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아주 오래전 어느 해 봄. 향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던 그날의 풍경은, 뺨이 발그레한 아이가 황토 언덕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물색 고운 호박단으로 지은 치마저고리, 아니면 꽃무늬 아롱거리는 포푸린 원피스를 입었으리라. 문득, 나비 날듯이 가벼이 산으로 오르는 아이. 거기 덤불진 찔레꽃 향의 이끌림 따라 뽀얀 찔레꽃 앞에 이르러 그만 사르르 눈감고 마는 아이. 그 봄볕 아래 기억이 향기에 관한 첫 경험이었지 싶다.
장미나 라일락 꽃향기보다 먼저 친했던 향기는, 울안의 분꽃과 옥잠화 향이거나 뒷동산 자귀나무 꽃향기였다. 꿀벌처럼 아카시아 향을 탐한 적이 있는가 하면 금은화 향기에 혹하기도 했다. 소담히 핀 노란 소국 무더기에서 전해지는 깊은 향을 좋아했으며, 청신한 해당화 향에 이끌려 여름이면 곧잘 해변가로 내달았다. 그윽한 난향을 아끼고 서향에 매료된 때는 좀 더 나이 든 다음이었으리라. 한겨울 은목서 향에 젖고자 일부러 새벽 기도에 열심을 낸 적도 있었다.
향긋한 꽃 내음을 좋아하던 기호가 어느새 은은한 여운의 다향(茶香)을 그리게 되더니, 이즈음 사람의 향기에 곧잘 취한다. 나름의 색채로 심상에 무늬 진, 저마다 다른 그 사람만의 향기. “서현이 왔어요.” 세 돌이 채 안 된 귀여운 음성이 현관문을 두드린다. 마침 생선을 다루다 오른손을 다쳐 싸매는 중인데 아들 내외가 온 것이다. 약상자를 챙기는 아비 곁에서 어린것은 자못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손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다가와 내 손에다 제 조그만 입을 대고는 호 하고 불어 준다. 평소에도 하는 짓들이 이쁘기 그지없는 서현이다. 자주 대하지 않아도 올 적마다 스스럼없이 담싹 안긴다. 어느 땐 두 팔로 내 목을 탱탱히 감고는 양 볼에 뽀뽀 세례다. 핏줄의 당김이 이런 것인지 가슴이 따스해지며 저절로 지긋이 눈 감기는 순간, 보드라이 휘감기는 풀잎 향. 여리고도 맑은 느낌의 그 향은, 아무래도 오월 신록 숲에 핀 앙증스러운 은방울꽃 내음이리라.
대전에서 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는 한 번씩 서울에 간다. 긴한 볼일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분위기에 젖고 싶어 간다는 것이다. 소극장이 즐비하고 고궁과 가까운 대학로며 인사동 거리를 돌다가도 오고 어느 땐 김포공항에도 들러 온다. 처음 인사동에 다녀오던 날. “엄마 좋아하는 거.” 하면서 연두색 한지에 싸인 자그마한 포장물을 내밀었다. 풀어 보니 청자로 빚은 거북 모형의 향꽂이다. 언젠가 저랑 도자기 전시회에 갔다가 연 잎 위에 개구리가 앉은 참한 백자 향꽂이를 만난 적이 있다. 만만찮은 값 때문에 그냥 돌아서는 내가 딴에는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무지개가 뜬 날은 무지개를 보라고 학교에서 쫓아오던 아이가 이젠 개기일식을 구경하라며 시외전화를 건다. 그 신선함에서 입춘을 알리는 수선화 싱그런 향을 감지한다.
지난가을, 전화벨이 울리고 낯선 남자의 음성이 집 위치를 물었다. 꽃 배달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축하받을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날도 아닌데 웬 꽃? 시큰둥한 내 반응에, 대구에 사는 B 씨가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고 보냈다는 것이다. 달력을 올려다보니 10월 8일, 맞다. 당사자들조차 챙기지 못한 기념일을 용케도 기억해서 꽃을 보낸 그는 남편의 중고등 동창인 친구다. 배달된 꽃바구니 안에는 벨벳 질감의 진다홍 장미가 스물여덟 송이. 하얀 안개꽃 사이에서 더욱 화사함이 돋보인다. 방금 분무기로 물을 뿌려 왔는지 꽃잎에는 송송 물기가 맺혀 있다. 영롱한 빛과 마주한 듯 눈길 부신 감동으로 받아 든 꽃바구니. 고혹적인 장미 향에 묻혔건만 그를 떠올리자 귀골풍의 태산목 순백의 꽃이 피워 낸 유려한 향기가 겹쳐진다.
풍치 치료로 치과에 드나든 지 서너 달. 입안이 엉망이라 제대로 식사를 못 하며 불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문우가 전화를 했다. 그때 따라 이가 솟쳐 말씨조차 우둔했으니 근황은 미루어 짐작이 됐던지 정오 무렵 그녀가 불쑥 찾아왔다. 부엌에서 상을 들고 와서는 쇼핑백 안의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연한 새우튀김에 전복죽, 그리고 생선초밥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바쁜 그녀다. 잠시 점심시간을 틈타 들렀다며 서둘러 일어난다. 언제나 선머스마처럼 짧은 커트 머리에 단화 차림으로 뛰다시피 하며 집과 직장 사이를 오가는 그녀. 그런 그녀가 지병으로 회복이 어려운 옛 친구를 위해 천 마리 학을 접었다는데 진작에 감격한 바 있다. 평소 오밀조밀 곰살궂거나 섬세한 성격이라면 또 모른다. 처음 배운 어설픈 솜씨로, 그것도 오는 잠 쫓아가며 학 한 마리 접을 때마다 희생의 기원 새긴 그녀. 소중한 선물 받고 그 친구의 남편이 한 말. “친구 정성을 보니 당신 그동안 세상 헛살지는 않았군.” 그런 그녀에게서 향그러운 치자꽃을 떠올림은 나만이 아니리라.
비단 꽃향기 만이랴. 샤넬이니 터부니 하는 유명 향수가 아니라도 나를 사로잡는 향기들. 사철 푸른 솔 향 같은 사람, 상큼한 오렌지나 사과 향을 느끼게 하는 사람, 갓 따낸 오이 내음 마냥 풋풋하고 박하 향같이 산뜻한 감을 주는 사람과 만난 적이 있다. 자신을 태워 삿됨을 맑히는 신비로운 향불처럼 어디서나 주변을 정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는 이도 있다.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만들어진 침향, 향나무보다 미묘하고 심오한 그런 향내를 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위기에서 묵향을 풍기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이렇듯 내 가까이에서 빚어지는 그윽하고도 아름다운 향기로 하여 세상은 살 만한 곳으로 가꿔지는 것은 아닐까.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