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어, 손맛의 추억

2021

by 무량화


감성돔 탁본입니다.

액자는 귀퉁이가 벌어져 유리까지 버리고 내용물만 챙겨 뒀지요.

43센티미터는 16.9291인치이니 크기가 약 17인치짜리네요.

통통한 몸매에 지느러미를 쫘악 펼친 채 눈 또랑또랑 살아있는 감성돔, 귀물스럽지 않나요.

먹을 진하게 갈아 먹물 입힌 녀석을 한지에 눕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더군요.

그게 어디 한두 번에 만족할만한 작품이 나오나요, 여러 차례 감성돔 피부에 먹물을 붓질했더랬지요.

요셉이 90년 초 어느 한겨울 청산도 쪽에서 배낚시를 하면서 낚은 감성돔인데요.

대어를 낚던 짜릿한 손맛 잊지 못해 주말만 되면 그는 꽝꽝 얼어붙는 영하권에도 바다로 내달렸지요.

얼음 파편 쪽이듯 사방에서 찔러대는 거센 해풍에다 파도 험한 겨울바다임에도 불구하고요.

하다못해 겨울폭풍 예보가 있어 위험할지라도 본인 좋으면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커늘 누가 말리겠어요.

금요일 오후 내내 릴 등 낚시도구를 손보고 갯지렁이와 밑밥을 챙기며 출조를 위한 채비에 골몰하는데요.

바다에서 이틀간 지낼 음식이며 생수는 물론 쿨러에 얼음도 채워 넣어야 하고, 접이 보트와 모터에 낚시 장비들까지 늘 짐이 차 한가득 찼지요.

접는 보트를 사 왔길래 배 얼마 줬냐고 물으니 2백, 뭐 그 정도 가격은 예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머큐리 모터 값이 4백이었더라고요. !

왜 속였냐 하니까 배가 얼마냐고 물었으므로 모터 값 빼고 말했다며 눙을 친 기억이 나는데 그처럼 배보다 배꼽이 더 컸더군요.

요셉은 애초부터 민물낚시는 거들떠도 안보구요, 바다낚시도 처음 한동안은 갯바위 낚시를 했으나 부산으로 이사 온 다음부터는 배낚시만 다녔지요.

낚시 장소에 신새벽 도착하려면 밤 열 시경 캄캄한 어둠 속을 달려 부산에서 전라도 섬까지 가야 하는 거였는데요.

우리가 천생연분으로 일치하는 점은 잠 많은 건데 밤새 잠 한숨 못 자고 운전해서 달려가는 걸 보면 얼마나 좋기에, 싶어요.

어제도 2만 보 거리를 신록 구경하며 걸어 다녔듯, 저 역시 걷고 또 걷기를 지치지도 않고 즐기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지요.



낚싯줄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떨림에 집중하다가(그렇게 학문에 전념했으면 열 번도 더 박박사 됐겠지요) 낚싯대 잡아채며 릴을 잽싸게 돌리는 순간 활처럼 휘어드는 낚싯대.

요동질 치는 물고기의 파동을 느끼는 그 찰나의 황홀경이야말로 다이돌핀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환희심 아니겠어요.

그러니 폭풍 한설 몰아치거나 한여름 뙤약볕 마다않으며 뱃전에 앉아 낚싯대 드리우고 지상 최고의 행복감에 젖어들곤 하겠지요.

만일 그 무더위에 밖에 나가 잔디 깎으라 했다면 아마 싸우러들테지만요.

낚시를 다녀오면 처리해야 할 뒷 일감도 여간 많은 게 아니랍니다.

우선 생선 다루는 일은 싱싱한 회 곁들여 한잔 하는 재미라도 있으니 할만하겠지만, 쿨러와 뜰채망의 바닷물도 헹궈내야 하고 낚시 장비 일일이 닦고 접어 정리하는 등등.

당시만 해도 방생 다니던 불자인 데다 뱃멀미도 심하고 생선회를 안 먹어 낚시질 자체가 못마땅한 터라 더러 낚시를 따라가도 해변에서 홍합이나 굴을 땄지요.


낚시라면 갯지렁이 만지는 일부터 징그럽고요, 바늘에 낚싯줄 묶는 거조차도 전혀 못하네요.

무엇보다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낚시 가서 후지른 옷가지 세탁이나 겨우 해줄 뿐(그거도 툴툴거리며) 그 외는 일절 거들지 않아도 으레 혼자서 말끔하게 정리 정돈해 놓곤 하더라구요,

때로는 지루하도록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다가 시원찮은 조과로 돌아올 경우도 있지만 매번 설렘을 안고 낚시터로 향하는 강태공 취미는 암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들 하더라구요.



요셉은 미 동부 뉴저지에서도 어지간히 바다낚시를 즐겼는데 입질의 추억 중에 또 한 번 잊지 못할 대어 득템을 했던 건 벨마(Belmar)에서였는데요.

롱아일랜드나 오션시티 쪽으로도 갔지만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인 벨마에서 농어를 낚아와 동네잔치를 했던 적이 있지요.

뉴저지 보호어종인 농어라 30인치 이하를 잡아 가져올 경우 걸리면 벌금 500불이었던 생각이 납니다만 그건 벌써 십 년 전 일.

스트라이프 배스(Striped Bass)를 한인들은 농어라 불렀는데 늘씬하게 뻗은 은빛 몸매에 선명한 줄무늬 멋들어진 어종이지요.

그땐 아쉽게도 탁본을 뜰 계제(뉴저지 어디서 먹이며 한지를 구하리오)가 아니라서 사진으로만 남겼네요.

낚시꾼의 허풍 섞인 무용담이 아니라 그때 잡은 농어는 무려 43인치짜리였거든요.

당시 낚싯배 선장이 달려와 거들어줘서 겨우 뱃전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더군요

장정이 들기도 무거운 데다 키다리인 농어로 우리 교우들 즉석에서 회와 매운탕 끓여 포식했더랬지요.

오션시티에서는 전어 낚시로 가을 한철 친교시간이면 회덮밥을 나눠먹거나 들깻잎 쌈 싸서 호호 하하했는데요.

롱아일랜드 쪽 바다는 쿨러 가득씩 채워주는 겨울 고등어가 별로 비리지도 않고 싱싱해 진미였어요.

이곳 일광 방파제에도 항시 낚시꾼들이 몰려드는데요, 그 바람에 테트라포드에 길냥이들도 진을 쳤구요.

잡는 어종은 연안에서 노는 숭어나 놀래기나 갈치 또는 큰 멸치 종류 같더라구요.

몇 년 새에 한국인의 취미생활 첫째 자리가 등산에서 낚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부터 낚시가 힐링 레저로 자리를 잡았다는데요.

요새 봄꽃놀이도 원천봉쇄되어 소풍 길이 막혀서인지 가족단위로 바다로 나오는 레저인구가 부쩍 늘어났더라구요.

파도 통쾌한 바다에서 흉금 시원해지는 해풍 쐬며 즐기는 바닷가 나들이, 그래선지 해수욕장에도 낮 동안 텐트가 쳐졌더군요.

저마다 코로나 난세에 나름껏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들을 찾아내게 마련인가 봅니다. 2021


keyword