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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기

2010

by 무량화


공원을 거닐기 좋은 날씨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꽤 많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바로 앞에 중년부부가 손을 맞잡은 채로 얘기 나누며 걸어간다. 저만치엔 십 대 친구끼리 팔짱을 끼고는 바짝 밀착된 채 걷는다. 멀찍이 은발의 구부정한 노부부가 걷고 있다. 역시 손을 꼭 잡았다. 살갑고 정겨워 보이는 풍경이다. 뚱한 표정으로 뒷짐 쥔 채 두어 걸음 간격을 두고 걷는 우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우린 마치 싸우다 나온 사람들 같다.



그들과는 생활상이며 문화 풍속도가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인사만 해도 그렇다. 고개를 숙이거나 악수를 건네는 우리네 인사 차림과는 달리, 만나면 자지러지게 반가움을 표하며 허그를 하거나 볼 키스를 나눈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인사법이다. 대개가 밝고 명랑하게 거의 호들갑 수준으로 인사를 차리는 그들이나 우리는 점잖다 못해 데면데면, 애당초 표현방식부터가 천양지판이다. 더구나 나이 든 사람들의 우리 식 정서야말로 고루하기 짝이 없다. 어깨 나란히 하고 걷지도 않는데 하물며 남세스럽게 손을 잡다니.



그러고 보니 사십 년 전 결혼식장에서 팔을 걸어본 외에 팔짱 끼는 것은 고사하고 밖에서 손끝이라도 잡아본 적이 없는 우리다. 하다못해 사진 찍을 때조차 차렷 자세를 유지하며 너는 너, 나는 나 근엄하기 짝이 없다. 매정하니 재미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러나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한 기질을 들먹대기 전에 내 탓이 더 크다는 걸 안다. 곰살맞게 휘감기는 살가운 성품도 아니며 사근사근 결 보드라운 성정과는 거리가 먼, 참으로 멋없이 뚝뚝한 충청도인이다. 나긋나긋한 버들가지가 아니라 무턱대고 뻣뻣한 대나무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 나 자신이다.



영 어색해서 손잡기를 못하겠다.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유독 심했다더니 그 때문인가. 지금도 안 하던 짓을 한다거나 익숙지 않은 일을 하려면,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옷을 걸친 듯 거북살스러움이 앞서며 쑥스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아무하고나 쉽게 친해지는 서글서글한 성격도 아니니 무간한 사이가 될 때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는 까탈스러운 사람이다. 나아가 사람들과 안면 트고 가까이 지내도 변죽 좋게 형님 아우님 소리가 얼른 안 나온다. 내심 멋쩍기도 하거니와 간살스러운 기분이 들어서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손을 잡자며 비윗살 좋게 손 내밀 위인이 애시당초 못 되는 셈.



국가 간에 손잡으면 동맹관계가 성립된다. 이웃 간에 손잡으면 선린관계가 형성된다. 친구 간에 손잡으면 한층 우의가 돈독해진다. 이처럼 손 잡음은 따뜻한 사이가 된다는 의미이며 우호적 관계에 이른다는 뜻. 손을 맞잡는다는 것은 기꺼운 수용의 자세이자 가슴 연 표용의 몸짓이다. 그러니 미운 적과는 쉬이 손을 잡게 되지 않는다. 정략상 화친을 위해 손을 잡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까다로운 협약에 의해서이다. 더러 도저히 손잡기 싫은 대상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 상대가 내민 손을 거절하는 것은 정말이지 상종조차 하기 싫다는 완전 거부의 표징일 터.



초등학교 적 삽화 한 장이 떠오른다. 짝지와 된통 말싸움 끝에 한동안 토라져 지내던 어느 날. 선생님이 둘 다 불러내 교단에 세워놓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로 손을 잡게 하였다. 어서! 선생님의 독촉과 채근에 못 이겨 억지로, 피차 고개를 외로 꼰 채로 잡혀주는 손을 마지못해 잡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둘 다 동시에 왜 설핏 웃음이 터졌던지. 어쩌다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등산을 할 때 앞에서 또는 위에서 내미는 손을 붙잡게 된다. 건네주는 도움의 손길을 잡으므로 안심하고 돌다리를 건너뛰고 고바위를 성큼 올라갈 수 있으니 큰 의지가 되어주기도 하는 손잡기이다.



