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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길 걸으며 법환에서 보름모루로

27회 서귀포유채꽃 국제걷기대회

by 무량화


시청 2 청사에서 꽃나무 나눔 행사까지 겹쳐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고 신서귀포로 향했다.


오늘은 제27회를 맞는 '2025 서귀포 유채꽃 국제걷기대회'가 서귀포시 제주월드컵경기장 일원에서 열리는 날.


이 축제는 ‘동아시아 플라워 워킹리그’의 일환으로 서귀포시와 일본 구루메시, 중국 다롄시가 함께하는 '평화와 화합'을 위한 국제 행사다.


올해는 백인들이 눈에 띄더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워킹 동호인들도 단체로 대회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일요일인 내일 하루 더 행사가 진행된다.


5km, 10km, 20km 세 코스로 운영되며 사전 신청접수를 해둔 터였다.


아침해는 눈부셨고 하늘빛은 청명했으며 바람결 부드러웠다.


다만 대기질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봄비 내리던 예년에 비하면 아주 좋은 날씨였다.


그래서인지 월드컵경기장 광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음악소리가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현장에서는 페이스페인팅, 꽃카드와 책갈피 만들기, 유채종이모자 만들기, 인생네컷 등 다채로운 체험 부스마다 대기 줄이 길었다.


올해 처음으로 자치경찰의 협조로 기마대 이벤트가

기대를 모았으며 해마다 시선 집중시키는 유채꽃 샌드위치도 길게 테이블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다 함께 스트레칭 댄스로 몸풀기를 하는 한편에선 샌드위치 커팅식, 친구 몫까지 합해 두 쪽을 받았다.


열 시 정각 20km부터 출발했다.


원래 10코스를 신청했으나 5코스가 출발하도록 서쪽에서 오는 친구가 늦게 도착, 우린 뒤늦게 5km 걷는 팀에 합류했다.



월드컵경기장에서 서귀포버스터미널을 지나 월드컵로를 타고 곧장 직진, 최영로를 만나기 전부터 봄의 화신 유채꽃이 여기저기서 살랑거렸다.


두머니물에 만개한 유채밭에서는 기마대와 사진을 찍느라 사람들로 붐볐으며 버스킹 팀의 색소폰 선률은 파도타기를 했다.


법환해안도로에 접어들면서 짙푸른 바다와 범섬을 거느리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도중에 현무암 갯바위가 해안에 무수히 깔린 '배염 줄이'라는 곳을 지났다.

이 지역은 법환 마을에서 바다로 길게 뻗은 '여' 지대다.


여란 해저에서 솟아오른 바위 무리가 다수 깔린 지대를 이른다.

새카만 갯바위마다 새카만 가마우지 떼가 우두커니 목을 빼고 서있었다.

배염줄이 뜻은 배+염주처럼 연달아+줄+이어졌다는 뜻으로, 이곳에서부터 범섬까지 뗏목을 이어 길을 냈다고 한다.

왜?

반란군인 몽골족 목호를 토벌하기 위해서.

인근은 고려 말 최영 장군이 범섬으로 도주한 목호 잔당을 마지막으로 소탕한 격전지이다.

목호의 난은 1374년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의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여기서 대체 목호가 뭐지?


간략히 짚어보면 말을 키우는 몽골인, 즉 몽골 제국이 제주도에 설치한 목마장에서 일하던 몽골족들이다.

삼별초의 대몽항쟁이 진압된 이후, 원은 삼별초가 점거했던 제주에 '군민총관부'를 두고 100여 년 주인 노릇을 했다.

섬이라는 입지조건을 십분 활용, 원 왕실의 말을 탐라에 방목해 목장을 설치하였다.

그렇게 제주도에 들어와 현지 주민들과 섞여 살면서 말 기르는 기술을 전수하는가 하면 자식을 두기도 했다고.

하지만 세상은 변해 원나라는 지는 해, 새로이 개국한 명나라는 떠오르는 해였다.

