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무진 걸었다.
28.8 km이니 칠십리 길이다.
3시간 50분 걸렸으며 3만 보 이상을 걸었던 날인데 심신 아주 가뿐했다.
계속 걷기만 한 게 아니라 한참토록 갈맷길에서 쑥도 뜯었고 봄꽃 사진도 찍으며 한나절을 유유 작작 후적거렸다.
아홉 시 전에 집에서 나와 오후 세시 무렵에야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자연 더불어 오로지 두 발로만 한적한 길을 골라가며 걸어 다녔다.
수치에 약한 사람이 이리 정확한 행로를 알 수 있었던 것은 Google Maps Timeline을 알리는 메일을 받아서이다.
이젠 세상 어디에도 존재 하나 숨을 곳이 없다.
코로나 확진자 동선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것처럼 각각의 자취도 어딘가에 복사되듯 찍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자주 내 블로그를 들여다본다.
미국에 있을 땐 메신저 노릇을 톡톡히 해준 블로그다.
한국에선 더러 게시글 내용에 대해 잔소리도 한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민주사회에서 하고 싶은 말 통제하려 들지 말라고 한방 놓았다.
반면 딸내미는 엄마 놀이터에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
해서 전혀 블로그 근처에 얼씬도 안 한다.
그러나 딸내미는 나의 24시간을 명경알처럼 꿰고 있다.
내 모든 게 딸의 손안에 들어앉아 있는 셈인데, 자청한 일이다.
Google 위치공유 맞춤설정을 딸과 해뒀다.
스페인 여행을 떠나기 전이다.
홀로 한 달여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산티아고 걷는 길이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여 언제라도 딸내미는 실시간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원한다면 오차 없는 행동반경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돼 있다.
방문한 장소, 현재 활동상, 하다못해 구글로 검색한 뉴스나 본 영화며 접속한 홈피까지 시시콜콜한 정보가 몽땅 포함된다.
몇 시 몇 분에 집에서 나와 어디 어디 돌아다니며 뭘 먹고 뭘 하다가 몇 시에 귀가했는지도 훤히 보인다.
들어갔던 식당 이름이며 마켓이나 관공서 등등 동선이 일목요연하게 지도로 뜬다.
하다못해 지하철 무슨 역을 이용했는지도 보여준다.
충복도 이리 신실한 충복이 없다.
따라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딸에게 상시 점검된다.
필요하거나 궁금하다면 말이다.
만일 누군가가 24시간을 그리 촘촘히 감시하거나 관리한다 생각하면 숨이 콕 막힐 노릇이겠다.
딸내미가 아닌 남편이 그렇게 일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면 아마 신경정신과 출입을 하게 될터다.
이렇듯 깝깝하지 않은 구속감도 있다는 게 자못 신기하기만 하다.
오늘도 딸내미 손안에 있소이다만 걸림이나 구애받음 없이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어서인가.
트루먼 버뱅크처럼 난 바다로 떠나진 않을 것이다.
청남빛 깊어가는 밤, 대신 창가 서성이며 하늘의 별들이나 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