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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08. 2024

돌고래에게 자유를 허하라

매우 조용한 마을 대정현(大靜縣)은 행정구역 상 한라산을 경계로 산의 남서쪽에 위치했다. 예로부터 품섶 너른 들판을 끼고 있어 조선조 제주삼읍 중 하나로 분할된 지역이다.

청정히 맑은 바다가 펼쳐진 대정 해변에서 바라보면 대한민국 최남단 가파도 마라도가 또렷이 보인다. 그간 찾은 영락, 무릉 앞바다는 내동 평화로울 정도로 파도 잔잔했다.

갯바위 낚시꾼들도 숱하고 왜가리며 가마우지도 고기를 낚으려 바윗전에 주르름 서있었다. 그 대정 바다도 이번 토요일 무렵은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어질 거 같다.

기갈 센 바람 소리로 미루어 벌써부터 조짐이 안 좋다. 초강력 태풍 힌남노가 토요일쯤 제주를 향해 올라올 거라는 뉴스는 소박사 유튜브를 통해 엊그제부터 들었다.

어제 아들이 연타로 문자와 기상도 사진을 보내왔다. 태풍에 대비해 미리 생수와 식품 및 양초와 플래시를 챙겨놓으라고 했다. 서귀포에서 오래 산 사람에게 당시 바닷가 상황이 어땠는지 들어보라고도 했다.

내가 뉴저지에서 살던 2003년이라 직접 겪어본 바 없는 매미. 초강력 태풍의 습격이라는 당시 동영상도 딸려 보냈다. 한반도를 휩쓴 태풍 매미의 위력을 안 봤으니 철없이 무모한 엄마 고래보러 나갈까 봐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


사실, 지난주부터 닷새 연달아 무릉 바다로 갔다. 돌핀 무리 귀여운 재롱에 혹해, 매일 걔네들을 교황 배알하듯 만나보러 간 것.

첫날은 허탕 쳤다. 둘째 날 비로소 돌고래를 봤다. 신기하게도 바로 해안가 가까이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고 신통방통하기만 했다. 폴짝폴짝 뛸 듯 신나 하며 걔네들에게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나이 상관없이 순수한 동심처럼 해맑다 못해 투명해지는 영혼.

셋째 날은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려 혼자 살짜기 다녀왔다. 돌핀이 노니는 스폿을 알기에 바로 그 장소로 직행했다. 걔네들이 나타나자 환호하고 탄성 보내며 동영상을 찍어댔다. 내게 아직, 어쩌면 그리도 순결한 열정이 남아있었을까. 뙤약볕 아랑곳하지 않고 돌핀 무리 따라 영락리에서 무릉리 바닷가 아래위로 누비고 다녔다.

넷째 날은 옆집 황 선생과 동행했다. 꼭꼭 아껴두고 혼자만 보고 싶으나, 그녀도 좋은 곳 서슴없이 안내해 주는지라 주말 기해 앞장을 섰다.

사랑스러운 친구를 소개하려니 마음 먼저 나부대며 설레기 시작했다. 차가 출썩거릴 때마다 어깻죽지에서 날개라도 돋을 거 같이 스멀스멀거렸다.  

하지만 돌핀은 그날 무엇에 토라졌는지 도통 모습 나타나지 않다가 겨우 한 마리만 이내 스쳐가 버렸다. 그녀는 바로 그 짧은 순간을 놓쳐버렸으니 내 들뜬 설명만 들었을 뿐 정작 돌핀은 만나지 못했다. 한 시간여 버스에 흔들리며 벼르고 온 터라 황 선생에게는 미안쩍게 됐지만 도리 없었다.

그렇게나 잘들 노닐던 얘네들이 어쩐 일이야?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걸까 걱정이 다 됐다. 하긴 드넓은 바다 어디를 유영하건 돌고래 맘이고 좋은 먹이가 있는 데라면 어딘들 못 가랴. 자유자재 기분 내키는 대로 한림에서 성산포까지 동으로 서로 이동하는 돌고래다.

다섯 번째 날은 요 근래 드물게 일기 매우 쾌청했다. 멀리까지 시야 트여 청옥빛으로 바다 빛났으며 햇살 유난히 따가웠다. 영락 마을 노을해안길에 도착하자마자 돌고래 무리가 보였다.

정확히는, 먼저 돌고래가 눈에 띈 게 아니라 길가에 차를 대고 서있는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고래가 나타났음을 알아차렸다.
폰을 꺼내 동영상 모드로 바꿔가며 해안가 바위로 내려갔다.

울산 반구대 선사시대 유적지 석벽에서도 만나본 고래다. 19세기 고래기름 수요가 급증하며 한때 포경업은 호황을 누렸으나 현재 고래는 멸종 위기라 국제보호종으로 지정이 됐다.

제주 해역에 백여 마리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남방큰돌고래는 2012년부터 해양수산부 지정 해양보호생물이다. 난개발로 인한 서식지 감소와 오염물질의 해양배출 및 무분별한 선박 관광 등으로 멸종 위기에 몰린 돌고래.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국제보호종인 돌고래 토종 상괭이도 보호 조치가 필요한 실정.

