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로부인 만나러 갔다가

by 무량화

동해안 임원항에서 '헌화가'의 주인공 수로부인이 있다는 남화산으로 향했다오.

어딜 가나 경로우대로 입장료는 면제, 길게 늘어선 관광객 줄 끝에 섰소이다.

이윽고 높다라니 치솟은 빨간 철조에 온통 유리로 된 타워 안으로 들어갔더랬소.

산길을 허걱거리며 걸을 일없이 이곳 엘리베이터가 단숨에 스르륵 우릴 산 위로 올려다 주었소.

그렇다고 오르자마자 수로부인이 버선발로 영접할리야 없고 한 십여분쯤 내처 조붓한 흙길을 걸었다오.


칡덩굴 휘감긴 언덕 올라 해당화 단지와 작은 연밭을 스쳐 지나자 드디어 산죽과 소나무숲 위로 모습 드러내는 수로부인상.

주변 조화나 설화 내용 아랑곳없이 상징물은 무조건 거대하고 웅장하게, 해서 입 떡 벌어지게!

시대 추세대로 대형화가 최우선 과제이자 목표?

수로부인 동상 아랫단에 빙 둘러 까만 오석에다 엷게 음각한 수로부인 귀향도 역시 엄청스런 규모.

조성비용은 다 세금으로 충당됐을 텐데.. 쩝!

과유불급!!!



흔하면 가치가 떨어지건만 대리석 조각품으로 칠갑하다시피 숱하게도 온갖 동상을 진열해 놓았더라는.

정상에도 십이지신상이며 오만 장식품이 정신 수란케 하는데 다만, 동쪽에 배치시킨 문살만이 그나마 고즈넉하고 천사날개 하얀 의자가 미소 머금게 하더라는...

길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데크와 마대포로 된 깔개가 설치돼 있어 쉬엄쉬엄 걸을만했소.

삼국유사 기이 편을 읽다 보면 만나는 여인, 강릉태수 순정공의 아내로, 누구와도 견줄 바 없이 출중한 미모를 지녔다던 수로부인.

임지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가는 길에 바닷가 벼랑 아래 피어있는 척촉(진달래꽃)을 보자
그녀는 그만 꽃의 미태에 혹해버리고 말았다오.

하지만 아무도 위험한 낭떠러지에서 꽃을 꺾어오겠다고 나서지 않았는데 암소를 끌고 가던 한 노인이 꽃을 꺾어다 주며 노래까지 지어 바쳤다는 그 헌화가.....

응당 이런 테마에 따른 상상을 하며 올라갔는데 웬걸, 어마무지하게 거대한 용 위에 걸터앉은 수로부인상에 급실망하고 말았소.

하긴 절세미색인 그녀는 용에게 납치되기도 했다더니 그래서 나온 해가(海歌)에 더 중점을 둔 모양이었소.

이 노래는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남의 부녀를 빼앗아간 죄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

용이 수로부인을 용궁으로 데려갈 적에는 거북에게 명을 내렸던지는 잘 모르겠소만.


여하튼 온백성이 땅을 두드리며 저 시가를 주술 외듯 소리치자 부인을 돌려보낼 적엔 해룡이 몸소 제 등에 태워서 데려다주었던가 봅디다.



하지만 용이 수로부인을 취해갔다는 옛 임해정 자리는 아직도 여전히 미상이라 추정만 분분할 뿐.

더 혼란스러운 건 임호항만이 아니라 동해에 붙은 삼척, 강릉, 묵호, 울진까지 철저한 고증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해가사의 터'니 '헌화로'라는 이름을 제 동네에 끌어다 붙였다는 거라오.

한국은 지자체가 되면서부터 경쟁적으로 자기 고장 고유의 이벤트감을 발굴해 내 요란스럽게 상징 시설물을 세운다, 축제를 벌인다, 온통 관광객 유치를 위해 난리법석들이더이다.

어딜 가나 석 조각품 즐비하고 단청 입힌 정자나 누각이며 목장승에다, 뷰 포인트 포토 죤 설치했다는 알림 친절은 기본.

느닷없이 바다 위로 케이블 카가 지나가고 크루즈 배가 떠있고 레일 바이크가 굴러가고 휑하니 짚 라인이 스쳐 지나는가 하면 스카이 워크가 생겨나는 등등.

더러는 정신없이 또는 터무니없거나 뜬금없이 마구잡이 졸속으로 세워진 듯 거북스럽게 솟아 있는 대형 구조물들.


훗날 녹물 흐르는 볼썽사나운 골조로 흉물스럽게 남아 애물단지나 되지 않을까 괜한 염려도 되더이다.

뿐 아니라 무분별한 대형공사로 자연훼손, 환경파괴도 우려되는 데다 일단 쓰고 보자 식으로 국민 혈세가 '눈먼 돈'되어 줄줄 샌듯한 현장도 누차 목격했더이다.

자연은, 우리 사는 동안 잠시 빌려 쓰는 땅으로 고이 쓰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인데 어거지 개발로 자연을 이리 함부로 어지럽힌다는 건 경우가 아니건만.

과연 무슨 기준에 근거해서 이런 허가를 내주는지 특히 관계 행정당국의 처사가 더 밉더이다.

물론 그보다는, 기존의 여건을 최대한으로 살려 실속있고 알차게 꾸민 곳이 더 많았지만, 몇몇 곳에서는 실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소이다.

이곳만 해도 조촐하고 서정적인 헌화가의 모형이 기다려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날은 하늘이 내내 찌뿌둥, 잔뜩 골난 표정이라 청남빛 동해바다 대신 바다도 우울한 회색.

다만 저 멀리 산자락 밑에 울진 원자력발전소 새하얀 돔이 봉긋봉긋 산뜻하게 솟아있더이다.


수로부인 조각상보다 몇십 배 더, 알찬 미래를 약속하는 그 풍경이 희망적이라 한층 멋집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