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팝꽃 새하얀 은진사

by 무량화


신라 옛터였던 영남 지방은 불심이 강한 지역이다.

불교문화유산 다수와 유서 깊은 명찰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 인근은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 특성상 어촌마다 해신당이 자리 잡았고 크고 작은 절도 많다.

거친 바다를 생활 터전 삼아야 했으니 그만큼 간절히 비손 할 일이 많은 까닭에서이리라.

은진사는 부산과 울산 경계에 자리 잡고 있는 조계종단 절이다.

부울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고속도로상에서도 거대한 금빛 불상부터 눈에 확 뜨이는 그런 절이다.

조용하고 호젓한 고찰을 선호하는 편이라 번쩍대는 불상이 별로 내키지 않아 처음엔 시큰둥했다.

그래도 무슨 절이냐고 물었더니 은진사라고 했다.

기족 이름이기도 해 그때부터 은근 정이 끌렸다.

충청도에 있는 은진미륵을 간다 간다 하며 못 가본 터라 꿩 대신 닭, 여기라도 한번 가봐야겠다 벼르던 차였다.



으름덩굴 새 순 오르는 해파랑길 따라 발길 자유로이 동으로 동으로 걸어갔다.

산티아고 걷고 또 걷던 그때처럼 한나절 넘도록 무진 걷다가 월내에 이르렀다.

휑하게 너른 삼거리에서 은진사 이정표를 따라 좌측 길로 틀었다.

꽃샘바람에 목련 꽃잎 날리는 봄날이었다.

식물원처럼 볼거리가 많아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어 절기 따라 찾는 이 많다는 절이라더니 입구부터 꽃들의 환대가 유달랐다.

오연한 매화 정겨운 살구꽃 귀여운 명자꽃 눈발 내리듯 새하얀 이팝꽃은 여러 봄꽃 중에서도 단연 압권으로 돋보였다.

자연친화 환경에서 가꾼 할미꽃 매발톱꽃 앵초 골담초 금낭화 등 야생화 반가웠으며 벚꽃나무 보리수나무 비파나무 라일락 단풍나무 등 화목 종류까지 합쳐 경내에 수백 종 식물을 갈무렸다.

비밀의 화원처럼 꽃에서 꽃으로 이어지는 언덕길 오르다 보니 산기슭에 진달래 수줍게 피어있었고.

맨 꼭대기 정좌하신 약사여래불 앞에 서면 멀리 동해가 푸르게 전개된다.

약사불 전에 배례하며 삼천대천 바다 닮은 너른 마음 내사, 지구촌 덮친 여러 괴이쩍은 사안들 잘 수습해 주시길 간구드렸다.

허위단심 올랐던 산길 되짚어 내려오는 길목에 선 동자승이 무거운 다리 잠시 쉬어가란다.

솔잎 깔고 앉아 둥글둥글 수더분한 그들 표정이 짓는 의미 찬찬히 곱씹어 본다.

듣고도 아니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할 말 있어도 입 가리고 침묵하라는 뜻이렷다.

귀 닫고 입 막고 눈 감고 석삼년 살아내노라면 부처가 된다지만 요샌 그러다간 불통 아니면 바보 소리 듣는다.

아, 이래저래 내사 묵언정진만은 아무래도 못하겠네. 숨통 막혀 그건 도저히 못하겠네. 생긴 대로 살겠네.

손가락 끝으로 톡톡 좌르륵, 쌓이고 고인 회포 자판에 맘껏 풀어헤쳐가며 매임 없이 걸림 없이 살아야겠네.

석탑에 휘감긴 은은한 이팝꽃 향에 더해 친근한 천리향 내음 주변에 배어들어 그윽하다.

뜬금없는 물레방아 폭포 아래 잉어 노니는 연못에 연꽃 가득 핀다는 여름 되면 다시 찾을까도 싶은 곳.

그러나 여기 역시 과유불급, 수도 없는 돌탑이며 여러 불상에 십이지신 석상들까지 빼곡히 들어차 숨 가쁘다.

심신의 안정감을 얻기 이전 주위가 너무 어수선해 오히려 산만한 느낌이 들 정도인 뭇 조경용품들.

고즈넉한 멋이나 여백의 미 간곳없는 이런 느낌은 인근 해동용궁사에서도 매한가지로 들었다.

중국인 관광객 북적대 마치 무슨 사업장 같던 용궁사에서 이십 년 전의 조촐한 용궁사를 그렸더랬는데...

물질주의에 편승, 무작정 마구마구 물적 자원을 쏟아부어 댄 물량작전에 지레 질려버린 현대인이다.

도시가 만들어낸 숱한 예각들과 소음에 부대끼느라 지쳐버린 영혼들을 위한 쉼터와는 거리가 먼, 외양 번쩍이는 사찰, 규모 거대한 교회, 모습 웅장한 성당, 위압적인 그런 데서 어떤 위안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지?

절 초입 안내판에 붙어있던 '절에는 왜 갈까요?’라는 게시글을 읽어봤다.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깨끗이 비우기 위해서’라는 첫 번째 답글이 정녕 맞는 걸까.

마음 비운다는 참의미를 알고 하는 소리인지....

그래도 힐링타임 되었던 것은 인적 적어 꽃향기 풍경소리 고요히 누릴 수 있어서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