명은 고려에 원을 치기 위한 제주마를 요구하자 이에 칸이 방목한 말을 내줄 수 없다며 목호들이 난을 일으키자 최영장군이 이를 진압했다.

배염줄이란 지명도 그 사건 이후 생긴 셈.



참으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수없이 겪은 섬 제주다.

오늘날은 관광 제주로 골골마다 여행객 넘쳐나긴 하는데.

이젠 어딜 가나 유채꽃 군데군데 무리 져 해풍 따라 무심히 나붓거리지만.

배염줄이 바로 옆은 잠녀문화마을이다.

실제로 법환은 제주에서 현역 해녀가 가장 많은 어촌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올레 7코스를 걸으며 이 마을을 지날 때 물질하는 해녀를 어렵잖이 만난다.

잠녀 곧 해녀를 직업적으로 양성하는 해녀학교가 있고 해녀체험센터도 자리했다.

바다 가까이 반원형의 해녀 마켓까지 근사하게 만들어놨다.

특히 바닷속 '여'는 썰물시 드러나는 갯바위로 바다 멀리까지 길게 벋어나간 현무암 길이 매우 이색 지다.

잠녀 횟집을 돌아 도로변으로 나가면 우뚝 솟은 화강암 비석과 마주치게 된다.

최영 장군 승전비다.

백여 년간 제주섬을 몽골에게 빼앗겼다 되찾게 된 기념비적 승전고를 울린 최영 장군이니 금 글씨로 새긴 들 어떨까만.

하긴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신 장군이시니.^^

이 근처에는 장군과 연관된 지명이 그 외에도 있다.

법환포구조차 전에는 막숙개로 불렸는데 목호를 소탕하고자 고려군이 막사를 쳤던 장소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성을 쌓은 흔적인 軍城(군자왓), 활쏘기 연습장인 射場앞, 병기를 만들었던 병듸왓, 군사를 조련시켰던 '오다리' 등등.

마을 전체가 군사기지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법환이다.

옛 역사야 강퍅했을지라도 어쨌든 승전보 울려 퍼진 자랑스러운 법환 아닌가.

지금은 아기자기한 소품샵과 카페, 펜션이 들어찬 거리를 조금만 지나면 잠녀 광장이 나선다.

쉼터 역할도 하는 테우 뗏목이 떡 놓여있고 해녀상과 물고기 조각상 알맞게 배치된 이 자리는 한라산 막히지 않는 훌륭한 전망터.

한라산 뿐인가.

동쪽 바다에 뜬 범섬 문섬 새섬 섶섬 조망권 또한 일품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법환포구라서 아! 대뜸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터.

바로 한반도 향해 달겨드는 거친 태풍을 맨 먼저 맞는 곳이라 태풍철 뉴스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법환포구다.

군막 친 자리에 있는 동가름물 서가름물은 각기 용천수인데 하나는 식용수 하나는 생활수로 사용했다고.

막숙개 뒤편에는 아담한 포구가 파란 물결 찰랑대고 있다.



근자 새로이 트인 길이라 정비가 완료되진 않았지만 한적한 새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공물깍이 기다린다.

지난여름에는 공물깍 용천수 찬물 콸콸 솟구치더니 오늘은 흔적조차 없어져 아쉽다.

언덕 오르면 마른 풀섶 새로 일랭이당 터라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여긴 법환 일출봉 격으로 제를 지내는 당도 있었던 모양.

높직한 위치라 해맞이 정자 하나 세움직 하다마는.

점점 선명해지는 서귀포층 벼랑과 새연교 문섬 섶섬.

멋진 오션뷰로 이름난 벙커 하우스를 기점으로 10킬로까지 걷는 팀들은 아랫길로 점점이 멀어졌다.


우리는 5킬로 완주 스탬프를 찍고는 원점으로 회귀한 다음 시장한 터라 점심 맛나게 먹었다.


귀가 후 샤워를 하자마자 피로감이 몰려와 간만에 낮잠을 푸지게 잤다.


일어나 보니 창밖이 어둑스레 해, 순간 아침인지 저녁인지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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