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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0. 2024

독백 중인 남자 그리고 블로깅

카미노 스토리


알베르게 침상에 걸터앉아 고개 숙인 채 노트에 무언가를 골똘히 쓰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 그러면서 한참씩 허공을 응시하기도 한다. 오후녘 넘어가는 햇살을 창문 통해 정면으로 받은 블론드 긴 머리칼이 후광 두른 성화처럼 빛난다. 속단이나 넘겨짚기가 아니라 그는,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순례객들이 그러하듯 그날 하루치 여정을 정리하며 '단상'을 적어나가고 있을 게 뻔하다. 이렇듯 글로 쓸 내용이란 게 거의 다 비슷할 수밖에 없는 카미노 친구들이다. 일지 외에는 요즘 세월에 편지 쓸 일도 없는 데다 돈 씀씀이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굳이 지출 내역 적을 필요도 없다.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약간의 정도 차이지 누구를 막론하고 기억이란 점차 흐려지며 오락가락하게 마련. 적어두지 않는 이상 반짝 스친 상념은 시간이 경과되면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만다. 생각 자체가 가뭇없이 사라지며 잊혀지거나 가물가물해져 잘 기억나질 않게 되는 것. 해서 우리는 습관처럼 메모를 해둔다. 머릿속에서 일어난 잡다한 느낌이나 감정의 파편들 흔적 없이 스러지기 전에 글로 잡아두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릴 상념들이 고스란히 저장된다. 기록을 남기건, 일지를 작성하건, 잡문을 쓰건, 쓴다는 행위는 별다른 도구 없이도 할 수 있는 기억 저장고 만들기이며 자기표현 수단의 하나이자 나아가 자기 정리하기가 되겠다.



글을 쓴다는 건 혼자서 하는 말, 이를테면 독백인 셈이다. 고해성사실에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며 내 마음에 해우소 하나 마련해 두는 일이다. 자신과 마주해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진면목을 드러내 보이는 글쓰기.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홀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 진솔한 속내 쏟아놓는 행위가 첫 단계 글쓰기이다. 그러나 정리되지 않은 기록은 어수선히 엉켜있는 명주실 꾸러미 같다. 이걸 가지런히 다듬어 체계적으로 질서 있게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기록은 가닥 잡힌 글로 재탄생된다. 계속 써보되 글에 욕심내지 말고 가급적 담담히 그리고 쉽게, 주제도 거창한 내용보다 평범함 속의 비범을. 나부터 여전히 유념해야 할 조언 하나, 미켈란젤로가 '아름다운 것이란 모든 과잉을 제거한 것'이라고 한 말 새겨둘 점이다.​



흔히들 말은 청산유수인데 그 말솜씨가 글로는 연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글 따로, 말 따로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린다. 글쓰기가 너무 힘들다느니 글과는 인연이 없다느니 하며 돌아앉아버리기 일쑤다. 밑져봐야 본전, 일단 한번 시도해 보자. 방금 전에 누군가와 나눈 대화체를 그대로 글로 옮겨보라. 머릿속 비좁게 헤엄치는 생각 한 가닥 이끌어내 차근차근 적어보라.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그게 바로 글이 되는 것. 마찬가지로 블로깅 절대로 대단한 게 아니다. 독백 수준에서 한걸음 나가 소소한 일상을 소셜 미디어에 풀어놓는 일이다. 피할 건 피하고 알릴 건 알린다는 PR이 아닌, 진솔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배치해 알맞게 편집해 주면 끝. 그래서인지 나의 포스팅 또는 글쓰기는 예나 이제나 뼈를 깎는 고통이 아니라 제 신명에 취한 즐거운 놀이. 이곳에도 뛰어난 글쟁이들 무수하다. 브런치에서는 사진 음악은 없어도 되는 액세서리, 내용만 알차고 재미있으면 그 외는 사족에 불과하다.



사람살이 천차만별이라지만 따지고 보면 앞앞이 사연 다르다 뿐 인생 오십보백보다. 한 겹 포장만 풀거나 화장 지운 민낯을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이쯤 살아보니 누구도 부러워할 거 없더라,에 도달하며 해탈인 되는 것을. 이는 절로 터득되는 진리 아니던가. 거기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글쓰기를 통해 자기를 찾아가는 내밀한 심리 여행을 해나간다. 내면에서 격랑 치는 뭇 사념들을 글로 표현해 보는 것. 그 과정에서 자연 해소되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들. 그처럼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통해 심신 공히 힐링이 된다. 굳게 걸어 잠갔던 감정의 수문 열어 마음껏 방류시킴으로써 맛보는 해방감은 행복 중의 행복. 감정은 말로 쏟아놓으면 자칫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그러나 글로 표현하는 동안 감정이 여과되고 객관화가 이루어져 실체가 명확히 잡히므로 보다 이성적이 될 수 있다. 바른 오성으로 나 여기 아직 건재하고 있음을 고지하는 존재 증명이기도 한 글. 혼탁해진 영혼을 맑혀주는 정화제이며 부족한 우리를 지혜롭게 만드는 영약이자 좋은 의사이기도 한 글쓰기다.

 

내게 있어 글쓰기나 블로깅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도 각고의 아픔도 아닌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향락에 속한다. 블로깅 역시 재미진 놀이다. 방문자 수치나 공감이며 댓글에도 별반 매이지 않는다. 그냥 자유롭게 즐기는 놀이터인 까닭이다. 만일 포스팅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진다면 애진작에 덮었을 텐데 20여 년을 계속해온 걸 보면 즐거운 놀이라서 그러하리라. 마찬가지로 글을 쓴다는 그 자체가 좋고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속에서 터져 나오고 싶어 하는 말들을 방생해 주는 행위에 다름 아닌 글쓰기. 쉽게 말해 그저 즐기면서 하는 수다 떨기로 글을 만난 덕택에 나는 행복했다. 그런 글쓰기는 뇌를 끊임없이 자극해서 뇌의 전두엽을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면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정서장애가 나타나는데 글쓰기는 이를 예방해 준다고 한다. 글쓰기를 통해 심신 건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니 백세시대를 대비, 이보다 더 바람직한 건강관리법이 또 있을지. 글쓰기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자기 배려로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겠다.



문재(文才)는 타고나는 것, 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고들 한다. 하지만 글쓰기가 작가들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애진작에 지나갔다. 일상이 되다시피 무시로 날리는 SNS의 문자 메시지, 블로그나 카페에 오르는 수많은 댓글 덧글들은 문자 그대로 다 글이다. 전과 달리 자기 의사를 개진할 수 있도록 열린 광장이 신문, 잡지, 인터넷 매체 어디에나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문학 쪽에 흥미와 관심만 있다면 누구라도 글쟁이가 될 수 있는 여건이다. 본격문학을 염두에 두었다면 모를까 꼭 등단 작가로 나설 필요까지도 없다. 자신의 삶을 가지런히 정돈해 보는 자체만으로도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므로. 글 한편 흡족하게 마무리된 순간 느끼는 충만감은 거의 엑스터시에 가까운 경험. 이에 맛들여 무언가 쓰기에 몰두해 있는 금발의 저 남자도 아마 지금 그 기분에 빠져있지 않을까. 언어가 통하고 잘 아는 사이라면 블로깅도 해보라 오지랖 떨고 싶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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