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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0. 2024

카미노 들길 꽃 되었으면

카미노 스토리

카미노 들길에서는 누구라도 바람결 되고 푸르름 되고 송이송이 꽃이 되어야 하리.

그랬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길을 걷노라면 굳이 작정하지 않아도 절로 그리됐다.

애오라지 자신과 순수히 대면하는 길이 카미노 길이니까.

심신이 맑아지면 자연과 투명히 조응하게 되니까.

영혼이 자유로워지면 어디에도 걸림이나 매임이 없어지니까.

그 길에 오르는 순간부터 관심사는 세상적인 것에서 훌쩍 벗어나니까.

불평불만 대신 매사 긍정적이 될만치 오감이 순해지고 선해지고 착해지니까.


초반 여로에 만난 꽃은 초록색 유화물감 짓이긴 밀밭 옆에 너르게 자리 잡고는 벌판 가득 핀 노란색 유채꽃이었다.

들판을 캔버스 삼은 초대형 작품은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그림보다 더 선연했다.

초록과 노랑의 보색대비는 그 얼마나 산뜻한가, 게다가 종달이 노래 곁들여져 한층 더 신선미를 보탰다.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대륙은 환경조건이 달라 동식물도 색다를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전혀 다른 몇몇, 이를테면 캥거루나 코알라 같은 특수종 빼고는 어디나 비슷한 동식물이 서식, 다만 크기가 좀 다른 정도였다.

미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까치를 스페인에서 만났을 때 무척 반가웠으며 매미, 개구리 역시 와우~환호하게 만들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흔한 인동초며 찔레가 길섶에 제멋대로 덩굴 거침없이 벋어나갔다.

그 위로 벌떼 잉잉거려 여기가 어디지? 미국이야? 한국이야? 서있는 위치에 잠깐 혼돈이 일기도 했다.


뒤이어 만난 꽃은 고혹적인 양귀비꽃, 캘리포니아 파피의 황금빛이 아니라 명료한 진홍색 양귀비였다.

완두콩밭이나 보리밭 이랑에 점점이 섞여 피어난 양귀비꽃.

주연은커녕 잘못 끼어든 이물질로 어쩌다 섞여 들었건만 빼어난 자태와 색으로 주변을 압도해 버리던 양귀비.

들꽃 향연이 펼쳐진 프랑스 전원을 묘사한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가 그 풍경에 겹쳐졌다.

용서의 언덕을 오르는 산길에서는 꽃도 처음 보는 데다 향도 처음 느껴보는 특별한 그러나 지꺼분한 야생화를 만났다.

키가 낮아 땅에 포복하다시피 엎드려 피어난 자잘한 보랏빛 꽃은 향신료로 쓰인다는데 이름을 잊었다. 도미뇨라 했던가?


중반 여정은 캘리포니아 풍토와 흡사한 황막한 길이 이어지는 데다 식물 분포도 또한 엇비슷해 캘리포니아로 착각될 정도였다.

척박한 황무지에서 자생하는,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소속 미상의 식물은 유칼립투스 아래서 샛노란 꽃 흐드러지게 피었다.

신기하게도 디기달리스꽃은 들길에서나 마을길에서나 하다못해 성터 돌 틈 여기저기서 무척 자주 나타났다.

강장제로 쓰이는 약초이자 독초인 키다리 디기달리스는 통꽃이 원줄기에 조롱조롱 매달려서 연달아 봉오리를 여는 화려한 꽃.

딸랑거리는 종소리라도 들릴듯한 꽃 모양에 분홍과 적보라 계열로 화사하게 피는 무척 아름다운 꽃이라 뭇시선을 사로잡았다.

거의가 바위벽이나 지붕 틈새에 뿌리내려 군락 하는 고생대 식물 닮은 풀이야말로 진화가 덜 된 듯 퍽 이색 졌다.

