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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 폐교에 갤러리가 있다 -1

무한대 시공

by 무량화


미쳐야 미친다, 했던가.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무언가 한가지에 몰입해 일생을 바친다는 것.

몰입은 황홀한 매혹이다.

아니다.

그에게 몰입은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이었다.

제 신명에 겨워 홀로 쏘다니다 보면 모든 걸 잊었다.

야시에 홀리듯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그에겐 있었다.

마음 설레며 정신없이 빠져들면 다른 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법.

지독한 궁핍에 시달리면서도 돈이 생기면 필름과 인화지를 샀다.

허기지면 밭두렁의 당근이고 고구마를 뽑아서 끼니를 때웠다.

바람을 안고 초원 떠돌며 제주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남자.

루게릭병에 잡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웠다.

거동은커녕 셧터 누를 힘조차 없고 목을 돌리는 것마저 불편했던 육신이다.

그 몸으로 폐교가 된 삼달분교 안팎을 직접 고르고 손질해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교실 벽과 공간을 다듬어 놓자 사진을 걸 수 있는 갤러리가 되었다.

운동장에 나무와 야생초 심었고 돌 주워다 둥글게 단 쌓아서 정원을 꾸몄다.

외진 곳에 문을 연 갤러리에 사람들이 찾아왔다.

성읍마을에서 성산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삼달리라는 산간 마을.

문 닫은 국민학교에 2002년 여름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오픈했던 것.



전시실에 들어 영상을 보는 내내 심곡 먹먹하다 못해 쩌르르해졌다.

용눈이 오름 사진만도 천여점, 그중에서 작품을 추리려니 너무 부족해 성에 안 차더라는 그의 치열함 앞에 민망해졌다.

루게릭으로 사위어 가면서도 끝까지 닿아보려 했던 건, 제주의 외면이 아닌 제주의 정신임을 깨닫자 전기 쐬듯 짜르르.

그가 만들고 싶은 공간은 대중적이기보다는 진실로 뭣인가를 느끼려 하는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라는 말이 수긍됐다.

단순한 동선의 갤러리를 돌며 숙연해졌던 건, 요절한 사진작가의 짧은 생애가 안타까워서만도 아니었다.

앞뜰 감나무 아래 뼈를 묻었다는 그는 미라처럼 푸석거리는 육신 벗고 훨훨 자유로워졌을 테니.

청량한 새소리 가득 찼어도 깊은 바다처럼 가라앉은 적요로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지향없이 떠도는 바람, 능선 완만한 오름, 갈대 메마른 초원, 파도 일렁이는 바다, 숲을 배회하는 안개.

한결같이 다 고적해 뵈는 까닭이었다.

제주를 구성하고 제주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이 왠지 모를 쓸쓸함으로 다가와서였다.

신록의 봄을 즐기려 경쾌한 왈츠 스텝으로 몰려다니는 관광지의 인파는 어쩌다 설핏 들러 휘리릭 돌다 가면 그만.

평화로워 보이는 '구름 언덕' 연작 시리즈의

한그루 나무 사정없이 회초리질 하는 바람 거칠다는 걸 그들도 알까.

삶은 그렇듯 비명도 지를 수 없이 아플 적 있는가 하면 환희의 순간도 있는 거라고 발음 어눌하게 들려주는 그.

그 섬에 그는 지금도 살아있다.

밤새워 별을 쳐다보던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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