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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16. 2024

카미노에 도전했다, 칠십도 넘어서

Camino de Santiago


에어 프랑스가 샤를 드골 공항에 닿은 이른 아침.

온통 잿빛인 창밖으로 부옇게 빗줄기 흩뿌렸다.

나가는 길을 묻고 또 물어 그나마 친절한 파리지앵들 덕에 겨우겨우 출구를 빠져나왔다.

공항 내부가 한정 없이 넓은 데다 하도 미로 같아 그만 혼이 빠질 거 같았던 이때 즉석 결정했다.

어디서도 다음 행선지의 이동 수단을 예약해두지 않기로.

말도 낯선 타지에서 허둥대며 예약된 시각 맞추려 서둘다가는 분명 진땀 꽤나 뺄 터이므로.

설령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아깝더라도, 가격이 좀 높더라도 느긋하게 당일 표를 즉석 구매할 작정이었다.

셔틀버스에 올라 테제베를 타기 위해 몽파르나스 역으로 향하며, 마침 러시아워와 맞물리자 그 생각은 더욱 공고해졌다.


궂은 날씨여서인지 옷을 꺼내 덧껴입어야 할만치 파리 날씨는 무척 쌀쌀했다.

여행 시에 비가 내리면 비 오는 대로 나름의 운치가 있는데 더구나 여긴 프랑스, 미상불 나쁘지 않았다.

물론 창공 티 없이 푸르면 또 그대로 날아갈 듯 기분 산뜻하고 상쾌해 좋겠지만.

92년 초여름에 찾았던 파리, 도로변 오동나무에 그때처럼 연보랏빛 오동꽃이 피어있었다.

파리는 귀로에 잠깐 쉬며 돌아보기로 하고 당장이야 카미노 일정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라 일단은 뒤로해야 할 파리.

버스역과 지척거리에 있는 몽파르나스 기차역은 인파로 붐볐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편의시설은 '지나치게 잘 돼있어서' 과잉이다 싶을 정도이며 깔끔하기 이를 데 없다.

그와 달리 테제베 역은 우중충하고 너저분하기 짝이 없는 데다 편의시설은 빈약하다 못해 인색했다.

파리에서 생장까지 직접 연결되는 테제베가 없어 일단 Bayonne에 가서 다시 장난감 같은 기차를 타고 생장에 가게 된다.

표를 사느라 줄을 섰는데 오래전부터 아는 친한 이웃처럼 정답게 부엔 카미노! 인사를 하는 키다리 아가씨가 있었다.

어설프게 말하는 행선지와 짊어진 내 배낭을 보고 산티아고 순례객임을 직감했을 그녀 배낭은 거의 내 덩치만 했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올가 양은 산티아고까지 45일 일정으로 걸을 예정이라더니 그래서인지 그녀 짐은 유난히 컸다.

올가 역시 나처럼 혼자였고 미리 선택해 둔 카미노 길 또한 프랑스 루트인 Camino Frances였다.


11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이 길은 프랑스의 작은 국경 마을인 생장 피에드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1천4백 미터가 넘는 피레네산맥을 넘게 되는데 일명 나폴레옹 루트라고도 불린다.

그렇게 피레네 너머에 있는 스페인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이베리아반도 북서쪽을 향해 내처 걸어야 하는 긴 여정.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이르는 거의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 카미노 프란세스다.

평화로운 대평원과 산간마을 지나 네 시간여 만에 도착한 바욘.

 비 말끔 개여 여분으로 비어있는 세 시간 남짓 동안 시내 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네덜란드 출발 시부터 줄곧 기차여행만 해 피곤하다며 역 앞 노천카페 의자에 짐 부리듯 털썩 주저앉아버린 올가.

 처음 만난 카미노 친구인 올가와 그렇게 헤어진 후 나는 잰걸음으로 구시가지를 쏘다녔다.

골목 양쪽에 촘촘 붙은 이쁘면서도 고풍스러운 집들은 응당 유러피안 스타일이었다.

 고딕 양식으로 높이 치솟아 웅장한가 하면 스테인드글라스와 석 조각 섬세한, 그러나 지금은 몹시 퇴락한 대성당도 구경(유네스코에 등재됐다지만 기나긴 회랑은 장터로 변한) 했다.

바스크 지방의 요새답게 견고한 성벽도 돌아보고 녹빛 짙은 강에서 조정 연습하는 학생들도 내려다본 바욘에서의 알찬 몇 시간.

본격적인 카미노 대장정에 들어가기 전 워밍업 삼아 가볍게 걷기 운동 한번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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