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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1. 2024

산타바바라 미션-Queen of the Missions

캘리포니아 미션

내 마음의 정원으로 남아있는 산타바바라 미션을 찾은 것은 갑년을 맞은 해 여름이었다. 셋이서 옐로스톤을 다녀온 다음 "Queen of the Missions"이라 불리는 스페인 풍의 아름다운 수도원이 가까이 있다며 딸내미가 앞장섰다. 미 서해안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도시이자 로스엔젤리스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정도면 닿는 거리였다.


푸르름 일색인 동부 평원에서 산 나의 눈에야 안쓰러워 보이는 황무지 같은 땅. 엉성한 띠와 보잘것없는 잡목들. 사보덴이 듬성듬성 솟아난 그러나 햇빛 찬란히 쏟아지는 산야. 사막을 가꾸어 그래도 토마토며 딸기농사를 짓는 농장들을 스쳐 지났다.


저만치 따라오는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닷바람과 함께 다다른 산타바바라. 도시 전경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니 마치 유럽 어느 고즈넉한 고도이듯 이국적 정서가 가득 하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연녹색 잔디 위에 세워진 스페인풍의 하얀 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흰색 벽면의 위에 얹힌 주황색 지붕은 단정하고 깔끔했다. 수도원 가까이 트롤리버스가 오가고 정원 가득 핀 장미 향기 넘쳤으며 야자수 늘어선 가로 시원스러웠다.


수도원의 원경도 근경도 인근 배경도 모두 다 작품사진 같았다. 여왕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산타바바라미션은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품위가 있었다. 세라신부의 조각상이 맞아주는 입구 양 켠에 펼쳐진, 회벽 듬성듬성 떨어져 나간 회랑. 아치형 기둥이 죽 이어지며 형성된 기나긴 회랑이 눈길을 끌었다. 요새나  진지처럼 높게 쌓인 담벼락 너머, 고행승의 숨결이 배어있는 듯한 칸칸이 작은 방마다 손바닥만 한 봉창 하나씩 뚫려있어 왠지 애틋하게 느껴졌다.


선교사 Serra의 동상과 단순한 모양의 종. 이끼 두터운 위엄 어린 석조 분수대.

빛과 그늘이 교차되는 긴 회랑. 건물 중앙에 운치 있게 배치시킨 중원과 아담한 분수. 침침한 공간이 경건함을 더해주는 예배실. 아주 오래전 시간과 만날 수 있는 수도자들의 무덤. 건물 뒤편의 높직한 트윈 벨 타워. 뒷짐 진채 천천히 걷고 있는 수도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 같이 적요한 후원. 새파란 그저 새파랗기만 한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새하얀 산타바바라 미션.


지금도 선연히 떠오르는 그 정경들. 간수 소홀로 없어진 사진이 많지만 그 모든 것들은 고스란히 마음속의 사진첩에 남겨졌다. 생각사록 문득, 전생에 나 무슨 공덕 쌓아 이런 은총 누리는가 싶어 황감스럽기도 하던 그 순례길. 웬만한 고통쯤은 상쇄시킬 수가 있는 여행의 추억들, 한동안 그 시간의 기억은 각성제나 환각제처럼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 줄 것이다.


그랬다. 아름다운 곳곳의 영상들을 돌이켜보노라면 그때마다 저절로 번지는 화한 미소. 이처럼 행복한 기억의 힘을 진작부터 나는 믿어왔다. 내 마음의 정원으로 자리한 산타 바바라 미션뿐 아니라 여타 여행길을 반추하다 보면 그 여운에 젖어 한 일 년여를 행복에 잠겨 지낼 수 있을 터. 꽃향기로 번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떠올리노라면 어지럽던 마음 잔잔히 가라앉는다. 소용돌이치며 일구는 파문 잦아들게 된다. 그윽한 평화 이윽고 깃든다.


