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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16. 2024

의외의 보너스, 바욘

Camino de Santiago

어느 전전생인가 맺은 인연 홀연히 나타나 안기듯 프랑스의 작은 도시 바욘은 그렇게 다가왔다.

마치, 잊혀진 연인을 다시 만났다 헤어지듯 환승역인 바욘에서의 아쉬웠던 세 시간.

골똘히 카미노 길만 염두에 두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정경들과 덕택에 잠시나마 조우할 수 있었다.

스페인 국경에 인접한, 별다른 관광자원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동네라

특별히 눈여겨보는 이 없는 바욘이다.

비구름이 몰려왔다 밀려가는 틈새로 언뜻언뜻 파란 하늘이 보이기에

역에 죽치고 앉아있느니 무거운 배낭 길도 들일 겸 훈련 삼아 짊어지고는 시내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지도 한 장 구해서 역사를 빠져나와 곧장 직진하자 저만치 고색창연한 석조 다리가 나타났다.

도도히 흐르는 묵직한 강물 빛으로 미루어 깊이가 대단할 것 같은 강줄기는 내려다보기조차 겁이 났다.

강이 워낙 크기도 하려니와 굽이쳐 흐르는 물살이 세차 보여 끝 모를 강심으로 뭐든 죄다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저 아래 물살 가르며 일사불란하게 노 저어 가는 조정경기 팀원들의 구호 소리는 힘이 넘쳐났다.   


대도시처럼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차분하니 고전적이면서 기품 어린 풍모 의연한 바욘.

박물관같이 분위기 고풍스러운 역 건물이며 프랑스 다이 오밀조밀 아름다운 골목길.

창가에 제라늄 붉은 레스토랑과 노천카페와 빵집과 기념품 가게 즐비한 거리.

너르고도 길게 누워 도심 가르는, 한 시절 번영의 상징이었을 녹빛 짙은 리브강.

강을 따라 커다란 여객선이 오가고 조정 훈련 중인 학생들의 일사불란한 동작이 꽃으로 피어나는 곳.

잦은 영토분쟁으로 신산스러웠던 바스크 지역 역사를 무언으로 증언해 주는 성곽과 성벽.

요새 같은 성채 따라 지금은 잔디밭 잘 다듬어진 공원을 끼고 있는 성곽길.

앞으로 줄지어 이어질 여러 유형의 성당 중 하나를 맛보기로 보여준 대성당의 어마무지한 위용.

곳곳 어디나 마을 규모에 비해 교회 크기며 높이가 하도 엄청스러워 번번이 그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성전은 이게 아니련만....' 회의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됐다는 안내문이 무색하게, 겉에서 보기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낡고 퇴락한 고건축물.

안으로 들어가도 어둑신한 실내에 대형 십자가와 파이프 오르간이 어쩐지 생뚱스럽던 산타마리아 성당이다.

정교한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만이 한때 영화롭던 성전이었음을 나타낼 뿐 관광객이 봉헌한 몇몇 촛불조차 초라했다.

무엇보다 기가 찬 것은 대규모 장방형 교회를 연결하는 ㄷ자형 회랑이 온통 시장터.

액세서리와 모조 유물과 수제 조각품이며 옷가지며 먹거리를 파는 어수선한 난전이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고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라는 목소리가 들려올 듯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혼잣소리를 하면서 성당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름난 수제 햄 생산지이기도 하다는 바욘.

역시 돌아와서 후에 알았지만 인근에 서핑도 하는 아주 근사한 비치가 있다고도 했다.

카미노 계획하며 진작에 철저히 리서치를 해봤으면 무엇보다 이곳에 있다는 바스크 뮤지엄을 구경했을 텐데....

폰에 앱을 까는 건 기본이고 카미노 관련 책을 사들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사전 준비 거의 없이 무턱대고 나서서 부딪혀 보면 어찌 잘 되겠지, 뱃장 좋게 도전한 못 말리는 현장박치기파.

그야 나이가 얼버무려 주지만 무작정에 즉흥적인 선택과 결정은 장기 여행자의 경우 낭패볼 경우도 있을 터.

하지만 어쨌거나 그 덕에 생각잖게 거둔 수확이자 뜻밖의 보너스였던 바욘이다.

비록 수박 겉핥기식일지언정 막간의 이런 짬이 있었기 망정이지 내 평생 일부러 이곳을 찾을 일이 있을 리 만무.

하긴 앞으로의 카미노 길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이 있을 것인지 지켜봐 주시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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