹독한 기후에다 국제 간 또는 국내 문제만인가. 여러 위기를 겪으며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가를 되돌아 봄으로 오히려 현재의 시련을 유익한 피드백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한참 전 시애틀 인근의 성헬레나 산에서다. 히로시마 원폭 몇 백배에 달한다는 화산이 폭발하자 용암이 흘러내리며 걷잡을 길 없이 큰 산불이 났다. 하늘을 가리며 널름대는 시뻘건 화마, 사방이 뿌연 연기에 휩싸이자 다투어 달아나는 뭇 짐승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수많은 생명들이 불길 속으로 자취 없이 사라졌다. 잿빛 두터운 화산재 아래 묻혀버린 채 한동안 헬레나는 아무런 조짐도 없이 죽은 듯 잠잠했다. 몇 년 내리 적막만이 지배하던 그 산에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의 일이라 했다. 그곳을 여행할 즈음, 둑방길 따라 봄 쇠뜨기 쑥쑥 치솟듯 한 뼘 남짓 자란 전나무들은 저마다 기운찬 생명력 충만했다. 묘목 같던 전나무도 지금쯤은 보기 좋게 자라 낮은 숲으로 어우러졌을 것이다.




옐로스톤에서 가이드가 들려준 말이다. 주변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화마가 덮친 건 88년도 일로 처음엔 불길을 잡지 않고 타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국립공원 법에 산불이 나면 자연 진화될 때까지 얼마간은 기다린다는 것. 그다지 겁먹지 않고 방관만 하던 불이 예상외로 몇 달을 두고 지칠 줄 모른 채 타올랐다. 산불 범위가 워낙 넓어지며 피해가 커지자 그제야 화급히 진화에 들어갔지만 이미 시기를 놓쳐 전역이 불길에 휩싸이게 됐었다던 옐로 스톤. 성난 파도처럼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마다 이듬해 새움 돋아 연하고도 푸른 소나무 그 생명들이 어여삐 자라고 있다 하였다. 이처럼 얄궂은 산불조차 일련의 자연 생태계의 순환작용, 세대교체를 위해서라 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출산의 진통이 이리 심한 걸까?




새움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만추의 단풍 낙엽 되어 씨눈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이 순리다. 땅에 누운 낙엽은 눈비에 푹 삭아서 숲의 거름이 된다. 기이하게도 산불이 나야 비로소 번식하는 뱅크셔 나무만의 자기희생이 아니다. 씨방이 너무 단단해 뜨거운 화염에 그을려야만 씨를 터뜨린다는 나무. 송진에 단단히 굳어진 열매가 불길에 녹으며 비로소 씨방을 연다는 헌신적인 고난사. 모든 것이 타고난 뒤에야 검은 숯 위로 연한 싹을 내민다는 뱅크셔 나무를 나희덕 시인이 그의 시에서 알려주었다. 시의 불꽃을 피우는 또 하나의 부싯돌이 되어준 그녀의 뱅크셔 나무가 탄핵 사태로 야기된 혼돈 속에서 뜬금없이 떠올랐다. 시기적으로 지금은 엄혹한 삼동, 생명 지닌 모두가 겪어내야 하는 고난의 계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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