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Apr 21. 2024

나무 종이 있는 미션-샌 부에나벤츄라 미션

캘리포니아 미션

뉴저지 이웃인 부에나벤츄라는 한국에서 S대를 마친 생명공학박사로 흔하지 않은 세례명을 가진 교우였다.

제퍼슨 병원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영주권 취득은 겨우 했지만 더 이상 근무 연장이 되지 않았다.

미 체류에 대한 고민 끝에 두 아들 장래를 위해 귀국을 접고 50대 중반에 한의대로 진학을 했다.

전직 음악 교사였던 아내라 피아노 교습으로 생활을 꾸려가면서 부부는 한동안 떨어져 지내며 말 못 할 고생을 해야 했다.

몇 년 후 자격을 취득, 올드타운에 아담한 한방 클리닉을 여는 날 모든 교우들이 찾아가 축하를 했었다.

나이 지긋한 데다 원래 학자 타입인 덕인지 이젠 번듯하게 자리 잡고 성업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의사 세례명으로 루카가 선택되듯 영세받을 때 세례명을 부에나벤츄라로 정하는 경우 학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 많다.



LA에서 북쪽으로 약 120마일 떨어진 해변도시이자 농업도시인 벤츄라에 있는 미션을 찾아가면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작은 체구이지만 언제 봐도 과묵하고 점잖던 부에나벤츄라, 우리가 통상 보나벤뚜라라 불렀던 한의사.    

이곳 미션 샌 부에나벤츄라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쌍벽을 이룬 부에나벤츄라를 기린 미션이다.

13세기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성인은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되어 파리대학교에서 신학과 성서를 가르치는 교회학자였다.

중세 스칼라 신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부에나벤츄라(Saint Bonaventure) 성인의 이름은 이태리 어로 행운을 뜻한다고.

높은 학식과 성덕을 지닌 성인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전기'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하여' 등 수많은 영성서적을 썼다.

하느님께 가는 영혼의 여정, 마지막 시대의 환난, 세 갈래 길, 성서 주석을 비롯 약 오 백 편에 달하는 설교를 글로 남겼다.

부에나벤츄라 성인의 상징물은 성체와 성합 그리고 책이다.





알타 캘리포니아의 아홉 번째 미션인 샌 부에나벤츄라(Mission San Buenaventura) 미션.

1778년 부활절에 세라 신부가 생애 마지막으로 축성한 미션이다.

건물 완공은 건축에 조예가 깊은 베드로 베니또 캄보 신부가 마쳤는데, 미션 출입구 건물 전면에 그는 전신 부조로 남아있다.

미션 샌 부에나벤츄라는 다른 미션과 같이 군사적 요충지도 아니었고 거대한 목장이나 농장을 일군 것도 아니었다.

타 미션처럼 부흥기를 거치지 않은, 이를테면 캘리포니아 왕의 길을 따라 말 타고 하루걸이 위치에 세워진 미션 중 하나인 셈이다.

화재, 지진, 해일 등 수난이 그치지 않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큰 무리 없이 역할을 수행해 오던 샌 부에나벤츄라 미션.

어린이 교육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원주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임무를 펴나갔던 미션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자 1834년 세속화법에 따라 신부들의 미션 관리권을 정부가 박탈했다.

21개 올드 미션마다 겪어야 했던 격변기의 혼란이 이곳에도 당연히 불어닥쳤다.

미션이 해체되며 선교사들은 떠나고 빈 공간으로 남게 된 미션은 헐값의 임대지에서 1845년에는 개인에게 매각됐다.

멕시코와의 전쟁에 승리한 미국이 캘리포니아를 접수하며 1862년 링컨에 의해 다행히 원위치, 가톨릭으로 미션이 환원되었다.

모든 미션 역사가 그러하듯 벤추라 역시 이 미션을 출발점으로 시작돼 한 도시의 정신적 중심으로 자리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메인 스트리트 상에 거리를 두고 나란히 위치한 시청사 건물 앞 한복판에도 세라 신부 동상이 서있다.

캘리포니아 미션의 상징인 양치기 종과 함께 우뚝 서서 지금도 저 멀리 태평양을 바라본다.

역사는 각각의 관점에 따라 나름대로 해석되고 수용되기 마련이다.

몇 년 전 세라 신부가 시성 됨을 반대하던 아메리카 원주민 데모대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자 반열에 올랐다.

하늘로부터 부여된 자신의 임무에 충실, 전 생애를 하늘 제단에 바친 사제였기 때문이다.

☆☆☆☆☆☆☆*****

그 옛적 태평양을 오갈 배의 돛대로 사용하려 심었다는 스타 파인 트리 두 그루가 미션의 수호신인 양 청청히 솟아있다.

부에나벤추라 성인이 전면 제단 중앙 벽에 그려진 단정하고 조촐한 성당 내부는 폭이 좁고 기다랗다.

1782년에 설립된 미션 샌 보나벤뚜라는 랜드마크 130호로 지정되었다.

멀리서 끌어온 수로를 따라 흘러온 강물을 이용해 세탁을 하던 공동 빨래터 라벤데리아(lavanderia)가 분수대 바로 옆에 있었다.

사제관 뒤 학교명이 십자가 스쿨인 가톨릭 부속학교 건물 한켠이 보이는데 이 미션이 주력한 부분도 교육이었다.

보통 종은 무쇠나 청동으로 주조하나 그와 달리 이곳에만 있는 특별한 나무종 이젠 삭고 삭아 버석거리는데 이 나무종도 목탁 같은 울림을 주는 맑은 소리를 냈을까.

분수대와 고운 기화요초가 조화로이 어우러진 후원.

박물관 내에 보관된 당시 성작과 성반 / 정원에서 올려다본 미션 측면 / 당시 의식에 사용되던 향로

설립 초창기에 사용한 고해소 문 조각 / 올리브기름 짜는 틀 / 성당 내부 천정은 옛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선교사들이 추마시 원주민들과 모둠생활을 하던 미션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던 해시계.

올리브기름을 짜는 방아틀이 미션 측면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오랜 세월 손때로 길들어 반들거리는 작은 종, 댕댕거리던 종소리는 선교사와 추마시 모두에게 평화로웠을까.

처음 미션은 1829년 화재로 소실됐으나 당시 벽화 그림 조각이 일부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사제 예복에 동양자수 풍으로 수 놓인 장미와 나비가 정밀 섬세하다.

벤추라 시청사 정문 앞에 선 세라 신부 동상과 왕의 길(EL Camino Rea)을 인도하는 양치기용 지팡이와 종.

벤추라강에서 7마일 수로를 연결해 미션에 충분한 물을 공급했으며 그때 만든 수로는 캘리포니아 주정부 유적지로 관리된다.

미션 바로 건너편 공원에는 나이 든 거목에 꽃이 소담히 피었다, 마치 세라 신부가 남긴 선물처럼.



주소: 211 E Main St, Ventura, CA 93001




작가의 이전글 카미노 들길 꽃 되었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