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부터 비가 내렸다.
오전에는 봄비다이 고요히 젖어들던 비가 점심 무렵부터 빗발 거세졌다.
약속이 있어 좍좍 내리는 빗줄기 무릅쓰고 중문으로 향했다.
빗발은 점점 더 굵어졌다.
우레소리도 간간 섞여 들었다.
뒤숭숭하기 그지없는 인간사에 하늘이 노했나?
역대 최악의 재난인 산불이 심각하게 번지며 진화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기세 좋게 내리는 이 비가 산불지역에 내린다면 오죽 좋겠나만 의성 안동 등에 비소식이 안 들려 안타깝다.
도깨비불처럼 계속 확산돼가고 있는 공포스러운 산불, 도대체 세상이 왜 이렇대?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변화에 따른 총체적 위기의 공포가 피부로 느껴지던, 지난여름의 폭염과 겨울철의 폭설.
나이 든 우리야 살만큼 살았으니 괜찮으나 미래세대가 살아나갈 앞으로의 세상 모쪼록 우려스럽지 않기를,
약속장소 한 정거장 앞에서 미리 차를 내렸다.
중문에 이르자 해묵은 고목 줄지어 선 가로에 벚꽃이 뿌연 빗속에서 환히 피어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지난 신서귀포 가로 벚꽃도 비를 맞으며 푸슬푸슬 피기 시작은 하던데 중문에 이르니 거의 만개한 벚꽃.
중문보건소 근처 도로 양가에 선 벚꽃나무들마다 절정의 한철을 맞아 화양연화를 노래하고 있었다.
봄비는 씨앗 싹 틔우고 새잎 피어나게 하는 줄만 알았는데 벚꽃잎도 화들짝 깨어나게 하는 모양.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사진 몇 컷을 찍었다.
지역에 따라 개화시기도 이리 편차가 크다니, 그렇다면 주말엔 예래생태공원도 가볼 만할 듯.
대평동 들머리이자 상예마을 초입 삼거리 오른편 벚꽃길 역시 나이테 굵은 나무들이라 꽃잎 화사하게 피었을 거다.
시간 맞춰 약속장소에 가서 따끈한 점심 맛나게 먹고 차 한잔씩 나눈 다음 모임 자리는 파했다.
귀갓길에 삼매봉 지나면서 두루 살펴보니 보얗게 산벚꽃 피어났으며 목련 이파리 하늘하늘 지고 있었다.
예술의 전당 주변 벚꽃도 푸슬거리며 앞다퉈 몽오리 터트리기 시작했다.
잠깐 피어났다가 금세 지고 마는 봄꽃이라 그만큼 간절하면서도 소중하게 느껴지는가.
봄의 정수를 즐길 수 있는 꽃놀이 철은 고작 앞으로 한 주간 정도다.
봄꽃 대부분이 잠시 잠깐 피었다 지긴 하지만
벚꽃만큼 또 속절없이 단숨에 져버릴까.
절정의 순간은 찰나, 만개했구나 싶으면 어느새 눈발 날리듯 하르르 한꺼번에 낙화해 버리는 벚꽃.
오는 듯 가고 마는 봄.
더구나 올해는 아예 봄 옷 구매를 하지 말라고들 한다.
사월부터 곧장 여름으로 들어설 거라며.
옥수수 알갱이들이 적정 온도에서 팍팍 터지며
목화송이 같은 흰꽃 소담스레 피우듯이 그처럼 일제히 팝콘이 터지고 있다.
벚꽃도 저마다 standby!
나뭇가지 휘덮은 꽃송이 눈부시게 피어난 봄.
이번 비 그치고 하늘 푸르른 날, 구름 드리우듯 흐드러진 꽃그늘에서 벚꽃엔딩 노래하다 보면 화신은 점차 북상하리라.
바야흐로 지금 서귀포는 봄의 한가운데 들어섰다.
봄, 봄.
정녕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