80년 초 전국 산을 누비며 또는 다산초당과 보길도 등 남도 여행을 통해 일찍이 맞은 사추기의 나를 추스를 수 있었고 재충전시켜 주었듯이. 92년 여름에 가졌던 유럽 배낭여행은 여러가지로 힘들었던 나의 중년기를 밀고 나가는 힘이 되었다. 2천 년대, 가로 늦게 그것도 나이 들어 생전 안 하던 노동일에 시달리면서 심신 피폐해진 미국살이 그 곤고함을 잊게 해 준 대륙의 장엄 설산과 빙하. 한국 방문길에 들른 앙코르와트 석벽들도 그간의 노고 단번에 상쇄시켜 주었다.



이 미션 순례 시간들을 반추하다 보면 아마도 한 일 년여 나는 충분히 행복감에 잠길 수 있으리라. 특히 산타바바라 미션의 여운, 내 마음의 정원으로 자리한 그곳이 아닌가. 꽃향기로 번지는 아름다운 풍경들 떠올리노라면 어지럽던 마음 잔잔히 다스려져 평화가 깃든게 된다. 소용돌이치며 일구는 파문들 잦아들고 만다.


마음, 영혼, 정신을 위로하고 다독이고 정화시키고 치유케 하는 그 힘. 마음, 영혼,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 그 자리의 명칭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정신인 것도 같고 영혼인 듯도 싶고... 오즈의 마법사에서 양철 나무꾼은 마음을 찾기 위해 심장을 원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한 대로 심장, 하트가 마음인가. 현대과학에서는 그것을 뇌에 연결 짓는다. 마음의 움직임이 100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의 신경활동일 따름이라면 종교적 체험은 무엇으로 설명되며 아름다운 대상으로 해서 느끼는 이 행복감은? 아무렴 어떠랴, 모르는 그대로도 나는 지금 행복하다.

산타바바라 미션의 주춧돌이 놓인 해는 1786년이니 200년도 넘은 건물이다. 미서부에 도착한 유럽인의 첫 정착지였던 곳의 해안을 따라 21개의 미션이 줄줄이 구슬처럼 이어져 있는데 그중

캘리포니아에 열 번째로 만들어진 미션이다.

당시 조선은 천주교 금지령이 내린 해이자 추사 김정희가 태어난 해, 미국은 독립 10주년을 맞는 해였다.


Mission Santa Barbara는 원주민에게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그해 12월 4일, 세인트 바바라 (Saint Barbara) 축제일에 Fermin Lasuen에 의해 세워졌다. 초기 기독교시대 로마교회에서 영감을 받아 거기에 스페인 풍을 가미해 건축했다는 미션 산타바바라는 1812년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1820년 다시 복구하였으나 1925년 지진으로 다시 무너져 내린 것을 2년 만에 복원, 현재에 이르렀다.


첫눈에 든 것은 마당의 커다란 분수대와 왕의 길이란 표지판을 명찰처럼 매단, 미션을 상징하는 양치기 용 지팡이에 달린 무쇠 종이었다. 십자가와 저 종을 지심 깊이 박아두려고 초창기 수도사들은 이 땅에 피와 땀을 얼마나 쏟아부었을까.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바라고 소망하지 않았다면, 그 꿈이 아니었다면 과연  한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망망대해 건너 미지의 땅으로 올 수가 있었을까.


훗날 역사가들은 그들의 순결한 종교적 열망을 정복자 앞잡이로 치부하며 더러 폄훼하기도 한다. 사실, 역사가 증명하는 부정적인 면도 많긴 하다. 황사영 백서사건이라든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당한 의궤 문제만 해도 종교가 연루되어 있듯이..


역사관에 따라서 혹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같은 사건을 놓고도 각기 다른 평가가 나오기 마련. 나아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니 패자 측면에서 볼 때 부당하고 억울하고 기막힌 경우도 흔할 터다.


