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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09. 2024

조슈아 벨의 주머니가 불룩했다

나 자신에게 선물하기로 한, 여름 시즌 야외 음악회 중 기다리던 죠수아 벨의 연주가 있는 날이다. 영어 개인교사이기도 한 패트리샤와 동행했는데, 같은 교우인 데다 나이도 같고 취향도 같아 우린 자주 어울려 다닌다. 출발시부터 그녀가 하도 서두르는 바람에 다섯 시 갓 지나 이미 할리우드볼에 도착했다.

입장시간은 여섯 시, 노을빛 번지는 음악당 주변을 산책하다가 일찌감치 줄을 섰다. 앞줄이라 입장 차례가 빨라 피크닉장에 들어가서도 알맞춤한 그늘 자리를 여유있게 확보할 수 있었다.   

식탁보를 펴고 각자 기호따라 그녀는 샌드위치 난 치즈케이크, 샐러드와 안줏거리도 올려놨다. 그리고 항상 그녀가 준비해 오는 작은 병의 와인을 따서 플라스틱 잔 부딪치며 Cheers!!

무대에 조명이 밝혀지며 여덟 시 정각에 연주가 시작됐다. 이날은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LA 필과 갖는 협연 무대 자리다. 지휘자는 Bramwell Tovey로 그는 영국 출신의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이다.

유명인이나 명품에 그다지 열광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은 정신적 사치를 부려보고 싶을 때가 있다. PROGRAM-Los Angeles Philharmonic/Bramwell Tovey, conductor/Joshua Bell, violin. 자신에 대한 모처럼의 대접이니 격을 갖출 필요도 있겠고.

조슈아 벨이야말로 따르는 수식어가 워낙 많아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음악가다. 이 시대 최고 솔리스트, 실내악 연주자, 악장으로 지구촌 누비며 활동하는, 클래식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아티스트다.   

열네 살 소년기에 데뷔 무대를 가진 그는 당시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관현악단과 협연했다.
그가 사용하는 바이올린은 1713년에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깁슨 액스 후버만(Gibson ex Huberman)이라는 명기다. 물경  가격이 1천만 달러를 홋가하는.

서정적이면서 호소력 있는 톤으로 그는 바이올린 선율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감미롭고도 섬세한 연주로 삼십여 년 넘도록 흔들림 없이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뛰어난 연주자인 벨.

그가 지니고 있는 탄탄한 기량만으로도 충분히 아우라를 발산하기에, 외모도 경쟁력이란 말은 사실 벨에게까지 적용시킬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역시 인물은 잘나고 볼 일이다,를 확인시키는 벨이다.  벨은 동안의 준수한 외모로도 유명하지만
그도 오십 줄에 들어선 지금은 나이에 걸맞게 분위기가 중년 다이 원숙해졌다.

조슈아 벨, 하면 워싱턴 DC 번잡한 지하철역에서의 대중심리 실험이 떠오른다.
허름한 옷에 모자를 눌러쓰고 장시간 연주를 했으나 멈춰 서서 감상하는 이도, 사진을 찍는 이도 없었다. 그때 벨은 단지 32달러를 번 무명의 남루한 거리 음악가였을 뿐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브랜드 밸류(장소나 옷차림 특히 드러난 명성)만으로 가치를 인식해버리더라는 것.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객석에서의 내 느낌이지, 주제넘게 그의 음악성에 관해서나 심리학 고찰이 아니다.  그날 우리 좌석은 대형 스크린 바로 앞,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표정까지 세밀하게 읽히는 자리였다.

심플하면서도 캐주얼한 까만 옷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한 그가 연주를 이어가는데 내 시선은 거북하게도 짝 달라붙은 그의 슬랙스 주머니에 연신 가닿았다. 오른쪽 호주머니가 눈에 띄게 불룩했기 때문이다.

그의 손놀림이 현란해지며 신들린듯한 몰아의 경지에서 연주는 점점 무르익어갔다. 순간, 그의 턱에서 물방울이 상의 옷깃에 툭툭 떨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정신을 다잡 자세히 지켜보니 그의 얼굴은 물론 목까지도 온통 땀범벅이었다.


이마로 흘러내린 머릿결은 물기에 젖어 달라붙었고 귀밑머리도 푹신 젖어있었다.
음에 심취해서라기보다, 아마도 땀이 눈으로 들어가서인지 한 번씩 눈을 꾹 감았다가 뜨기도 했다.

얼굴만이 아니라, 활을 켜는 오른손보다 손가락으로 현을 튕겨서 연주하는 왼쪽 등이  땀으로 더 번들거렸다. 양손을 쓰는 연주라 도중에 땀을 닦을 수도 없는 노릇. 내심 곡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심정이 들 정도였다.

마침내 연주가 끝나자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덜미를 골고루 닦았다. 슬랙스 주머니에 불룩, 눈에 거슬리게 들어있던 것의 정체는 바로 손수건이었던 것. 재질이 실크도 아닌  엷은 타월 손수건이라 부피가 나갈밖에.

가슴이 짠해졌다. 세상에 쉬운 삶은 하나도 없고 고단하지 않은 생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었다. 뙤약볕 아래 도로공사를 하는 인부도, 불 앞에서 일하는 제련소 화부도, 몸은 고달플지언정 땀 닦을 짬은 있다.   

격전을 벌이는 권투선수보다 더 심하게 비 오듯 땀을 흘린 죠수아 벨. 한 시간 동안 정기와 진액을 짜내는 그와 대조적으로 관현악 단원이나 심지어 비만인 지휘자도 땀이 비치지 않으니 강렬한 조명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겠다.

전에 필라델피아에서 사라 장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녀는 음악을 즐기듯 시종 여유만만, 미소까지 내비쳤었다. 벨의 연주 스타일이 다르거나 체질적으로 땀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마음 아릿해졌다.

이솝 우화 속 '개미와 베짱이'에서 개미는 땀 흘려 부지런히 일하고 베짱이는 바이올린을 켜며 딩가딩가 놀기나 하는 게으름뱅이였는데.... 무수한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며 선망의 대상으로 우뚝 서있는 그다. 화려한 정상일수록 어쩌면 남모를 피땀이 더 요구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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