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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꽃잎 띄워 차 마시기 좋은 때

by 무량화

는개 같은 비가 안개이듯 젖어드는 아침.


고즈넉한 이런 날이야말로 다기 준비해 녹차 마시기 안성맞춤인 날씨다.


더구나 매화 꽃잎 낙화 져 시나브로 흩날리고 있지 않은가.


분청다기에 온기 머무는 동안

찻잎 풀려 은은히 번지는 향기,

란 시를 쓴 지도 어언 헤아릴 수 없이 먼 세월 저 편.


양손으로 감싼 찻잔의 온기와 녹차향 홀로 즐기는 여백의 시간 허락됨이 그래도 감사하다.


이 다기는 내 족적 따라 부산에서 미국으로 갔다가 제주도로 돌아돌아 왔다.


가족이라면 이런저런 상황으로 떨어져 살게도 되지만 다기만은 달랐다.


마치 한뿌리처럼 아니 분신처럼 말이다.


삼십 년도 훨씬 넘은 아래 글은, 지금 들고 있는 분청다기와의 인연에 대해 썼던 글이다.




어떤 인연설



분홍빛 감도는 청회색. 아니 옥 노리개에 어린 상사화 꽃빛이리라. 어찌 보면 이른 봄 하늘에 몇 송이 매화가 피어난 듯한 분청다기. 참으로 인연이란 묘한 거였다. 연전 M방송 대담프로에 출연한 기념으로 백자 필통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난이 그려진 철화 백자였다. 옆에 도봉이라는 낙관 선명한 그 필통은 붓 몇 자루 품은 채 마냥 소품으로만 앉아 있었다.



우리 집 맏이가 고2 되던 해. 같은 반 몇몇의 어머니들과 모임을 이루었다. 교육에 대한 서로의 의견도 나누고 입시에 대비한 정보도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나아가 형제가 적은 요즘 아이들인 만치 혈육 나눈 동기간 못잖은 돈독한 우정 맺게 하자는데 뜻이 모아진 것이다. 아이들 성격 원만하고 성적도 엇비슷한 데다 집 역시 같은 南區에 있는데 다만 영규네 집만 양산 어디쯤에 있다고 들었다. 벽공 눈부신 시월 어느 날. 그 댁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양산 기장 지나 교리 마을에 내리면 바로 尙州窯 안내판이 있으니 거길 찾으라고 했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 넘어 바다 끼고 굽이굽이 달리는 동안교외 바람은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원인도 모를 신경쇠약인 우울증으로 약을 달아 놓고 지낸다는 민성 엄마는 모처럼 머리가 시원하다며 기뻐했다. 안경점 일로 늘 시간을 쪼개 사는 성우 엄마도 아들 덕에 하루 잘 쉰다면서 활짝 웃었다.



그렇게 영규네 집에 당도하니 하얀 가을 볕살 아래 초벌구이 한 도자기가 평상에 주욱 널려 있고 마당 한녘에 장작더미가 산처럼 높았다. 이윽고 안내된 작품 전시실에 들자 그만 호흡조차 멎는 듯 한순간 숨이 막히기까지 했다. 사방탁자와 반닫이 등 고가구 위에 알맞게 앉아 있는 도자기들. 정연하게 진열된 도자기들이 빚어내는 線과 빛의 화음. 아름답다는 경탄마저 삼가게 하는 수려하고도 전아한 仙界의 기품이었다. 완벽한 美가 주는 감흥은 차라리 한숨인가. 손끝 힘마저 사르르 풀리는 최면 같은 것인가. 아니면 절정 뒤에 맞는 순백의 알싸름함인가.