그처럼 미션이라는 선교 전진기지로 포장시킨 진지 구축, 즉 국가가 식민지 확대를 위한 술책의 일환으로 수도자를 이용한 것인지 속내막은 모르겠다. 아무튼 처음 그들은 말도 안 통하는 토착 원주민들에게 전교는 물론이고 산과 들로 나돌며 떠돌이로 살던 생활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은 맞다. 그것이 원주민의 생리에 맞지 않았다 할지라도 최소한 농사지으며 안정되이 정착하여 모둠살이를 하게 만든 공은 공이고 가려진 과 역시 숱하긴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선교사들은 보리 콩 옥수수 등 각종 작물의 재배법을 가르쳤다. 오렌지 올리브 포도나무 가꾸는 법을 배우게 하였으며 소 양 염소 말 등 가축을 기르게 하였다. 직조 목공 요업 기술 등을 보급하여 문명생활에 접근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뒷산인 산타 이네스에 있는 개울물을 끌어다 쓰는 관개법 기술을 전수시켰다는 것. 지치도록 일을 하는 틈틈 여가에는 음악을 가르치는 등, 문화생활의 맛을 느끼게도 하였고... 자의든 타의든, 원하는 일이든 아니든 간에 원주민은 그렇게 문명화되어 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정신적 지주인 신앙 문제, 기존의 토속신앙을 말살시켰을 테니 기독교 전파가 꼭 바른 일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하늘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 하나 깃대 삼아 온 그들. 아무튼 문명을 전해준 선한 의도 그 이면에는 자원 수탈, 노동력 착취등으로 스페인 왕국의 번영에 한몫 거들려는 야욕의 검은 술수가 가려져 있음은 결코 부정치는 못할 . 미션은 그럼에도 다양한 캘리포니아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기념비적 존재가 되었으니...


우중충하나 그저 무릎 꿇고 싶게 만드는 경건한 예배당을 비롯해 바다밑처럼 적요히 가라앉은 너른 납골당에는 이름과 생몰 연대를 새긴 대리석 석판이 즐비하다. 1700년대 1800년대를 살았다는 표지가 주로 눈에 띈다. 숙연해지는 순간이다.


선교단과 인디언의 당연히 수준 다른 유물 전시실을 돌아보고 이어서 정원에 들어서자 ㅁ자형 건물 안에 배치시킨 중원의 고풍스런 분위기가 그윽하니 멋스럽다. 키다리 야자수와 당당한 선인장, 새빨간 달리아와 청초한 치자꽃이 어우러진 화단. 세미트리인 듯 너른 후원엔 십자가가 열을 지어 서있고 이름 모를 거목들이 우거졌다.


상시 무성한 나뭇그늘에 묻혀있어서인지 목덜미에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싶은 거기에 뜻밖에도 상사화가 피어있었다. 아~상사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던가. 잎과 꽃이 평생 만나지 못해서 서로 그리워하는... 슬픈 연인과 같은 상사화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200년이란 세월 저편, 아주 오래전 세상을 떠난 수사들의 무덤이 있는 미션의 후원에 핀 상사화다.


인연설이 문득 떠오르는, 내게 유별하셨던 외숙모가 생각나 그 언저리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그처럼 이 꽃은 자귀나무꽃과 함께 내 유년의 추억이 서리서리 어린 꽃이다. 여름이면 장이 달아가는 장독대 양옆에서 늘씬한 꽃대 쭉쭉 뻗어가며 무리 져 피어나던 살구색꽃. 새봄에 올라온 무성한 푸른 잎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난 그 자리에 돋아나던 꽃대궁마다 나리꽃처럼 몇 송이가 한꺼번에 갸웃 고개를 들며 미소 짓던 그 여름의 오후가 생각난다.


아.... 그 옛날의 상사화. 그리움처럼 너무 먼 잎과 꽃의 사이, 그보다 더 먼 시간의 거리.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그 앞에서 서성거리며 쉬 떠나지 못했다. 그만 가자는 재촉소리에 마지못해 느릿느릿 후원을 돌아 나왔다. 다시금 올려다본 수도원은 파란 하늘 아래 자태 더욱 오연하다. 로마에서 본 듯, 이탈리아에서 본 듯 낯익으면서도 낯선 직선과 곡선이 절묘하게 조응하는 수도원이다.


상사화 / 김영천


세상의 모든 풀꽃들이


다 이루는 일을


그 하찮은 일을



애기똥풀꽃이나 쇠비름이나


구절초,


며느리밥풀꽃.


개망초까지 다 하는 일을



아-아, 그리움처럼


너무





잎과 꽃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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