어려운 일을 당한 친구 손을 꼭 잡아줄 때 말로 다 못 전하는 위로와 격려가 거기 담긴다. 힘들지? 그러나 걱정하지 마... 안심해, 내가 곁에 있어... 아픈 네 맘 알아, 함께 기도하자... 내게 기대, 힘껏 도와줄게... 네 기분 이해해, 마음 편히 가져... 나는 네 뜻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인정하고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어... 지그시 잡아주는 손은 천만 마디 말보다 더 푸근한 위안이 되고 성원이 되고 힘이 되어준다. 외롭거나 불안할 때, 심란하고 혼란스러울 때, 괴롭고 힘들 때, 언짢거나 속상할 때, 말없이 손잡아 줄 그런 사람 그대 곁에 있는지.



손 잡음은 감싸 안음이다. 손 잡음은 소통이다. 손 잡음은 오롯한 일치다. 손 잡음은 온전한 의탁이자 전적인 수긍이기도 하다. 진정 손 잡음은 마음 속속들이 눅어지게 하는 위로이기도 하며 등 훈훈해지는 성원이다. 손잡는다는 것은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며 나는 네 편이야, 한 짝이야, 그렇게 동지임을 말없이 인정하는 것이다. 손잡는다는 것은 친숙함을 나타내며 힘을 합친다는 것, 뜻이 같다는 것, 한 방향으로 걸어가겠다는 의미이다. 덩굴손도 기댈 의지처를 만나거나 서로 촉수가 맞닿을 때 비로소 얼크러설크러 위를 향해 뻗어나갈 수가 있다.



나이 들어 때가 되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인연이든 섭리이든 서로에 이끌리며 가까워진다. 주체할 수없이 끌어당기는 자력에 의해 살몃 잡아본 손. 서로의 손바닥을 포개 쥐거나 깍지 끼고는 체온 나누고 맥박 공유하다 보면 사랑은 절로 깊어진다. 그처럼 손 잡음은 별스럽지 않게 단순한 통상적 접촉이 아니다. 포옹이나 입맞춤만큼 뜨겁지 않으나 은근하면서도 실은 더할 나위 없이 간절한 사랑의 표현이다. 잡은 손 놓지 않고 그렇게 영원으로 이어져 갈 영혼의 만남이길 꿈꾸는 아주 절실한 사랑의 약속이기도 하다. 손 잡음은 사랑의 첫 단계이면서 또한 사랑이 진행되어 완성에 이르는 사랑의 마무리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나는 스킨십에 인색하고 애정표현에 서툰 엄마였다. 무엇이든 다 감싸 안는 다사로운 엄마이기보다 완고하게 경직된 자세를 고수하는 쌀쌀맞은 엄마였다. 아이들과 적정 거리를 두고 제 할 일 제가 알아서 하도록 선을 분명히 긋고 살았다. 자녀교육 방법에 왕도는 없다 하나 지금사 생각하니 그만큼 아이들 마음이 추웠겠다 싶어 미안해진다. 그들이 엄마 손을 필요로 할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손을 잡아주었는지 아니면 스스로 견디게 했는지, 아마도 후자였지 싶다. 아이들 어릴 적에 유치원 차를 기다리며 고사리 손을 붙잡고 있었던 기억, 그 잔영마저 이젠 아련하니 흐려졌다.



엄마 손을 잡고서야 안심이 되어 잠들었던 어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세월의 수레바퀴 돌고 돌아 지난여름의 일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손주가 바다를 건너와 방학 동안을 우리와 함께 지냈다. 겨우 돌 지난 아기적에 우리가 미국에 온 이후 여러 수년을 떨어져 살았으니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을 리 만무건만, 그럼에도 핏줄이 무엇인지 참으로 신비했다, 손주는 잠결에도 침대 건너로 내 손을 더듬어 찾아 쥐고는 불편하게 팔을 뻗은 채로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다. 아아, 조손 간의 손잡기가 그리 아늑하고도 벅찬 행복감일 줄이야.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던 그 따스한 감각, 뭉클하니 뜨거운 것이 가슴 구석구석으로 번졌다. 그랬다. 손잡는 순간 조손은 하나로 결속되었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너와 나를 연결하는 고리 맺음인 것이다. 객체로 떨어져 있지만 하나의 질긴 끈으로 묶여있다는 강한 유대감을 뜻하기도 한다. 어렵지도 않은 동작 하나 가지고 내동 벼르다 기회를 영 놓쳐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침 날씨도 싸늘한 이때 차가운 손을 핑계 삼아 일요일 산책길에는 은근슬쩍 그의 손을 잡아봐야겠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예사로이 팔 내두르며 공원을 걸어봐야겠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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