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6
날이 갈수록 셀프 격리 생활도 제법 익숙해져 갑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느끼기 나름, 생각하기 나름, 즐기기 나름인 거 맞아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인생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따라 희극도 되고 비극도 되겠는데요.
이 차 대전 중 유태인 수용소에서의 생활임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놀이하듯 아들과 지낸 아버지 귀도.
따로 수용된 엄마가 보고 싶다며 떼쓰는 아들의 천진스러운 영혼이 상처 입지 않게 그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동원하지요.
그렇습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란 티베트 속담이 있답니다.
알랭은 이런 조언을 남겼지요.
걱정 없는 인생을 바라지 말고 걱정에 물들지 않는 연습을 하라고요.
설마 이런 시국에 오두방정 떨며 '걱정을 묻어놓고 다 함께 차차차 ~' 눈치 없이 주책이야 부리겠습니까만은.
대신 조용히 자연으로 나가 봄쑥도 뜯고 미역이랑 톳도 따면서 바깥바람으로 심신 환기 시키는 거야 누가 말리겠어요,
그렇게 준 자급자족으로 차린 소찬입니다.
잡곡밥에 도다리 쑥국, 기본 반찬인 배추김치, 총각김치에 갓 겉절이, 무나물, 삶은 계란, 해물 동그랑땡, 풋마늘 초절임,
직접 채취한 물미역 초장 무침과 톳 나물 무채 무침으로도 수라상 안 부럽네요.
식성에 맞는 음식들이자 게다가 깨끗한 장소에서 손수 얻은 싱싱한 식재료로 차린 안심 밥상이니 뭘 더 바라겠어요.
부산 바닷가 오두막을 말리부 해변가 별장으로 치환시킨들, 소찬을 만찬으로 격상한들 뉘라서 시비 걸리오.
손톱 아래 시커멓게 쑥물 들고 바닷바람에 손등 거칠어져도 개의치 않고 아실랑거리며 다가오는 신춘과 가비얍게 노닐고 있지요.
캘리포니아 사막에서는 인디언 할매 닮아가다가 부산 바닷가에서는 해녀 할망 되어 누항사 잊고 유유자적 중.
며칠 포근했던 날씨라 남녘 산 어딘가 양지에 낙엽 비집고 바람꽃 하이얗게 올라왔지 싶어요.
입춘 지나서인지 새벽부터 출출 내리는 빗줄기가 마치 봄비 같네요.
실제로 산목련 꽃눈 눈에 띄게 도톰해지고 길가 벚나무 수액 부지런히 길어 올려 가지 끝마다 발그레해졌어요.
내일부터 다시 한파가 밀려온다지만 까짓 거 괜찮아요,
삼동 추위 무명 솜옷으로 견뎌낸 민족의 후예인걸요.
동란 후 국민소득 백 불에도 못 미쳤던 시대를 산 우리에게야 삼만 불 훨씬 넘는 현재 모든 여건, 한마디로 오감타 정도가 아니라 흔감코 말고요.
금고기 동화처럼 온갖 것 지녔어도 그보다 더 좋은 걸 갖고 싶은 물질에 대한 욕구는 한이 없어 참된 만족에 이르지 못하잖아요.
넘치는 풍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쉬 느끼지 못하는 자족감,
그러나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느라 늘 갈증으로 목이 타 행복지수가 턱없이 낮아질 밖에요.
어제 친구가 통화 중에 싱어게인이 볼만하다 그러더군요.
한 번도 그런 주제를 화제에 올려본 적 없는 우리인데 한참 주거니 받거니 했네요.
요즘 너나없이 집콕상태에서 할 일이라곤 각종 별식 직접 만들어 먹기와 유튜브 골라보기 밖엔 더 있나요.
처음엔 음악과 인문학 분야와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유튜브로 길을 텄는데 점차 정치 이슈 담은 유튜브를 골라봤고 다음엔 온갖 영화, 장르 구분없이 숱하게 찾아봤지요.
그도 질리자 오디오북을 듣다가 건강채널로 돌렸다가 여행지 섭렵해 보다가 개그 프로에도 한동안 빠졌고요.
하다 하다 연예계로 진출해 트롯을 즐겼으며 탤런트 개그맨 사생활에도 관심 돌렸네요.
텔레비전이 없다 보니 유튜브 검색창에 싱어게인을 두드려봤어요.
와우~ 신기하고도 놀라워라, 제가 모르던 신세계가 거기 펼쳐져 경악게 하더군요.
전 국민 대상인 큰 무대에 오른 무명가수들은 그러나 주눅 들기는커녕 한바탕 신명풀이하듯 자유자재 진짜 신바람 나게 잘 놀더라고요.
천의무봉 신기에 가까운 재능꾼들의 무대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고정시키게 할 만큼 굉장해, 완전 몰입하도록 평정했으며 심사단마저 초토화시키더군요.
어느 만큼 비상할지 모르는 그들을 보며, 어떤 분야이든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길이라면 저들처럼 즐기며 갖고 노는 경지에 들어야 최고가 되겠네 싶었어요.
미쳐야 미친다 했지요, 진정한 프로란 바로 그런 거 아닌가요.
유희하듯 리듬을 파도처럼 타며 흥을 즐기는 사람들.
접신한 무녀처럼 넋 훠얼훨 자유로운 사람들이 문득 아름다이 다가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