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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 뜯으러 가다가 덤으로 중문 벚꽃구경

by 무량화


봄철이면 촌스런 사람답게 쑥개떡을 만들어 먹곤 한다.


한참 전 중문 구석구석 훑다가 눈여겨봐 두었던 별내린전망대로 향했다. 쑥을 뜯기 위해서였다.


시장에 가면 쑥이 흔해빠진 데다 쑥 무더기 한층 수북해졌다.

초봄 보얀 솜털에 싸여 조그맣던 쑥이 이젠 꺾어도 될 만큼 탐스러이 자랐으니 그럴 만도 하다.

파는 쑥은 어디서 뜯어온 건지 몰라 그런 쑥은 사고 싶지 않았는데, 이는 차량 빈번히 다니는 큰 길가에서 쑥 뜯는 걸 목도해서다.

먼지가 많은 도로변은 곤란한 것이 특히나 커브 혹은 경사진 길이라면 브레이크 패널인 라이닝이 마모되며 나오는 유해 물질인 석면가루가 문제.

푼돈 벌겠다고 성치 않은 관절 무릅쓰고 뜯어온, 나물 파는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봄 향기 음미하려다 외려 독소 쌓일 수 있으니.

해서 직접 정갈한 장소 찾아 쑥을 뜯어다 쑥개떡을 만들기로 한 것.



중문에 들어서니 온데 벚꽃 잔치가 벌어졌다.


푹한 날씨에다 촉촉이 봄비 내리자 일제히 튀밥 터지듯 벙근 꽃망울들.


바로 전날도 다녀왔지만 비 엄청 내리는 날의 꽃구경은 극히 제한적일 밖에.


어제는 대기 화창하진 않아도 푸른 하늘이 받쳐주는 일기라 서슴없이 차에서 내렸다.


멀리 봄꽃 나들이 갈 필요도 없이 바로 도심 한복판 가로에서 벚꽃 구경 맘껏 했다.


바람이 아주 심하게 불었다.


광풍에 못 이겨 후드끼듯 벚꽃 잎 난분분, 난분분.


꽃송이째 통채로 떨어지거나 휘날리던 꽃잎 상하기 일쑤였다.


벌써 눈처럼 꽃잎 흩날리고 있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활짝 펴 이쁜 꽃도 열흘 못 감은 자연의 철리다.

이에 꼭 짝지어 따라다니는 말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영원할 것만 같이 기세등등하던 절대 권력도 반드시 권좌에서 내려서는 날 온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건, 산의 최정상에 서건, 언젠가는 결국 내려올 일만 기다리는 셈이다.

하늘 아래 변치 않는 일이 있으니 화려하게 한번 흥성기를 누리면 곧이어 쇠하기 마련.


그럼에도 절정기가 마냥 이어질 듯 권력에 취해 기고만장했다가는 어찌 되는지 뭇 역사가 증명한다.

하여 이 고사성어는 동서고금을 통해 변함없는 진리다.



별내린 전망대는 색달해변 못 미쳐 중문관광단지 호텔 밀집지역에 있다.


'별 내린’보다는 ‘베릿내’로 현지인들에게 알려져 있는데 ‘별이 내리는 냇가’란 뜻이다.


천제연 삼단폭포 중 첫 번째는 많은 비가 내려야 볼 수 있듯, 제주 하천의 특성대로 건천이 대부분이나 중문천은 용천수가 곳곳에서 솟아 물길 이어진다.


그래서 밤하늘 맑은 날에는 계곡물 위에 떠 있는 달과 별을 만날 수 있다고.


예전 지명은 성천포(星川浦), 백록담에서 발원해 천제연 계곡 중문천을 따라 바다에 이르는 하류 포구 이름이다.

성천은 순우리말로 풀이하면 별이 내린 계곡이니 얼마나 운치로운지.

전망대에서 아래로 한참 내려가면 정말 밤에는 사방이 너무 깜깜해서 깊은 계곡으로 별이 쏟아져 내릴 거 같긴 하다.


