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는 노크 소리다. 부드러운 손길로 두드리는 노크 소리다. 서두름 없이 불러내는 그 소리. 깊이 잠들었던 대지를 나직나직 일깨우는 소리다. 냉기 가신 온유함으로 다독이듯 쓰다듬는 봄비가 밤새 머리맡에 꽃씨를 뿌렸다. 얼어붙은 산과 들에서 혹독한 시기를 견뎌내고 비로소 새로운 계절을 숨쉬기 시작하는 삼라만상. 잔디는 한층 푸르러졌고 단풍나무 줄기줄기 더욱 붉어졌다. 벙그는 꽃눈. 도톰한 연둣빛 눈엽마다 어여쁜 생명이 아롱거린다. 미쁘다. 사계의 순환보다 더 정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약속이 어디 또 있으랴.
크로커스 히아신스 샤프란 튤립…. 그들이 순서대로 내 일터에 향을 보태주던 것은 지난해 초봄부터 여름 사이의 일이었다. 이른 봄. 필라델피아 컨벤션 센터에서는 해마다 대규모 플라워 쇼가 열린다. 이민 초 잠시 꽃집을 열었던 터다. 그처럼 화훼업에 종사하거나 조경 인테리어에 관심 깊은 사람만이 아니다. 그저 바라만 봐도 마음 그윽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존재. 꽃은 누구나 좋아하기에 일 주간의 화려한 꽃잔치는 늘 대성황을 이룬다.
다양한 꽃도 꽃이지만 화목으로 꾸민 테마가 있는 정원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의 신비경을 펼친다. 연신 감탄사가 발해지는 각각의 코너들. 개구리 왕자네 뜰에는 연못이 있고 아라비안나이트가 펼쳐진 궁에는 오색 분수가 피어오른다. 황량한 사막에는 가시투성이 사보텐이 자라고 불을 뿜는 화산지대에는 열대림이 우거져 있다. 마른 꽃으로 만든 액자나 장식품들은 섬세 치밀한 일본인 못지않게 정교한 솜씨다. 앙증스러운 소품 분재는 탁자 위에 올려놓고 싶은 욕심을 일게 한다. 눈부시게 피어난 능수벚꽃 휘늘어진 그늘에서는 얼마나 오래 머물렀던가.
아름다운 꽃에 취해 향기에 취해 전시장을 돌다 보면 서너 시간이 금방이다. 나오는 길에 마른 구근 몇 뿌리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작은 화분 하나를 사들고 온다. 기차를 타고 프랭클린 다리를 건너며 강 풍경을 바라보는 대신 봉지 속 화분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아늑하다. 품 안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들여다보는 엄마처럼 행복하기만 하다.
그때 데려온 구근이 꽃대 올려 환한 미소와 싱그런 향을 전해주는 아침,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듯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대의 막이 오르는 찬란한 개화기. 절정의 순간은 짧아서 더더욱 황홀하다. 하나씩 꺼지는 스포트라이트, 몫몫의 역할을 다 한 다음 드디어 배우는 무대 뒤로 사라진다. 조용한 낙화다. 그렇게 꽃이 지자 시나브로 생기 잃어가며 줄기와 잎은 시들어갔다. 볼품 없어진 각각의 화분에서 구근을 거두어 한데다 모아두었다. 맨살 뿌리로 옹기종기 모여 지낸 겨울 동안. 어쩌다 들춰보면 무표정하게 굳은 그들은 누가 누군지 분간조차 어려웠다. 조그만 구근은 크로커스겠고 밤톨만 한 이건 누구지? 살뜰하게 이름표라도 달아 줄 것을.
실비에 누리가 촉촉이 젖은 날. 얼핏 생각이 나기에 구근이 들어있는 상자를 꺼내보았다. 세상에나! 제가끔 연한 촉 이리저리 터있는 알뿌리들. 갑갑한 어둠에 갇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로 무생물처럼 지냈건만 용케도 푸른 호흡을 잃지 않았던 거다. 방치하다시피 뒷전에 밀려있었어도, 누가 기별해 주지 않았어도 봄이 오고 있음을 오감 대신 온몸으로 알아챈 그들. 문밖 봄의 노크 소리가 그들을 일깨웠음이던가. 미안한 마음에 알뿌리를 얼른 흙 이불 아래 알맞게 묻어주었다. 새로 돋은 순을 위로 향하게 하여 나란히 나란히. 키재기를 하듯 며칠 새에 움쑥 자라 바야흐로 잎의 형태가 드러나면 명찰이 없어도 한눈에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게 될 터이다. 얘는 튤립, 쟤는 히아신스, 얜 크로커스….
한두 차례 심술궂은 꽃샘추위가 휘몰아쳐댄들 잦추게 오고 있는 봄의 잰 발길을 멈칫대게 하지는 못한다. 떠밀려 가는 겨울의 아쉬운 몸부림은 마지막 앙탈이자 시샘일 따름. 갓 눈뜬 꽃잎을 상하게 하는 이월의 눈이거나 거친 비바람이거나 오는 봄의 섭리를 어쩌지는 못하는 법. 달력 위의 Spring Begins 혹은 춘분이란 글씨가 아니라도 봄은 이미 봄비의 노크 소리로 시작되고 있었으니.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