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SNS상의 무책임한 과대포장, 호들갑, 허풍, 과장법 남발에 순진한 사람 자칫 속기 일쑤다.
정보를 제대로 걸러 취사선택 잘하거나 전화확인을 거치거나 아무튼 선택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바로 어제 헛물켠 얘기다.
이번 주 주말 서홍동 웃물교 일원에서 벚꽃 축제가 열린다기에 미리 가보기로 했다.
설마 한 두 송이라도 피었겠지, 바로 축제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까.
해서, 미리 현장 답사를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욕심이었던지도.
물어물어 변시지 그림공원에서 북쪽으로 난 둑방길을 따라 한참 걸어갔다.
인적 하나 없는 길가에 여리여리한 유채꽃만 성글게 한들거렸다.
때마침 비도 오락가락, 바바리코트를 입었더니 척척 감기는 데다 후덥지근 정도를 지나 땀이 다 났다.
그렇더라도 벚꽃을 만났다면 속없는 아이처럼 들뜬 채 반색해 마지않았으리라.
벚나무 줄지어 서있었으나 어느 한 그루도 꽃잎 펼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개화는커녕 쪼끄만 봉오리마다 야무치게 입 꼭 다문 채 묵묵부답.
꽃봉오리 발그레해지며 하마나 꽃잎 벙글 기색이 보일까, 고개 뒤로 젖히고 우듬지 올려다봐도 개화 낌새 보이는 나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은근 실망.
날씨에 따라 기온이 쑥 올라가면 팝콘 터지듯 화들짝 벚꽃잎 열릴 수도 있겠으나 어제도 오늘도 봄비 뿌옇게 내린다.
차를 타고 하릴없이 신시가지 빙 돌다가 대림아파트 앞에서 딱 한 그루, 만개한 벚꽃을 만나긴 했다.
만개 정도가 아니라 벚꽃 엔딩 가사처럼 하늘하늘 분분히 흩날리며 낙하하는 꽃잎들...
넌 돌연변이니? 아니면 나처럼 성격 무지 급하니?
그로부터 딱 한 주가 지났다.
서귀포 시내는 물론이고 중문, 가시리, 예래마을, 어디나 춘삼월 다이 봄꽃 흐드러졌다.
웃물교 벚꽃을 다시 보러 갔다.
지난번 애먼 벚나무에 짜증 부린 게 미안해서다.
개화 기척 전혀 없이 새침하던 벚나무들.
때가 차고 기온이 올라야지 낸들 어쩌겠어?.... 순서대로 차례 기다려야 하잖아?
말 못 하는 식물이기 망정이지, 애꿎은 화풀이에 전들 항변하고 싶지 않았으랴.
서홍동 깊은 품섶인 웃물 흐르는 골에 연연히 노랑 유채꽃, 싱그러운 초록 풀잎, 촌색시 같은 진분홍 복숭아꽃 어우러졌다.
고향의 봄 마칭밴드 합주 소리에 맞춰 저만치서 퍼레이드 하듯 다가서는 벚꽃 꽃구름 뭉게뭉게 피어나고.
웃물교 다리에서 바라보면 파스텔 톤으로 그려낸 고향이 거기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
그림만으로는 소박하고 정겨운 풍치이나 흐드러진 벚꽃 미색이 은근스럽다
연분홍 주아사 옷고름 사르르 풀렸구나, 했는데 아예 치맛단 훌훌 풀어헤친 채 살푼 돌아선 자태 농염하다.
굳이 유혹하지 않아도 벚꽃 구름 교태는 채털리 부인급이다.
S자 곡선으로 휘돌아 난 둑방길 따라 제법 나이테 굵은 벚나무 줄지어 서서 꿈길 같은 꽃길 펼쳤다.
구간은 짧은 편이나 꽃송이까지 실팍져 꽃구름 제법 운치가 있고.
주말에 벚꽃 축제는 끝났지만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 삼삼오오 꽃구경하며 오는 듯 가버리는 봄 풍경 사진에 담느라 즐겁다.
유아원생들 새처럼 재잘거리며 분분히 휘날리는 벚꽃잎 두 손으로 잡아본다고 분다이 뛰어다니고.
돌아오는 길, 서홍팔경 짚어나가다가 이스터를 앞둔 터라 면형의 집에 들렀다.
서귀포에서의 나날은 감사하게도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이 축제다.
오늘도 한나절 꽃길만 걸었으니까.
*2025년 윗물교 봄꽃 행사는 이번 주말로 잡혔다가 4월 첫주말로 변경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