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좁은 골목인 올레로 접어드니 돌담에 서리서리 송담 무성하다.
저만치 조촐한 함석지붕이 서있다.
시인의 뜨락에는 살짜기 봄기운이 어렸다.
목련 봉오리 도톰해졌고 그 옆에 붉은 꽃잎 낙화 진 애기동백 한그루.
어느새 백매 홍매 화들짝 피어났다.
뜨락 가득 재재거리는 새소리 흥건히 고여든다.
낯선 꽃망울에 홀연 시선이 멎는다.
첨 보는 꽃자루라 이름을 묻자 삼지닥나무라 했다.
그녀는 이 나무 꽃 피면 뜰에 달콤한 향 그득해진다며 부연 설명을 길게 해 준다.
제주에서는 자주 만나는 꽃나무라는데 그간 보고도 무심코 지나쳤을 듯.
딱 한송이가 개화했길래 고개 갸웃하고 살펴봤더니 통꽃심 안은 주홍색에 가까운 짙은 황금빛이다.
이른 봄 매화와 함께 영춘 소식을 전하는 대표적인 수목이라는 삼지닥나무.
삼지닥나무의 영문 이름은 Oriental paper bush로 팥꽃나무과의 낙엽 지는 관목이다.
모든 가지가 세 개씩 갈라져 삼지(三枝), 닥나무처럼 종이 만드는 데 쓰인다 하여 삼지닥나무다.
"당신을 맞이합니다"라는 삼지닥나무 꽃말에는 아마도 '봄을 맞이합니다'라는 함의가 담겼겠다.
삼지닥나무 나목에 보오얀 솜털로 감싸인 꽃뭉치가 성글게 매달려 있다.
동그란 꽃뭉치에는 무수한 꽃망울들이 촘촘 맺혀있었다.
꽃만으로도 관상적 가치가 있어 조경수로 가꾸는 나무인데 향 또한 매혹적이란다.
가지와 잎은 약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한방에서 어린 가지와 잎을 구피마(構皮麻), 꽃봉오리는 몽화(夢花), 뿌리는 몽화근(夢花根)이라 불리는 약재.
눈병과 몽정에 효과가 있으며 신체가 허약해서 생긴 피부염에도 쓰인다고.
나무껍질은 고급 종이의 원료로 일본에서는 지도와 화폐 주조 시 사용했다는데.
앞으로 이 꽃 만나러 한라수목원을 더 자주 찾게 생겼다.
시인 댁은 교통이 녹록지 않으니 대신 수목원으로 만개한 꽃을 보러, 향을 접하러.
새로이 인연 닿은 삼지닥나무와 수인사 튼 거 만으로도 오늘은 각별히 의미롭다.
집을 나서려는 참에 시인이 전지가위를 찾아들었다.
작년 이맘때도 그녀로부터 향기로운 꽃 선물을 받았더랬는데 오늘도 수선화 한다발을 만들어 안겨줬다.
누옥에 미묘향 한동안 번져 새봄 오롯이 누릴 수 있겠다.
신실하게 집을 지키는 덩치 큰 멍이 두 마리는 시인 곁의 내게 연신 꼬리 흔들며 전송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