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稀 드물 희, 少 적을 소, 뜻 그대로 희소란 수나 양이 드물고 적은 걸 말한다. 희소한 것일수록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게 되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더불어 커진다. 결국 지천으로 많다 보면 공연히 하찮은 대접을 받는 수모까지 당한다. 흔하지 않고 드물기 때문에 인정되는 가치가 희소가치겠다. 지구상에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특성으로 인해 가치를 지니는 곧, 황금이나 다이아몬드가 고가인 것은 희소가치 때문. 발매 숫자가 한정돼 있으므로 기념주화나 기념우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사람들의 욕구는 끝이 없고 욕망을 채워줄 자원은 한정돼 있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이 어긋질 때 희소성(Scarcity)이란 게 성립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즉, 수요가 없다면 희소성 운운할 까닭조차 없는 셈이다. 중세 귀족들 사이에서 검은 황금으로 불렸던 후추가 지금은 워낙 대량으로 생산, 유통되며 싸구려 헐값이 됐다. 이처럼 욕구와 상황에 따라 희소성은 상대적이 되기도 한다. 기초 셈본도 못하는 위인이 경제학에서 나오는 희소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까닭이 있다. 우리집에 푸지게 피었다 지며 무수한 씨앗을 남긴 접시꽃으로 인해서이다. 본숭만숭 귀애하지 않는데도 올핸 뜬금없이 분홍 접시꽃까지 피었다.
딸내미가 배추를 세 포기나 사 왔기에 뒤란 수돗가에다 절여뒀다. 다 절은 배추를 씻으려고 보니 배추 위에 까막딱지 같은 점이 여러 개 흩어져 있었다. 근처에 선 키다리 접시꽃이 떨구어놓은 씨앗이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재작년부터 뜰 여기저기 뿌리내려 초여름까지 꽃을 피워대던 접시꽃. 어릴 적엔 촉규화라 부르며 다정하게 지낸 접시꽃인데, 그러나 어떤 시인 하나로 인해 탐탁지 않게 여기는 밉상이 되고 말았다. 눈총이나 받는 천덕꾸러기임에도 어찌나 왕성하게 잘 자라는지 내 키를 훨씬 능가, 옆자리 자귀나무랑 키재기 하면서 꽃송이 엄청 피워 올렸다. 단 하루 만에 지는 초본류 꽃이지만 긴 대궁 따라 줄기차게 이어지는 꽃의 행렬. 게다가 웬만한 정원수만큼 덩치가 벌어, 오뉴월 내내 지겹도록 붉은 꽃 마냥 피고 지더니 씨도 무수히 맺혔다.
배추 위에 떨어진 씨앗을 골라내며 또 접시꽃에 눈을 흘겼다. 밉다 밉다 하니까 별 해작질을 다 하며 성가시게 구네. 죄 없는 꽃을 흘겨보면서 구시렁거렸다. 하긴 뭐든 지나치게 흔해빠지면 가치가 당연히 평가절하된다. 들꽃이라면 모를까 화단 꽃이 너무 지천으로 번진다면 빈객은커녕 최소한의 대우도 못 받는다. 희소가치에 걸맞게 한두 포기일 적에라야 몸값이 오르며 괴임도 더 받을 수 있다. 소중히 씨앗을 받아둘 필요도 없이 이미 산지사방으로 분신 흩날려 두었으니 내년엔 더 많은 접시꽃이 필 것이다. 동네에 흔한 까마귀를 역겨워하지 않도록 삼족오 주문을 걸었듯이, 정치하는 시인의 시까지 폄하치 않도록 자기최면을 걸어야 하나.
접시꽃 대궁들을 씨앗 품은 채로 쓰레기통에 넣을 수는 없어, 마른 꽃대를 거둬 씨앗을 받았다. 지난해에도 술술 쏟아지는 꽃씨를 보다 못해 일삼아 받아뒀다가 트왈로미 메도우 근처에다 살짝 뿌려놨는데 생태계 질서를 거스른 일은 아닌가 모르겠다. 어디에서건 씨앗이 생명을 이어가 꽃 함빡 피우는 절정의 순간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단순한 마음에서였다. 암튼 올해도 씨가 어찌나 풍년인지 한 됫박 거리는 나왔다. 씨앗을 챙기며 불현듯, 흔전 만전 남발해 대는 내 글도 반갑잖은 접시꽃 대우를 받을 수 있겠다, 란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양보다 질이다. 또 어느 정도는 희소성도 요구된다. 제 흥에 겨워 늘어놓는 사설에 얼쑤~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신명나서 덩더꿍 돌아치는 놀이마당에 나 그만 중독된 걸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