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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17. 2024

용서의 언덕을 지나며

Camino de Santiago


올해 따라 대장관을 이뤘다는 랭커스터의 파피를 놓친 대신, 여기저기 붉은 양귀비꽃이 들녘에서 반겨주었다.

초록 벌판을 수놓은 점점이 양귀비꽃은 고혹스러운 자태로 한들거렸다.

길가 질펀한 밀밭이며 한밭 자리 완두 콩밭 가에도 양귀비꽃은 그 뇌쇄적인 빛깔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미노 길가에는 양귀비꽃만이 아니라 흰 마아가렛, 보랏빛 엉겅퀴며 이름 모를 들꽃들이 어우러져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페르돈 고개(Alto del Perdon)의 풍력 발전 프로펠러를 올려다보며 경사진 길을 한참 걸어 올라갔다.

정상 가까이 다가갈수록 앞뒤로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지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끝자락 높고 낮은 산들은 서로서로 어깨를 결고 멀찌감치서 음영 다른 남빛으로 둘러섰으며

아직 푸르른 밀밭과 눗누러이 익어가는 밀밭이 대비도 선명하게 저만치 깔려있기도 했다.  

정상에 이르니 탁 트인 조망권에 시야는 물론 흉금까지 다 시원해졌다.



지천으로 깔린 연보라 들꽃 향기로운 용서의 언덕에 올랐다.

길쭘한 고갯마루엔 사진으로 이미 익숙한 풍경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언덕 위에 철 조각품으로 만들어 세운 순례자 행렬인데 어째서 용서의 언덕이라 부르는 걸까.

용서라, 말이 쉬워 용서지 사실 용서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자신에게 어떤 형식으로 건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의 잘못을 덮어주고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투투 대주교는 용서를 이렇게 정의했다.

“용서의 과정에서 증오와 분노는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감정은 인간 존재의 일부다. 용서란 복수할 권리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과 자신을 묶고 있는 분노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지, 미운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한 미운 사람을 맺힌 마음 없이 온전하게 용서할 수 있는 걸까?

용서를 향한 첫 단계는 상대를 이해하는 것으로 용서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걸 인정하고 나도 같은 입장이 되면 그럴 수 있다는 점을 수긍해야 하리라.

우리는 먼저, 상대가 왜 나에게 그런 잘못이나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봐야 하며 폭넓게 이해하도록 애써볼 필요가 있을 터.

용서를 주제로 한 <밀양>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종교에 깊이 경도된 주인공은 하늘도 용서 못 할 죄를 진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해 주기로 한다.

그러나 믿고 의지했던 전능자가 먼저 그를 용서했다는 말에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내며 결국엔 신앙마저 등 돌린다.

입으로 한 용서, 무작정 눈감아 주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용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유형의 행위가 아니라 더 이상 미움을 품지 않는 것으로 그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처벌이나 보상을 면제해 주는 것보다 더 선행돼야 할 점이 상대를 가슴으로 이해함으로써 자연스레 우러나는 진심 어린 공감과 연민이 생겨야 가능한 용서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용서는 그래서 족쇄를 푸는 자기 해방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죄 사하여주신 그분 말씀처럼 당연히 아무런 조건 없이 그분이 우릴 용서하셨듯이 용서를 해야 함에도

괘씸하고 섭한 마음 꼬불쳐둔 보통 사람이라서 제 탓이오! 먼저 고백하고 참회하기가 그리 어려우리라.

용서한듯하다가도 다시 스스로를 칭칭 묶어놓는 질긴 밧줄로부터 이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길 청원해 본 용서의 언덕이다.


용서의 언덕을 내려오니 온통 초록에 파묻힌 저택이 쉼터를 제공했고 깔끔스런 알베르게가 너무 이른 시각에 모습 드러냈다.

비탈진 산기슭에 둥지 튼 우데르가란 고대 유적 같은 마을에도 광장에는 예외 없이 오래된 성당이 좌정해 있었다.

다시 밀밭 사잇길을 한 시간여 걷자 이번엔 중세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그 작디작은 동네 한복판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묵직한 성당이 둘씩이나 자리 잡았다.

들판길 걷고 걸어도 뒤돌아서 보면 먼 산 위에 서있는 풍력 단지 바람개비가 보이는 걸로 미루어 우리가 올라갔다 걸어 내려온 구간이 제법 높은 고지였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전혀 지치거나 피곤하지 않아 발걸음 그 언제보다 가벼웠다.

여세를 몰아 그렇게 사도 안드레아 성당 (La Parroquia de San Andres)이 있는 사리끼에기를 거쳐 우데르가, 오바노스도 흘깃 스치고 지나쳐 곧장 걸어 나갔다.

푸엔테 라 레이나 옛 수도원에서 짐을 풀고 셈해보니 27킬로 너머 걸었던 그날, 아무런 부담 없이 그것도 아주 수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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