쑥 뜯는 장소로 가기 전, 마침 엉덩물계곡이 인근에 위치했으니 온 김에 잠시 유채꽃 계곡도 들러봤다.


개화상태가 궁금해서였다.


다른 해와는 달리 입구며 산책길도 바뀌고 유채꽃밭도 절정기에 이르지 않아 허술해 보였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이어진 흙길이 사라져 버려 재미가 반감됐다.


전처럼 흙길 걸으면서 흐드러진 갯무꽃 유채꽃 완상하며 분홍 복숭아꽃에서 고향 서정 느끼던 그때가 좋았다.


데크길 따라 미라지연못 앞 나무다리까지만 겨우 올라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한라산 웅자 아래 천제연폭포에 걸린 선임교가 보이고 중문천이 천제연 삼단 폭포되었다가 계곡 타고 흘러내리는 물가에 호젓하게 자리한 소공원.


별내린 전망대 밑 공원에서 촌할망되어 새소리 들으며 신선놀이나 풍류놀음하듯 쑥을 뜯었다.


차도와 멀찌감치 떨어진 데다가 인적조차 드문 청정한 환경인 공원, 반 시간 남짓 뜯은 쑥 양이 충분해 그만 일어섰다.


쑥을 삶은 다음 올레시장 떡방앗간에 다녀왔다.


쌀가루 만들어 왔으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몇 번 해본 경험이 있어 반죽 녹진하게 해서 동글납작 빚어 찜 솥에.... 뚝딱 쑥개떡은 완성됐다.


김 오르는 솥에서 한 개를 꺼내 맛을 보니 으음~ 이름이 아깝다 아까워.


찐한 향수의 맛인 이 정겨운 떡을 하필 개떡이라 하다니.


참기름으로 살푼 광도 냈겠다 이만하면 참떡이라 해도 손색없겠구먼.


따끈할 때 옆집이랑 오피스텔 쥔장네 돌리고 이튿날은 올레길 도반과 홍선생에게도 향수 어린 음식이라며 기다렸던 터라 몇 개씩 나눴다.


쑥인절미나 쑥절편도 아닌 쑥개떡, 이름이야 개떡이지만 나이 지긋한 측은 다들 어찌나 반기던지.


촌사람인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희한하게 또래의 대부분이 쑥개떡을 너무도 좋아라했다.


서울 언니 역시 입맛 다시기에 소포로 부쳤다.


처음 시식한 쑥개떡 하나로 올해는 땡! 그래도 기분 좋았다.



한국으로 리턴한 첫봄부터 직접 쑥개떡을 만들어 먹었던 터다.


미국에서 봄을 맞을 적마다 그립고 아쉽기 짝이 없던 유년의 추억 어린 쑥개떡의 쫄깃한 맛과 쑥향이라니.

온천장 시장 방앗간에 들러 쌀 한 되에 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묻자 이만큼, 하며 분량을 가늠해 줬다.

쑥을 삶아서 가져오면 쌀과 같이 빻아준다고 했다.


바닷가에서 해풍 쐬며 자란 쑥을 넉넉히 준비해 와 방앗간에 갔다.

쑥과 함께 빻은 쌀가루를 집에 갖고 와 반죽을 하고 매매 치댔다.

그전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송편과 달리 찬물에 반죽하라기에 그대로 따랐다.

담박한 맛을 살리려면 설탕은 전혀 넣지 않는 편이 낫다. (식성에 따라 감미는 제각기 첨가)

동글납작하게 빚어 쑥개떡을 찜솥에 쪄서 시식해 봤는데 천일염 슬쩍 던져 넣고 가루 만들어 주더니 간이 딱 맞았다.

쑥 내음 향긋하고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쑥절편을 사먹어봐도 색 짙은데 반해 향은 거의 느끼지 못했으나 이번에 쑥 뜯어다 손수 만든 떡에서는 쑥향이 제대로 풍겼다.

누가 맨 처음 개떡이라고 불렀는지 모르나,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듯 앞으로 네 이름은 쑥찰떡이야~ 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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