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투어리즘에 동참하기 앞서 떠나기 전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기상 조건이다. 물론 마음 자세와 태도도 일반 여행과 달리 가벼워서는 아니 되겠지만 무엇보다 날씨 여하에 따라 공명도에 차이가 클 거다.
가령 DMZ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또는 홀로코스트나 체르노빌을 방문한다면 우선 배경을 고려해 옷차림부터 신경을 쓸 일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 관련 장소 혹은 인권 무참히 유린당한 비극적 역사현장이나 엄청난 재난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 교훈을 얻고자 떠나는 여정 아니던가.
이처럼 주제가 무거울진대 새파란 하늘에 해 쨍쨍 아주 청명한 날은 분위기 좀 그렇지 않겠는가 싶다. 아픈 과거 속에서 교훈을 얻어 반복지 않고자 한다면 자연히 의미를 깊이 되새기게 된 터라 당연 철학적 숙고가 뒤따르게 될 터이므로.
서귀포 소재 송악산 인근에 일제는 태평양전쟁 말, 들판 도처에 전투기 격납고를 만들었다.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지어 위에 흙을 덮고 떼 심어 마치 오름처럼 위장시킨 격납고는 현재 19기 남아있다.
그중 한 곳에 태평양 전쟁 당시 맹활약한 제로센 전투기가 실물 크기 모형으로 형상화돼 있었고 평화기원 문구 담긴 천 조각 빼곡 달려있었다. 이 주변에 지역주민들이 채소 농사를 짓고 있어 어떤 격납고는 농기구 보관 장소로 쓰이기도 하나 엄연히 대한민국 등록문화재다.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는 그보다 이른 중일전쟁 시, 중국 본토 공격을 개시하려고 일본 공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진작에 이미 깔았다. 제주 사투리로 아래쪽에 위치한 들이란 의미인 알뜨르 벌판에 일본군들이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하여 맨손에 고작 삽과 끌로 건설한 구조물들이다. 이곳 알뜨르 비행장에서 가미카제를 키우기 위한 조종훈련을 시켰다니 제주 남부 해안 일원은 일본군의 군사 훈련장이자 기지였던 셈.
태평양전쟁 막바지, 제주도를 옥쇄형 요새로 만든다는 계획에 따라 해안가 절벽에는 인공 동굴진지 다수도 파 놓았다. 가미카제식 자폭용 어뢰정을 숨겨놓기 위해 뚫은 암벽 동굴이 열다섯 곳이나 되는데 발파 등 난공사 과정 중에 목숨 잃은 도민이 부지기수라고.
또한 섯알오름 동쪽에다 다섯 개의 지하 땅굴 등 내륙 참호를 만들어 군수물자를 보관하고 비상시 방공호로 이용하였다. 그중 폭탄 창고 한 곳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대형 구덩이가 생겨나게 됐다. 섯알오름 정상에는 콘크리트 담벼락으로 조성된 대공포 진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비극적인 제주의 근현대사는 4 3 사태 때, 예비 검속으로 수감됐던 양민들이 섯알오름 폭발사고 구덩이에서 집단 학살 당한다. 학살터 앞쪽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195명의 희생자 추모비와 명예회복 진혼비가 세워져 있다. 피아 간의 구분 명확지 않던 혼돈의 시기라 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무고하게 죽은 이도 있으리라. 반면 무장대에 협력하고도 신분세탁한 자 전혀 없었을지는 훗날 역사가가 양과 염소 골라내듯 면밀히 솎아낼 줄로 믿는다. 정의로운 진실은 언제이건 반드시 밝혀지게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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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강정 포구에서 노을 보기 행사가 열린다 해서 현주 씨와 동행하기로 전날 약속했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시야 갑갑할 정도로 안개인지 황사인지 뿌연 데다 하늘은 구름장 음산하게 휘덮여 있었다. 게다가 저녁 무렵 비 소식까지 들었으니 노을 보긴 아예 글렀다 싶어 현주 씨는 동백군락지로 꽃 보러 갔다.