쇠뜨기처럼 생긴 줄기에 연미색 화석 같은 꽃을 매단 작고 여린 그 식물은 도통 이름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길가 인근 풀밭 어디나 바닥에 바짝 붙어 핀 꽃도 이 지역 토생식물인 듯 처음 본다.

소금 뿌려놓은 양 하얗게 깔려있는 꽃은 토끼풀인가 싶어 들여다보곤 했는데 망초꽃을 닮은 이 역시 낯선 식물이었다.

안개 잦은 시골길을 걷노라면 묵정밭마다 자잘한 들꽃 무리가 양탄자처럼 질펀히 펼쳐져 있었다.

향방도 모르는 어디선가 한유로운 뻐꾸기 소리, 먼 농가에선 나른히 뽑아내는 수탉소리 유독 정겨웠다.


여정 후반부, 농업과 축산업에 생활기반을 둔 소박한 갈리시아 지방으로 접어들어서부터다.

부락 어귀에서 맞아주는 멍이, 양지쪽에 길게 누운 냥이, 푸르른 초원의 소며 양이며 말 등 동물농장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이리라, 향수의 노랫말처럼 '얼룩빼기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우는' 촌동네 고샅길마다 외가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구유통 여물이 위장으로 넘어가 몇 차례 숙성되고 푹 삭아 완전히 소화된 여분의 찌끄러기가 풍기는 냄새로 쿰쿰했으니까.

뜨물에 풋감 우리는 냄새 혹은 잘 익은 오이지 항아리를 열었을 때 나는 냄새가 골목마다 짙게 배어있었다.

그 내음이 유년의 외가 기억을 소환해 냈기에 나름 은근 즐긴 분위기였다.

새벽이면 시큼털털한 그 내음이 밤새 내린 이슬에 순화돼 식욕마저 자극했으니 갈데없는 천상 촌사람 맞긴 맞다.

쇠똥내를 보상해 주려는 듯 조림수 유칼립투수 나무 밀밀한 산길에선 상큼하고 청량한 향기로 샤워를 시켜줬고.

그 외에도 남해바다 포구마을에서 노오라니 익어가는 유자를 떠올리게 하는, 집집마다의 레몬트리가 침샘을 자극했다.

비교적 비가 잦고 습도가 높은 지역이라서인지 개울가 늪지에 무성한 미나리아재비 노랑꽃 윤기로이 만발해 있었다.

습습한 기후조건이라 미국 고사리 못잖게 대궁 굵은 연한 고사리가 막 잎을 펴는 중이었고.

산기슭이 온통 고사리 밭인 걸 보니 이 소문 퍼지면 극성 한국 부인네들 고사리 꺾으러 몰려오지 않겠나 싶었다.


농가와 자연 구분이 없는 마을이라서인지 화분이나 정원에 심는 칼라꽃, 아이리스, 마아가렛꽃이 온데 사방에 널렸다.

일부러 가꾸지 않아도 그곳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새하얀 혹은 진보라색 청초하던 그 꽃들.

흔할 뿐만 아니라 어찌나 생명력 왕성한지 무더기진 꽃은 물론이고 커다란 이파리도 엄청 싱그러웠다.

야생화들을 보며 문득, 일월 흘러 흘러 나 여기 작은 들꽃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카미노 길손 누군가의 지친 발길에 작은 위로를 주는 그런 들꽃으로.


고단한 표정에 살푼 미소 떠올라 생기 돋아나게 하는 그런 야생화로.

외람되이 감히, 내 무슨 공덕으로 꽃이 되길 바라리오.


아직도 더 많이 깎아내고 비워야 할 내 안의 이 미망을 어이할 거나... 아직도 한참 멀었다, 나는.

여로의 종점인 땅끝마을 피스테라,


망망대해 대서양과 대치한 산비탈 박토에서도 마아가렛은 꼿꼿한 대궁 곧추세운 채 흰 꽃잎 건강히 피워냈다.

강한 해풍 견뎌내는 마아가렛 모습은 난세를 이겨낸 여왕같은 의연스러움으로 오래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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