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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19. 2024

첫눈에 반하게 한 프로미스타

카미노 스토리

첫인상이 참 좋았다.

단정하고 간결해서 한눈에 반해버린 프로미스타.


뾰족탑 첨예한 고딕건물에 그새 질렸던가, 기교 부리지 않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듬직한  성전들이 미더워 보였다.

기품 있으면서도 간소하고 사치스럽지 않게 적당히 장중한가 하면 솜씨를 부렸어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 맞고....

내 성정에 딱 들어맞는 동네라는 걸 눈이 대뜸 알아차린다.

화려하고 매끄러운 도회적인 분위기보다는 당당하고 담담히 자기 개성 야무지게 속으로 갈무린 이런 곳이 난 마음에 든다.

제대로 실천은 못해도 기질상 청교도적 금욕주의와 가톨릭의 엄숙주의를 자못 선호하는 편이니까.

여러 세기를 저렇듯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 오롯이 유지하며 첫날이 끝날같이 여일하게 지켜내기란 진짜로 쉽지 않은 일이다.  

녹처럼 낀 과거의 자취,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는 세월의 이끼조차 거의 보이질 않는다.

햇살이 좋아서인가.

허물어진 벽들이 전혀 없진 않으나 체념하듯 방치시킨 상태가 아니라서 그러한가.

굳이 감추려 하거나 포장으로 얼버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황폐감 또한 발효 잘된 향을 풍겨서인가.  

어딘지 무겁고도 칙칙하니 어두운 기분, 중세 유적지가 전반적으로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프로미스타는 달랐다.

초입에서 마중하는 플라타너스마다 그로테스크한 추상화처럼 예술적으로 전지를 해줬고, 벽보 하나 함부로 붙어있지 않은 거리.

광장 주변은 물론 마을 고샅길까지 금방 빗질한 듯 무척 깨끗하다.

시정 책임자와 주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결같이 마을 가꾸기에 적극 나선듯싶다.

모든 게 완벽하다고 냉랭하니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붐비는 마켓의 생선과 야채 신선한 데다 인심 좋은 주인은 덤까지 넉넉히 얹어준다.  

착한 가격의 싱싱한 재료를 사서 유러피안처럼 샐러드 한 접시 멋지게 차렸고 샌드위치도 맛있게 만들어 벤치에서 식사를.  

다만 이 마을 역시 놀이터 그네틀도 있건만 아이들 뛰노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서서히 구시대의 유물로 박제돼 가는 프로미스타.

그러나 이곳 환경은 물론 공기까지가 더불어 마음 우아하게 가다듬어 줄 것만 같았다.


11세기 순수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산 마르틴 성당은 사방이 다 다른지라 한 건물이라도 방향에 따라 모양 제각각이다.

추녀를 따라 빙 둘러 정교하게 조각된 동식물과 곡예사 악사 등등은 저마다 독특한 자세를 취해 눈여겨볼 만하다.

아치를 즐겨 쓴 로마의 건축기법에서 비롯된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은 세련미보다는 묵직하면서 투박한 편.

당시 유럽 각국은 걸핏하면 침략전쟁을 일삼았기에 방어 기능을 염두에 둔, 두터운 벽에 작은 창문의 건물을 선호했다.

남성적 성향을 대신해 출입문이고 창문이고 아치 장식마다 섬세하게 띠 둘러 무뚝뚝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부드러이 감싸줬다.  

카스티요 성모 성당은 벽돌색 때문인지 우중충하긴 했으나 반듯한 외관이 삿된 범접을 허락지 않을 듯 고고하니 정숙해 보였다.

산 마르틴 성당보다 후대인 15세기에 만들어진 산 페드로 성당 현관 우아한 아치는 재질이 약한지 삭아 이지러지고, 비틀린 지붕
아래를 받친 나무 골조 서까래가 앙상히 드러나 있었다.


허물어져 가는 석벽 틈으로 보이는 견고한 지붕 서까래, 며칠 전에 발생한 파리 노트르담 사원을 무너뜨린 화재 원인이 수긍됐다.

노트르담 성당이 불길에 휩싸여 첨탑 어이없이 무너져 내리는 걸 TV로 보며 내심 의아해했었다.

한국의 숭례문을 비롯 사찰이나 서원은 목조건물이라 화재에 취약하다.

그에 반해 유럽 문화재 거의가 석조 건조물인데 어이해 화르르 불에 탈까?

통상 석조건물은 기초부터 마감까지 각진 돌끼리 서로 아귀를 맞춰 차곡차곡 쌓아 올리기만 하는 줄 알았다.

헌데 아, 그랬구나! 오래전에 노트르담 성당 종탑에 올라갔을 때 바닥재가 단단하고 묵직한 목재였던 생각도 났다.

피라미드 같은 경우는 해당이 안 되겠지만 석재나 벽돌로 집을 지어도 상단부 최종 마무리에는 역시 목재가 이용된다는 걸 이곳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동안은 석조건물에도 화마가 덮친다는 게 당최 이해되질 않았던 터였다.

비로소 마음 한구석을 차지했던 의문이 풀리면서 개운한 기분이 들게 해 준 산 페드로 성당이었다.  


저녁 아홉 시까지 해가 떠있는 스페인.

오후 햇살 따라 수시로 색조 달리하는 프로미스타의 성당들을 질리지도 않고 몇 차례나 거듭 보러 다녔다.

산책하듯 천천히, 순례하듯 조용히.

작은 마을 프로미스타는 되풀이해 돌고 또 돌아봐도 아쉬울 만큼 묘하게 정감 어린 동네였다.

마음 휘감아 칭칭 동여매도 종내  미진한 채로 나는 하룻밤 머물면 프로미스타를 떠나 산티아고로 가야 하는 길손이라서일까.

                               ***

<알베르게 오픈을 기다리며 길가에 앉아있는 한시적 홈리스들의 망중한>

<알베르게 담벼락에 도착한 순서대로 줄지어 기대선 배낭들>

산 마르틴 성당 광장 바로 앞에 무니시팔(공립이란 뜻인데 욕 같아서 쓰기가 좀 거시기..) 알베르게가 있었다 >

<시청사에 게양된 스페인 국기, 발렌시아주의 문장 이 든 기와 프로미스타 시의 문장이 든 기, 파란 기는?>

<프로미스타 골목의 깨끗하게 정비된 주택가 겨자색 로즈색 크림색 등 밝은 담벼락
 잇댄 산마르틴 광장 앞 작은 공원의 조각 장식물>           

<중심지로 진입하는 대로상에 있던 공원의 조형물은 프로미스타 시의 문장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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