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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17. 2024

사는 게 별거 아니야

 Camino de Santiago


천천히 느릿느릿 걸으면서, 뒤도 돌아다보며 쉬엄쉬엄 걷기로 작정한 카미노인데 초반부터 엉겁결에 속도가 빨라졌다.

차를 타고 휘리릭 수비리며 라라소냐 등등 몇 구간을 건너뛰리라고는, 두서너 장소씩 막 점프해 버리리라고는 전혀 상상치 못한 일.

헌데 어쩌다 보니 그리 돼버렸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카미노 프란세스의 시작인 피레네를 넘지 못했으니 룰은 진작에 어긴 셈이다.

하여 카미노 전반에 걸쳐 대폭 궤도 수정을 하기로, 차를 타고 오는 도중 전격 결정했다.

도보 완주 대신 구간에 따라 적절히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하면서 산티아고까지 가는 시간을 단축시키기로 하였다.

대신 여분의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기로 했다.

파리로 되돌아가는 길에 바르셀로나와 루르드를 찾아보고 도중에 발길 닿는 대로 다른 중세마을도 둘러보기로 계획을 전면 수정한 것.​




밤이 어두워서야 팜플로나에 닿았다.

황막하도록 너른 버스터미널을 빠져나오니 의외로 거대한 도시가 눈앞에 좌악 펼쳐졌다.

현대적이면서 중세의 전통이 깊이 녹아있는 도시, 그 안에서는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독특한 요리가 맛을 뽐낸다고 했다.

시내 한 카페는 스페인 내전을 심도 있게 다룬 헤밍웨이가 글을 쓰면서 즐겨 차를 마시던 장소로 이름난 곳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도시 구경은커녕 고도에 홀로 선 듯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기분에 휩싸이기부터 했다.

처음 온 동네라 어디가 어딘지 동서남북 가늠도 안 되는 데다 깜깜하긴 하고 우선 숙소부터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택시를 불러 순례자 표시인 가리비를 보여주며 역에서 가장 가까운 알베르게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골목길 요리조리 휘감아 돌더니 외등이 켜진 건물 앞에서 택시는 멈췄다.

두 번째 머물게 된 알베르게는 예전 성당 건물. 내부 구조를 변경해서 너른 이층 빼곡하게 침대를 배치시킨 곳이다.

마치 수용소 느낌이 나는 도미토리 형식의 숙박시설이었다.

간밤에 묵은 알베르게와 너무도 대비되는 곳이다. 대강 세수만 하고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

새벽같이 일어나 다들 길 떠날 채비를 하며 부산을 떠니 더 자려해도 잘 수가 없는 상황이다.

기상해서 세면장에 들어가자 영어가 유창한 노년의 한국 부인이 말을 건넸다.

호주로 이민 간 지 40년 차, 부부가 함께 카미노에 도전했다는데 나보다 바로 하루 전날 피레네를 넘는 도중 비와 우박을 만났다고.

옷이 다 젖고 얼어붙어 동태 돼 죽을뻔했다는 고생담을 들려줬다.

그날 험한 산간 날씨 탓에 심장마비로 앰뷸런스에 실려간 유럽인도 발생했으며 여러 사고가 속출했다는 말을 듣자 내심 휴우~ 했다.  

한국 대학생 하나는 피레네를 넘다 말고 너무 춥고 힘들다며 다 때려치우고 유럽 여행이나 하다 귀국하겠노라 되돌아서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배낭을 메고 나와 출발에 앞서 현관 전면 사진을 찍다가 마침 한국 수녀님을 만나게 돼 우리는 자연스레 도반이 됐다.

언덕길에서 삐끗하는 바람에 발목 인대가 늘어나 절뚝거리는 수녀님은 내가 피레네 오르다 도중하차했다 하니, 오히려 무리수 두지 않고 포기한 게 백번 잘한 일이라며 은근 주눅 든 기운 북돋아줬다.

우리는 카미노 표식을 눈여겨보며 아침햇살 금빛으로 빛나는 성당이 있는 팜플로나 시가지를 벗어나 아치 아름다운 홍예식 돌다리 건너 들판길로 나섰다.

밀밭 위로 바람이 지나며 일구는 초록 물결에 감탄사 연발, 길가의 진홍빛 양귀비꽃에 찬사 보내면서 우리는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노래도 불렀다.

유치원에서 근무하다가 안식년을 맞아 성지순례에 나섰다는 수녀님은 목소리가 퍽 맑고 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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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인 팜플로나를 벗어난 지 두어 시간여, 평탄한 길이라 산보하듯 어렵지 않게 시스루 메노르(Cizur Menor)에 닿았다.

여기서 하루를 편안히 쉬며 앞으로의 길고 긴 여정에 대비할 참이었다.

이미 12세기부터 성 요한 기사단이 수도원을 운영하면서 순례자들을 지켜주었다는 곳.

지금은 알베르게로 바뀐 이곳 수도원에서 하룻밤 지내기로 했다.

오픈하는 시각이 오후 한 시여서 수도원 건너편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San Emeterio y San Celedonio)에 올라가 육중한 문을 밀고 성전으로 들어갔다.

백발의 관리 할머니가 안내해 주는 성당 내부는 출입문의 위세와 달리 조촐했다.

시골성당다이 소박하고도 단아했으며 제단에 올린 흰 백합은 금방 꽂은 듯 싱싱했다.

귀 맞춰 쌓아 올린 석조 성당이라 퍽 냉랭해 춥기도 하거니와 시장기가 들어, 볕 다사로운 양지에 나앉아 간식으로 요기를 하였다.

시간이 돼 알베르게 문이 열리자마자 마라톤 골인점에 들어서듯 우리가 일착으로 들어갔다.

옛 수도원 자리라더니 과연 분수가 있는 정원 아름차고 본관을 휘감아 오른 등꽃은 주렴처럼 늘어져 있었다.

햇살 눈부신 오월, 윤기로운 신록의 뜰에선 뭇 새들 합창경연이 벌어졌다.

빨래를 해서 줄에 널으며 올려다본 하늘은 푸르렀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뜨락 잔디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노라니 신선이 따로 없었다.

천국이 달리 천국인가, 그림 같은 풍경과 잔잔한 평화와 푸근한 안식이 있는 예가 곧 천국이었다.  

배낭을 다시 정리해 놓고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메뉴판 사진만 보고 음식을 주문했다.

테이블에 오른 이름 모를 요리는 수프 비슷한데 온갖 채소와 고기가 들었으며, 1인분을 둘이 먹어도 남을 만치 많은 양이었다.

쟁반만큼 큰 접시에 담겨 있는 음식이라 여우와 두루미 우화를 떠올리면서 우리는 국물에 빵을 적셔 맛나게 포식을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속이 든든해야 걸을 힘도 나고 마음도 푼푼해진다.

아무튼 카미노를 걸으며 내내, 사는 게 별 건가 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긴, 카미노 길을 걸어야만 자기 찾기니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렷다.

나아가 내숭 떨며 우아한 척 고상한 척해봤자이다.

솔직히 그랬다.

형이상학이 아닌, 지극히 원초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은?

뭐니 뭐니 해도 삶의 기본이 되는 하루 세끼와 저녁에 깃들 숙소 신경 쓰기만으로 다른 생각할 여지가 없었지 않은가.

중세 순례자처럼 고매하게 철학 논하며 사색하는 폼은 그럴 듯 잡아보나, 기품이고  뭐고 사실 생존한다는 건 형이하학적이든 뭐든 날마다 먹어야 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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