화개차로 숨결 고른 후 다시금 차근히 도자기들을 돌아보았다. 유명 작가의 書畵가 든 청화 백자. 자연스러운 귀얄 무늬나 섬세한 인화문이 빙 들러 새겨진 분청사기. 장 항아리만큼 큰 도자기에서부터 소품 연적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부럽고 탐나는 것뿐이었다. 그때 언뜻 도자기에 찍힌 낙관과 눈길이 마주쳤다. 道峰. 낯익다 싶어 곰곰 생각하니 우리 집 백자 필통에서 본 글씨체다. 도봉이란 호를 가진 그분은 바로 상주요의 주인이며 영규 아버님이셨다. 조선 도예의 전통을 연연히 이어온 전승작가인 선생은 우리나라를 비롯 일본에서 수차 전시회를 가졌다고 한다.



문득 필통 하나의 인연마저 새로웠다. 지금껏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히 지나쳐온 그 존재가 새삼스레 유정해지는 느낌.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는 누구나 꽃이 되고 또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이리라. 또 다른 작품실에 드니 이번엔 크고 작은 다완이 칸칸마다 오밀조밀하다. 좀 전의 도자기실이 신선들의 자리라면 여긴 천진한 동자들이 머무는 장소만 같다.



특히 다도가 생활화된 일본인들이 유독 탐닉하는 게 이 분청 다기라 한다. 물레 자욱 남아 거칠고도 자연스레 유약 엉긴 찻잔 앞에선 한없이 머리 조아린다는 그들. 일본 문화의 시원을 섬기는 진실한 자세라면 더욱 보기 좋을 텐데. 다시 안내된 곳은 성형실. 멈춘 물레에 지난 세월을 돌려 보고 불기 없는 가마에 손 얹으며 오래전 내 이십 대를 잠시 회상해 보았다. 이천 도요지에서의 여름, 그 아름차던 젊음.



여지껏 나는 태깔 맑은 백자에 마음이 기울었었는데 순식간 질박한 분청에 매료당하기 시작했다. 술술하고 텁텁한 분청은 천연과 제일 가까운 색조의 소탈한 맵시라 첫 상면이라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본디부터 잘 알고 지낸 듯 이리 정겹고 푸근하기란 흔치 않은 일.



분청의 원 이름은 粉粧 靑磁이다. 고려 상감 청자 기법이 변화 발전된 새로운 수법으로 그릇을 빚은 위에 흰 흙으로 분장하여 구어 만든 자기란 뜻. 즉 회색이나 회흑색 태토에다 백토로 표면을 칠하고 그 위에 회청색 유약을 입힌 자기이다. 분칠을 하고도 화려한 妖氣나 비천한 俗氣 없이 이리 순박할 수 있는 여인이라면 가까이해도 좋으리라.



진실로 오만한 자는 가장 겸손한 자라던가. 빛깔 모양새 어디 하나 겸허치 않은 곳 있으랴. 그러면서도 저 오연한 자태. 분청은 어쩌면 백결 선생이나 녹두 장군 넋으로 빚어냄이리. 그날 나는 벌써부터 마음 두고 있던 다기 일습을 주저 없이 안고 왔다. 가계부의 무리쯤 감수하면서 내 것으로 삼은 분청 다기. 여태껏 쓰던 백자 찻잔에 담긴 녹차 빛은 은은한 담황색이었다. 그러나 분청에선 차 본연의 부드러운 녹빛을 드러내준다. 아마도 그릇 표면 빛에 따라 비치는 색이 변하는 이치 때문이리라.



요즘 쓰고 있는 또 한 벌의 다기는 모임 주선하느라 반장 엄마 애 많이 썼다며 따로 싸주신 거라서 그 뜻 고마워 더욱 애착이 간다. 부부用인 조그만 다관은 제법 길들어 골동품 닮은 아취마저 풍겨준다. 잔을 들면 얄신하지 않은 적당한 두께감이 우선 좋다. 촉감 역시 너무 매끄럽지 않아 맘에 든다. 차를 따러도 갑작스레 뜨겁거나 쉬 식지 않는 이 비밀은 또 무슨 조화인가.



흙에서 태어난 이답게 소박하고 안온하며 성품 전혀 까다롭지 않은 이웃같이 친근감이 절로 가는 분청 다기. 자연과 일체 이룬 그를 벗하며 새삼 인연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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