이런 날씨야말로 송악산 가기에 제격인 일기. 다크 투어에 안성맞춤이니 얼씨구나~하면서 옷 따뜻하게 챙겨 입고 나섰다. 해가 나올 기미는 안 보였지만 그다지 추울 거라 생각지 않았는데 밖에 나오니 예상외로 바람 거세게 불어 제켰다. 잠시,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스카프 단디 두르고 코트 단추를 다 채운 다음 장갑을 꼈다.
산방산을 지날 무렵 먹장구름이 간간 빗방울을 뿌려댔다. 버스에서 내려 2.4킬로쯤 걸어가야 알뜨르 비행장, 휘적휘적 걷는데 뒤에서 강풍이 등을 떠다밀었다. 비 그쳤으나 대신 허허벌판에 몰아치는 바람 기세 등등 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몸이 휘청휘청 허뚱거려졌다.
바람 소리 요기롭기조차했으니 완전 다크 투어리즘 분위기 제대로 잡아줬다. 무밭 질펀한 저만치에 격납고 같은 게 보였다. 밭고랑 내달려 거무스름 웅크린 구조물 앞에 서니 입구 쪽에 얼기설기 문이 매달려 있었다. 안에는 포대자루가 여러 개 쟁여져 있었는데 왠지 괴괴해 얼른 큰길로 나와버렸다.
조금 더 가니 이번엔 여기저기서 격납고가 드러났다. 밭 사이에 봉긋하게 솟아 저 멀리 배경 이룬 산방산과 녹남봉과 바굼지오름 아스라이 두른 채로.
휴일이라서 오가는 차들이 많아 흙먼지 마구 날리며 바쁘게 지나갔다. 알뜨르 비행장의 무엇을 보러 왔는지 격납고는 본숭만숭 죄다 들 차를 타고 휑하니 지나쳐버렸다. 아마도 맨 끝에 위치한 제로센 전투기 모형이 있는 격납고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할 듯싶다.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더욱 사나워져 섯알오름 유적지 위 둘레길은 고꾸라질듯해 올라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환태평양 평화공원 앞에서 파도 하얗게 거품 물고 포효하는 바다를 잠깐 보다가 날아갈 거 같아 자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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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월동 무를 처음 본 건 재작년 겨울, 미국에서 돌아온 뒤 언니와 가락시장 구경을 가서였다. 무가 유달리 크고 통통하면서 매끈한 데다 매운맛보다 단맛이 더 나서 겨울철 인기가 대단하다고 했다.잘들 알다시피 소화효소인 디아스타아제가 함유되어 있어 소화를 촉진시키는 무인데 맛까지 좋으니 그냥 생으로도 먹는단다.
실제로 산행시, 오이와 더불어 무를 길쭘하게 썰어서 갖고들 다니기도 한다. 특히 생태찌개를 할 때 넣으면 달큰한 맛이 우러나오고 생채나물로 무치면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각별하다는 제주무를 여기선 놈삐라 불렀다. 몇 년 전부터 제주 감귤 다음으로 효자상품이 되어 제주도의 경제부양효과에 한몫 톡톡히 한다는 백무다.
알뜨르 비행장 가는 길가 온데마다 무밭이라 눈길 닿는 여기저기 무청 싱싱한 이파리 너울거렸다. 감자나 마늘 양배추 콜라비 브로콜리 밭도 있고 더러 고구마 캔 뒤라 빈밭자리도 드러났지만 근방은 주로 무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묵직한 기분으로 무밭 고랑 건너뛰며 격납고를 보고 난 뒤라 앞으로 당분간은 무만 봐도 여기 생각이 날 거 같았다.암튼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기 거북스러운, 착잡하고 불편하고 애절하면서도 찝찝한 게 흉몽을 꾼 듯 언짢았다.
조선왕은 어쩌다 나라를 말아먹어 버려 일본에게 이토록 국토 유린당하게 만들었담. 화가 나 제기랄! 흙덩이를 차며 내뱉었다.지금이라고 다르랴, 마찬가지로 자칫 정치 잘못하면 그 꼴 되풀이하지 말란 법 없으렷다.정략꾼들부터 제발정신 좀 바르게 차려라, 궁시렁거리며 청청한 무밭 뒤로 하고 차도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