노을해안길 가까이에서 만난 돌고래는 육안으로도 관측이 가능해 더더욱 감탄사가 터질 만큼 신기 진기하고 놀라웠다. 쌍안경이 있으면 좀 더 정확히 볼 수 있겠고 망원렌즈 달린 카메라라면 쟤들 모습 선명히 포착할 수 있겠으나 이쯤으로도 어딘가. 캘리포니아 퍼시픽 코스트에도 고래 탐방 투어 상품이 있지만 이는 뭍에서 망원경으로 먼바다 지나는 회색고래 떼 관찰하는 정도다.

날렵한 몸매에 긴 부리와 선명한 등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를 가진 제주 돌고래가 숨 쉬고자 점프하면 동시에 탄성 보내는 사람들.
솟구쳤다가 다시 긴 자맥질을 하며 헤엄치는 귀요미 돌고래들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나부터도 서너 번까지는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돌고래 묘기에 취해 마냥 손 흔들며 반가워했다. 그러나 다섯 번째에 이르러 돌고래 무리 따라다니는 배를 예의주시하게 됐으며 바다 생태계를 해치는 행동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치 주홍글씨의 칠링워드처럼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어찌 저럴 수가!

강조하건대 대정 앞바다 돌고래는 선상 관측이 아니라도 해안에서 충분히 육안 관측이 가능하다. 굳이 배를 탈 필요 없이 뭍에서 고래 구경을 하면 보다 확실한 데다 이는 돌고래에게 자유를 허하는 일이 되며 여행비 절감도 된다.

얼마 전에 방영된 우영우라는 유명 드라마 열풍까지 겹쳐 고래 투어가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요즘 대정은 난리도 아니다. 해변길에서의 고래 구경은 물론 선박 관광상품까지 나와 네 척이나 되는 배가 돌고래를 좇는다.

돌고래가 시야에 떴다 싶으면 귀신같이 알고는 쏜살처럼 냅다 달려오는 고래 투어 유람선들은 최신형이다. 알고 보니 운진항에서 하루 다섯 차례, 요트로 고래 투어를 하는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변 마을 청년 자치회에서 어선으로 고래 구경을 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전문 투어 상품을 내건 새하얀 복층 선박들이 등장하면서 어선은 퇴장, 네 곳 회사에서 고래 관광을 시킨다고.

뻔질나게 대정 해안을 누비는 돌핀 관광선은 요금도 만만찮아 5만 삼천 원부터 선셋 투어는 6만 오천 원정. 고래가 이동하는 근처까지 전속력 다해 질주해 온 선박은 시동을 끄지만 이미 돌고래는 엔진 소리에 행동 자체가 교란받는다. 잘 알다시피 초음파를 이용해 먹이를 찾고 의사소통을 하는 특성상, 돌고래는 기계 소음에 유독 민감할 터다.

자유로이 유영하던 돌고래 무리 가까이로 배가 치고 들어오면 돌핀은 가던 방향을 틀면서 우왕좌왕 마구 흩어져 버린다. 그중 한 마리가 선박을 유인하듯 혼자서 티 나게, 가던 방향 따라 부지런히 헤엄쳐 가는 몸짓이야말로 자못 비장스럽다. 마치 전투 시 위기에 몰리면 무리의 퇴로를 열어주고자 적군의 표적이 되어 적병을 유인하듯이.  

돌고래는 그저 단지 본능적 감각의 지시에 의해 선두에 나서, 무리 지키려는 그 몸짓 지켜보자니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치솟았다.
인간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호소하지 못하는 동물이라서 그렇지, 자유를 박탈당한 돌핀들은 얼마나 괴롭고 짜증 나겠는가. 사람 사이에 이 같은 불편한 일이 생긴다면 목숨 내건 분쟁으로 비화될 사안이다.

이처럼 돌핀 투어 선박은 돌고래 무리 ’50미터 이내 접근금지’ 규정을 어긴 채 범법 운항도 불사한다. 어쩌자고 해양수산부는 귀중한 해양자원인 돌고래들 스트레스 주는 이런 상행위를 허가해 주고 규정 어기는 만행조차 눈 감는지. 이를 원천 차단시키는 법적 토대가 없어 단속 방법을 찾지 못한다는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심지어 국회에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백방으로 손을 써보나 아무 진척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른다고.

적정 거리의 돌핀 보호구역이라도 법령으로 설정해 놓으면 선박 관광 업체들도 조심하겠고 돌핀들도 자유로우련만. 빠르게 돌아가는 스크루에 부딪는 경우 목숨 잃는 돌핀도 생길 테고 이대로 가다간 선박 소음에 지쳐 서식지를 바꿀 수도 있겠다. 조속히 보호구역 지정이 돼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돌핀들이 제주 앞바다를 누빌 수 있게 되기를. 걔네들이 여기를 편안한 삶의 터로 여겨 맘 놓고 안정되이 살면서 개체 수 늘려가기를.

그래야 우리 후대들도 저들 귀여운 재롱을 보며 해맑은 웃음 지을 수 있으리니. 돌고래가 제주 바다를 영영 떠나기 전에 빠른 대책 세우길 유관 단체들에 촉구해야 하려나. 그보다는 자연사랑에 앞장서는 관광객들의 양식에 호소,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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