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의 또 하나 즐거움은 현지 고유의 색다른 음식을 맛보는 거라 한다.
하건만 A형이자 소음인답게 심히 비위가 약해 이름이건 외양이나 향이건, 특이한 음식을 보면 속부터 니글거린다.
오래전 가족들과 일 주간 중국 자유여행을 가서도 호텔이 제공하는 조식 외는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
서방세계처럼 자유경쟁 체제라면 진종일 가게를 열겠으나, 당시만 해도 상점마다 점심시간이라 문 닫고 오후 일찍 퇴근이라 하다못해 생수, 카스텔라조차 필요시 살 수가 없었다.
지금같이 맥도널드 매장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으므로 일주일을 곱다시 굶다시피 하였다.
그때 같은 고생 각오하고 간 페루인데 어라? 뜻밖에도 전혀 아무 문제없지 않은가.
호텔식은 어디나 세계 공통이니 당연 괜찮았지만 밖에서 사 먹는 음식도 식성에 잘 맞는 게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정도를 넘어 의외로 입에 착 달라붙는 데다 맛도 아주 좋았다.
물론 각 개인마다 성향이 다르니 일괄적으로 다 좋을 수야 없을 터.
어디까지나 본인 경험에 따른 판단이고 생각이고 느낌이다.
페루는 가기 전부터 은근 쫄았던 점이 고소증이었는데 코카잎 우린 코카티 몇 모금으로 충분히 다스릴만했다.
날로 변하는 현지상황이라 필히 챙기라던 멀티 플러그도 필요 없었고, 고산증 특효라는 비아그라 따위 넣어갔다간 처치곤란 이전 웃음거리될 뻔했다.
쿠스코 판 '최후의 만찬' 테이블에도 올려진다는 음식인 기니피그란 쥐 요리에 질색했는데 굳이 주문하지 않으니 속 뒤집힐 일도 없었다.
쿠스코에서의 첫날, 우리는 가이드에게 물어 잉카 황족 흉내를 내보고자 쿠스코 최고급 레스토랑을 알아뒀다.
여행 출발 전 손자에게 아들이 미션을 주며 '칠순기념여행'이니 할머니께 최고의 식사에다 칵테일 자리 마련해 드리란 당부를 단디 해놓았다 한다.
비단 냅킨까지 정중히 무릎에 펴얹어주며 줄곧 시종처럼 대령 태세인 서비스에다 120 솔 짜리 와인 곁들인 저녁식사,
하룻저녁 귀족 놀음에 페루인 한 달 치 월급의 반도 넘는 거금을 들였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그릴 측에서 추천하는 연한 송아지 고기 스테이크에 손자 역시 비위 약하나 도전해 보겠다며 알파카 스테이크를 청했다.
시식 결과, 육질 질긴 알파카보다는 외려 곁들임 볶음밥이 한층 더 구미에 맞았다.
전체 분위기상 우아 떨며 고상하게 폼 잡다가 제때 사진을 못 찍어 식사하다 말고 잽싸게 한 컷씩.
이와 전혀 다른 서민 먹거리, 페드로 마켓이란 대형 시장에서 사 먹은 Chicharrone 이란 음식이 기억에 남는다.
시장통을 구경 다니다가 구수한 내음에 이끌려 멈춰 선 눈앞에서, 팔팔 기름 끓으며 튀겨지는 돼지고기 비계와 살점이 보였다.
일단 튀김이니 위생상 안전한 데다 먹음직스러워서 주문을 했는데 단돈 10 솔, 3불짜리 치고는 너무도 푸짐했다.
투박스런 수육 같은 돼지고기튀김과 두텁고 넓적한 튀김 감자에 채로 썬 보라색 양파와 박하잎 여러 장 그리고 레몬 두 조각, 와사비같은 양념소스를
별도로 주며 호호 맵다는 시늉을 했다.
헌데 음식 접시와 종이 냅킨만을 식탁에 올려놓고 가버리기에 어리둥절 쳐다봤더니 그제야 나이프와 포크를 갖다 준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다들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먹는다.
처음엔 포크를 썼지만 나 역시 나중엔 갈비뼈를 발라먹으려니 손가락이 편해 기름 칠갑한 채 그냥 맨손을 썼다.
본디 그렇게 먹으라는 음식이었다.
쿠스코 명물로 자주 마시게 된 잉카 콜라는 노란 액체라 애초엔 떨떠름했으나 탁 쏘는 탄산음료 코카콜라보다 외려 나았다.
그러나 주로 챙겨 들고 다니며 마신 건 역시 생수였다
마추픽추행 기차를 기다리며 작은 마을 오얀따이땀보에서 사 먹은 저녁도 각별했다.
식탁이 차려진 후원 옆으로 우르밤바 강이 기운차게 흘렀고 벌새가 정원수 넘나들며 꿀을 따 모으느라 부지런을 떨었다.
익어가는 복숭아 향기 흩날리는 정원이라서인지 분위기 아주 끝내주는 데다 음식도 정갈한 게 맛있었고 특히 손자가 선택한 모둠꼬치요리는 둘이 먹다 하나 꼴깍 가도 모를 지경이었다.
열대과일 흔한 데다 싱싱해 금방 짜낸 망고주스며 이름도 모른 채 손으로 짚어 주문한 기묘한 과일 주스도 일품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마추픽추 아랫동네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는데 이름값하느라 그런지 음식값은 어디보다 비쌌다.
장식만 요란했지 느끼하니 맛 별로인 스파게티에, 손자가 주문한 손바닥만 한 피자는 충분히 화덕에 머물지 못한 듯 익기도 덜 익은 걸 바가지 씌운
이탈리안 식당은 생주스조차 맹탕이었다.
음식기행 목적은 전혀 아니었으니 암튼 페루를 떠나며 리마공항에서 먹은 간편식 샌드위치와 생수 한 병이 페루에서의 마침표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